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CEO’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회장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났다. 검찰의 고위 간부에게 주식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에서 시작된 이른바 ‘넥슨 게이트’는 청와대 민정수석 집안과의 부동산 거래 의혹으로 번졌다. 지난달 말 검찰은 김 회장을 ‘뇌물공여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지만 관련된 의혹은 사그라지기는커녕 더욱 불어나고 있다. 넥슨 창립 후 20여년간 공식석상에 나서길 꺼려했던 김 회장. 그의 은둔 경영 뒤에는 검은돈으로 일군 벤처신화와 후진적인 지배구조로 재편된 넥슨이 있었다.


◆정경유착으로 얼룩진 벤처신화

김 회장의 이름은 지난 3월 진경준 검사장의 공직자 재산공개 때 거론되기 시작했다. 진 검사장의 신고된 재산 156억5609만원이 ‘넥슨 주식 특혜’로 증식된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져서다. 넥슨은 당시 김 회장이 진 검사장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에 “개인 간의 주식거래”라고 일축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서울대 동기인 진 검사장은 김 회장으로부터 2005년 회사자금 4억2500만원을 받아 넥슨의 비상장 주식 1만주를 매입했다가 다음해 10억여원에 되팔았다. 그 돈으로 넥슨재팬 주식 8만5000여주를 사들인 진 검사장은 넥슨재팬이 상장한 뒤 2014년 해당 주식을 팔아 120억원대 차익을 챙겼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은 회삿돈을 개인돈처럼 건넸고 진 검사장은 이를 갚지 않아 논란이 됐다.

주식특혜뿐만이 아니다. 김 회장은 2008년 넥슨이 소유한 3000만원 상당의 고급 승용차를 진 검사장에게 무상으로 제공했고 11회에 걸쳐 진 검사장 가족 해외여행 비용을 대납했다. 진 검사장이 항공권을 구매하면 넥슨 측에서 보전해주는 형식이었다.


김 회장이 진 검사장과의 불투명한 관계를 넘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관계를 다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자회사인 넥슨코리아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처가 소유 1300억원대 부동산을 매입했다가 1년4개월 만에 되판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실상 우 수석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이라는 비판이다.

넥슨은 강남 신사옥을 짓기 위해 부지를 매입했다가 판교 인프라가 빠르게 구축되고 일본법인이 사옥 투자를 반대해 되판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미 정경유착으로 물든 넥슨의 오명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주 NXC 회장. /사진=머니투데이DB
김정주 NXC 회장. /사진=머니투데이DB

◆1인 경영, 수직지배구조 탓?

이번 사태로 넥슨의 지배구조도 도마위에 올랐다. 김 회장은 이번 수사결과로 넥슨재팬 등기이사를 사임했지만 NXC 회장직은 물러나지 않았다. 김 회장과 그의 부인은 현재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 지분 96.9%를 소유했다. NXC는 일본 상장회사인 넥슨재팬의 지분을 가졌으며 넥슨재팬은 넥슨코리아의 지분 100%를 보유했다. 넥슨의 본사는 일본 넥슨법인이고 한국의 넥슨은 넥슨코리아라는 이름의 자회사가 된 것이다. 국내외를 넘나드는 복잡한 지배구조에 수직구조까지 갖췄다.  

김 회장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비추지 않았지만 배후에서 전문경영인을 갈아치운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이후 넥슨코리아 대표가 8번이나 교체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길게는 3년, 짧게는 1년이다. 업계에 따르면 주요 정책 결정이나 인수 합병, 지분 변동사항도 은밀히 결정된다.


이는 게임 벤처신화를 함께 일궈온 이해진 네이버 의장의 지분률이 4.6%인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해진 의장은 최근 라인 상장으로 경영을 투명하게 공개했고 라인 개발에 힘썼던 신중호 라인 글로벌사업총괄(CGO)에게 스톡옵션을 지급한 바 있다.

설상가상으로 페이퍼컴퍼니 의혹도 불거졌다. 지난달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2년 지주사인 NXC가 보유한 넥슨재팬의 지분은 54%에서 39%로 줄어든 반면 넥슨 유럽법인의 넥슨재팬 지분은 9%에서 19%로 늘었다. 넥슨 일본법인 지분의 일부가 유럽법인 등으로 이동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유럽법인의 주인은 김 회장 부부이며 2009년까지 해당 법인의 주소지가 조세회피처로 알려진 네덜란드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넥슨 관계자는 “투자 및 컨설팅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일 뿐”이라는 반쪽짜리 설명을 내놨다.

◆넥슨의 성공, 돈으로 샀나

‘성공한 게임업계 벤처 1세대’, ‘국내 게임산업의 큰 형님’으로 평가받던 김 회장. 그의 비리가 한꺼풀씩 벗겨질 때 마다 게임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일각에서는 ‘돈에 능한’ 김 회장의 사업수완으로 성공한 넥슨이 국내 게임업계의 발전을 저해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를 개발한 위젯과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한 네오플 등을 인수하며 외연을 확장했고 세계 최초로 ‘부분 유료화’ 모델을 도입해 돈을 끌어모았다. 게임은 무료로 할 수 있지만 좀 더 빨리 승리하기 위해서는 유료 아이템을 구매해야 하는 것. 이 때문에 넥슨은 ‘돈슨’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지난 20년간 넥슨의 사건사고도 돈으로 무마한 것이 아니냐는 게 업계의 시선이다. 넥슨은 지난 2006년 바다이야기 조사 당시 이 프로그램을 만든 회사에 수억원을 투자했지만 수사선상에서 제외됐다. 검찰은 이번 넥슨 게이트와 더불어 바다이야기, 넥슨과 게임업체 엔도어즈 주식 액면 병합, 메이플스토리 게임 이용자 1320만명의 개인정보유출 사건 등을 전면 재검토한다. 돈으로 치장한 넥슨의 민낯이 드러날 전망이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김 회장 사태는 밤낮없이 게임개발에 몰두하는 업계 종사자들에게 ‘능력보다는 돈’이라는 사고방식을 끼얹은 것”이라며 “국내 게임산업의 이미지가 실추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프로필

▲1968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 학사 ▲카이스트 대학원 전산학 석사 ▲넥슨 설립 ▲엠플레이 설립 ▲모바일핸즈 설립 ▲NXC 회장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