신용카드업계의 수수료 공방이 이젠 해외로 번졌다. 가맹점수수료 인하 논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젠 비자카드가 국내 카드사에 강력한 펀치를 날렸다. 국내 카드사 측에 해외결제수수료를 0.1%포인트 인상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


국내카드사는 “동의할 수 없다”며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반발했지만 비자카드 측은 “철회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인상시기는 내년 1월1일이다.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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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사 “법적 대응” 공염불 가능성

국내 카드업계는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현재 법무법인 선정을 검토 중이다. 카드사들은 법무법인을 통해 비자카드가 일방적으로 해외이용수수료를 결정하는 방안이 국내법에 저촉되는지,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할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추후 비자카드 미국 본사 및 아시아태평양지역 본사에 추가 항의서한을 보낼 방침이다.
하지만 법적 공방을 펼친다 해도 법원이 국내카드사의 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법원이 카드사의 수익원이 되는 수수료 공방에 직접 관여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항에 위배될 수 있어 더욱 조심스럽다.


이는 2010년 불거진 비자카드와 비씨카드 간 공방전에서도 잘 드러났다. 2011년 6월 비자카드는 자사 결제네트워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씨카드에 1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비씨카드가 2009년 10월부터 미국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1위 업체인 스타네트워크와 전용선을 구축해 직접 ATM 거래를 한 것이 규정위반이라는 것.

중국 은련카드(유니온페이)와 제휴해 중국관광객이 국내에서 사용한 은련-비자카드 결제분을 정상처리한 것도 비자넷을 이용하지 않았다며 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비자카드는 제휴사에 자사의 글로벌 결제네트워크인 ‘비자넷’을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반하면 벌금을 부과한다.


비씨카드는 당시 시장 지배적 지위를 악용한 불공정거래라며 즉각 공정위에 제소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한미FTA 조항 위반 등으로 이렇다 할 조사를 하지 못했고 비씨카드는 결국 지난해 3월 제소를 취하했다. 따라서 국내 카드업계가 소송전과 항의서한으로 비자카드에 압력(?)을 가한다고 해도 사실상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이번 수수료 인상 역시 소송전으로 이어진다 해도 승소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현실적으로 수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차·포 뗀 카드사, 상·마까지 내줘야


“장기를 두기 전 차와 포를 빼줬더니 이번엔 상·마까지 내줘야 할 판이에요.” 비자카드의 수수료 인상 논란을 두고 A카드사 관계자가 한 말이다.

카드업계는 비자카드의 일방적 통보로 또다시 수익성이 쪼그라들 위기에 놓였다. 사실 국내 카드사들은 최근까지 가맹점 수수료 인하여부를 두고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상황은 카드사에 불리했다. 여론이 가맹점의 손을 들면서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결국 카드사들은 가맹점이 요구한 사항을 상당부분 수용했다. 장기로 따지면 차와 포를 내준 셈이다.


그런데 가맹점수수료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도 전 비자카드가 일방적으로 해외수수료 인상카드를 꺼내 들었다. 더 답답한 것은 명분조차 없다는 점이다. 비자카드 입장에선 유지비용과 인건비 인상 등 다양한 이유로 수수료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갑자기 해외가맹점 수수료를 인상한다고 통보하기란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번 인상과 관련 국내카드사와 어떤 협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 카드사가 일방적 통보라고 반발하는 이유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서로 대등한 관계라면 협상이 있었을 텐데 이번엔 그런 과정이 생략됐다”며 “비자카드의 횡포라기보다 국내 카드사의 굴욕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꼬집었다.

◆수수료 인상 도미노 이뤄지나

이처럼 불합리한 공격을 받고 있지만 국내 카드사는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만약 비자카드가 예정대로 수수료를 인상한다면 마스터카드와 아멕스카드 등 국제브랜드 카드사가 줄줄이 수수료 인상에 동참할 수 있다.

강 사무국장은 “비자카드의 수수료 인상은 다른 국제브랜드 카드사에 물꼬를 터준 것이나 다름없다”며 “조만간 해외브랜드와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B카드사 관계자는 “비자카드를 근거로 다른 국제브랜드 카드사도 수수료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우려를 표했다.

비자카드가 요구한 해외수수료는 사실상 모두 소비자가 부담한다. 만약 비자카드가 수수료를 인상하더라도 카드사로선 특별히 손해 보지 않는 구조다. 하지만 이를 고스란히 고객에게 떠넘길 수도 없는 상황이다. 만약 수수료 인상이 현실화된다면 카드사와 소비자가 부담을 나누는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C카드사 관계자는 “수수료 인상이 불가피한만큼 올 하반기부터 카드사와 고객간 수수료율을 어떻게 나눌지 논의할 것”이라며 “비자카드의 횡포로 국내 카드사와 이용자들이 적지 않은 손해를 보게 됐다”고 답답해했다.

이처럼 국내 카드사들이 굴욕적인 대우를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으로서는 해법이 없다. 국제망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국력이 요구된다. 국가적 지원도 절실하다. 현재 우리나라 국력으로는 비자카드처럼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까지 전산망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카드업계 고위 관계자는 “비자카드 압력에 휘둘리는 것은 국내 카드사가 해외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기보다 국가브랜드와 연관이 있다”며 “이 흐름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