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도시난민] '아슬아슬한 상생' 망원시장을 가다
서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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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최근 도시화·산업화로 원주민들이 터전을 빼앗기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머니위크>는 재개발 열풍에 짐을 싸야 하는 원주민들과 특색거리의 이면, 해외사례 등을 통해 우리사회에 뻗어내린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거센 빗줄기 사이로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유난히 컸다. 올 들어 서울에 첫 호우경보가 발령된 지난 5일. 망원역 2번 출구에서 망원시장으로 이어진 골목은 우산과 검정 비닐봉지를 든 주민들로 북적였다. 이 북적임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한 주민과 상인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연대는 상권 발달을 촉진시켰고 거대자본을 더욱 유혹했다.
◆시장-지역사회 ‘연대’가 상생비결
“사모님은요?”
“비 오는데 집에서 쉬라고 했지. 같이 있으면 스킨십밖에 더해요?”
망원시장에서 이불장사를 하는 양모씨(52)는 부인의 안부를 묻는 단골손님의 질문에 이같이 답하며 주위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아들과 함께 온 손님은 이불을 산 뒤에도 양씨와 10여분간 대화를 나눈 뒤 자리를 떠났다. 양씨는 이곳에서 13년째 장사 중이다. 그는 “손님의 60%가 단골”이라고 말했다.
‘단골’은 상인과 주민 ‘관계’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망원시장의 풍경은 카트를 끌며 물건 담기에 바쁜 대형마트의 그것과 사뭇 달랐다.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는 직원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알지도 못한다. 따라서 대형마트를 자주 찾는 소비자일지라도 이들을 단골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매일 망원시장을 산책한다는 50대 최기수·조안순 부부는 “대형마트에선 느낄 수 없는 사람냄새를 이곳에서 맡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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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시장. /사진=임한별 기자 |
위기도 있었다. 2012년 시장에서 800m 떨어진 지점에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상인들은 주민들에게 관계만을 호소할 수 없었다. 그들만의 경쟁력이 필요했다. 상인회는 주민을 위한 판매 촉진행사를 기획했다. 설·추석맞이 행사, 김장철 그랜드세일, 2·4주 대형마트 휴무 세일 등은 상인들이 대형마트를 상대로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7년간 서교동에 거주 중인 문모씨(35)씨는 망원시장을 찾는 이유에 대해 “물건도 많지만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며 “채소는 대형마트보다 채감상 20%가량 싼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대형마트 입점에도 망원시장이 살아날 수 있었던 또 다른 구심점은 지역공동체와의 ‘연대’였다. 2012년 상인회가 대책위원회를 꾸렸을 때 이 지역 46개 시민단체가 힘을 보탰다. 이들의 연대는 대형마트와 시장의 상생협의를 이끌어냈다. 대형마트는 시장에서 파는 주요 품목 10가지를 들이지 않는다. 또 시장에 10억원을 지원했고 상인회는 협회 건물을 지어 사무공간을 만들었다.
이 건물 지하는 상인과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 집수리, ‘청년을 위한 정의·경제 이야기’ 등의 강좌가 열리고 젬배·댄스 동아리의 연습공간, 건강프로젝트나 요리경연대회 등의 장이 되기도 한다. 상인과 주민들은 이 공간에서 접점을 늘려간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시민단체 ‘민중의집’ 조영권 대표는 “이곳에서 만들어진 주민과 상인의 관계는 지역공동체 형성의 밑거름이 된다”고 말했다. 소비가 물품구매에 그치는 게 아니라 소비자와 상인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경제공동체’ 형성까지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이를테면 상인과 지역시민단체의 노력은 주민들로 하여금 시장을 찾게 했다. 매출이 증가한 망원시장은 지역을 위한 기부문화를 만들었다. 상인회는 매해 어린이날 망원시장 공용주차장에서 아이들에게 각종 물품을 나눠준다. 연말이면 바자회를 열고 여기서 벌어들인 수익을 지역아동센터 등에 기부한다.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선순환구조’인 셈이다.
망원시장. /사진=임한별 기자
◆‘제2의 상수·연남’ 될까 우려
망원시장을 중심으로 이곳 상권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홍대·상수동·연남동의 비싼 임대료를 피해 망원시장 주변 좁은 골목으로 카페·선술집 등을 창업하는 청년들도 늘었다. 오는 8월 가게를 그만둘 예정이라는 60대 후반의 한복수선집 주인은 “새로 들어오는 주인이 30대 초반이에요. 나 같은 노인은 이제 빠질 때가 됐죠”라며 미소 지었다.
그러나 활기를 띤 상권은 또 다른 젠트리피케이션 위기에 처했다. 장모씨(60)는 지난해 8월까지 망원역 주변 골목에서 미용실을 운영했다. 상권이 발달하자 임대료가 올랐다. 그만큼 부담도 커졌다. 결국 역세권을 피해 망원시장과 200여m 떨어진 자줏빛 벽돌집으로 둘러싸인 좁은 골목으로 밀려나왔다. 5평 남짓인 그곳의 월세는 60만원. 전 세입자는 40만원을 냈다고 했다. 장씨는 “비싸도 어쩌겠어요. 이것도 감지덕지죠”라며 씁쓸해했다.
망원시장 상인들이라고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할 순 없었다. 한 음식점 주인은 “2~3년 전부터 이곳이 뜨기 시작하더니 건물주가 계속 바뀌었다”며 “바뀐 건물주들은 투자목적으로 월세를 무지막지하게 올리는 중”이라고 망원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몇몇 상인의 올해 임대료는 기존보다 25%, 100만원 가까이 오르기도 했다.
서정래 망원시장협회장은 “서울시에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지역조사를 벌이는 등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지금부터 관리하지 않으면 이 지역도 2~3년 후에는 ‘제2의 홍대·상수·연남’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자영업자들이 맞닥뜨린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상가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주변 건물가치가 상승하면 주택세입자도 같은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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