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관파천 환궁. 서울 중구 정동길에 있는 옛 러시아공사관 터.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돼 현재 탑만 남아있다. /사진=뉴시스
아관파천 환궁. 서울 중구 정동길에 있는 옛 러시아공사관 터.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돼 현재 탑만 남아있다. /사진=뉴시스

‘아관파천’ 치욕을 겪은 후 환궁한 고종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문화재청이 ‘고종의 길’을 복원하기로 하면서, 아관파천부터 환궁까지 120년 전 고종의 행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관파천은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1년간 고종과 세자였던 순종이 경복궁(건청궁)을 떠나 아라사(俄羅斯, 러시아의 옛 표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을미사변 이후 일본 영향 아래 조직된 김홍집 내각은 태양력 사용, 단발령 실시 등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는 명성황후 시해와 맞물려 일본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해 전국 각지에서 의병항쟁이 일어나는 계기가 됐다.


이범진, 이완용 등 당시 친러파들은 친위대가 의병진압을 위해 지방으로 이동한 사이 신변불안을 느끼던 고종의 희망에 따라 고종, 세자와 함께 정동에 있던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동했다. 고종이 이곳에서 친일파 대신들을 체포해 처형하라는 명을 내리면서 실제 김홍집, 정병하, 어윤중 등이 살해되고 유길준, 조희연 등도 일본으로 망명해 친일내각이 몰락하고 친러·친미파 내각이 들어서게 된다.

고종은 1년이 지나서야 경운궁(현재 덕수궁)으로 환궁해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황제 즉위식을 열어 대한제국이 독립제국임을 선포했다. 아관파천은 한 나라의 왕과 왕세자가 다른 나라 공관에 피신해 다른 나라 군대의 보호를 받은 사건으로 역사적인 치욕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올해 아관파천 120주년을 맞아 고종이 파천 중 이동했던 길로 추정되는 '고종의 길'과 '서울 구 러시아공사관'을 복원하기로 했다. 복원사업은 오는 9월 착공해 내년 말 완료할 계획이다. '서울 구 러시아공사관'은 내년부터 복원에 들어가 2021년까지 마무리한다. 러시아공사관은 1890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립됐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돼 현재는 탑 부분만 남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