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LG전자는 중동지역에서 이슬람 성지인 메카(Mecca)의 방향을 표시해주는 휴대전화를 출시해 성공을 거뒀다. 대표적인 현지화 성공 사례다.


이런 현지화전략은 자동차 업계에서도 유효하다. 스마트폰 등 가전제품에 비해 안전법규의 영향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자동차의 경우 법규 충족을 위해 국가별 수출제품의 사양이 조금씩 변경되기 마련이다.

또 지역마다 다른 도로와 환경 등에 적응하기 위해 세부 부품이나 세팅 등이 달라지고 옵션사양 등이 조정되는 건 이제 당연하게 여겨지고 문화적 취향 등을 반영해 플랫폼 자체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차가 출시되는 경우도 있다. 해당 국가의 소비자들을 세심하게 고려해 만들어내는 ‘현지전략 모델’이 인기몰이에 성공하는 것은 일종의 '법칙'이다. 


크레타.
크레타.

◆맞춤형 전략으로 인도 RV판매 1위

현대자동차 인도법인(HMI)에서 생산하는 현지전략모델 ‘크레타’는 올 상반기 인도시장에서 4만5605대가 판매되며 레저용 차량(RV) 판매 1위에 올랐다. 업계에서는 크레타의 인기비결을 “철저한 분석을 통해 인도시장에 맞춤형 차량을 내놨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크레타에는 다양한 현지화 요소가 적용됐다. 먼저 시크교도들이 착용하는 터번을 고려해 충분한 헤드룸을 확보했고 열대기후에 맞춰 에어컨 성능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비포장 도로가 많은 현지상황에 맞춰 차량 지상고를 높게 설계하고 서스펜션을 강화했다. 이 정도는 인도시장에 진출한 완성차 업체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적용한다.


현대차는 경적의 내구성을 강화하고 대시보드를 평평하게 제작하는 등 현지의 상황을 더욱 치밀하게 적용했다. 경적을 자주 울리고 자신이 모시는 힌두교 신상을 차에 올려놓는 인도의 운전문화를 반영한 것.

여기에 인도시장에서 흔치 않은 ‘자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덕분에 늘어나는 인도 여성운전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얻었다.


◆중국에선 SUV도 '롱휠베이스'

지난 4월 열린 베이징모터쇼에선 글로벌 고급차 업체들의 ‘롱휠베이스’ 모델이 단연 눈에 띄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신형 E클래스 LWB(롱휠베이스) 버전을, 아우디는 A4의 휠베이스를 늘린 A4L을 선보였다.

고급차 브랜드는 대개 글로벌 시장에서 플래그십 모델에만 롱휠베이스 모델을 두는 것이 보통인데, 이 이하의 세그먼트에서 롱휠베이스는 오직 중국에서만 존재한다. 넓은 실내공간을 선호하는 중국인들의 취향을 고려한 것. 이는 비단 세단 모델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BMW는 자사의 가장 작은 SUV 라인업인 X1에도 롱바디(Li) 모델을 만들어 중국시장에 출시했다.


중국인들이 이토록 넓은 실내공간을 원하는 이유는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의 교통난과 관련이 깊다는 게 업계의 추측이다. 막히는 도로에서 오래 있으려면 아무래도 실내공간이 넓은 것이 편하다. 또 일반적으로 가족이 3대에 걸쳐 차를 공유하다 보니 뒷좌석에 항상 누군가를 태우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가격이 문제면 저가모델로 승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서는 토요타의 동남아시아 전략모델 ‘아반자’가 가장 성공한 ‘현지화 모델’로 꼽힌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이 차는 옆 나라인 말레이시아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어 국영 자동차 기업이 유사모델을 만들어낼 정도다.
토요타 아반자.
토요타 아반자.
소형 미니밴 아반자의 성공이유는 간단하다. 일반적으로 대가족인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7인승 밴 ‘이노바’의 인기가 높았는데, 토요타는 이 차를 사고 싶지만 가격이 비싸 사지 못하는 고객층을 잡기 위해 몸집을 줄이고 가격을 대폭 절감한 아반자를 내놨고 대성공을 거뒀다.

◆‘현지모델 국내도입’ 원하는 소비자들


다양한 해외전략 모델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근간에는 완성차 업계의 ‘현지공장’ 전략이 있다. 생산 인건비를 절감하거나 FTA 이전 관세절감을 주 목적으로 설립한 현지공장에서 각자 생산물량을 나누며 미국에서는 합리성을 강조하고, 유럽에서는 작지만 완성도가 뛰어난 자동차를 생산하며 중국시장에서는 중국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휠베이스를 늘리는 일이 가능해진 것.

최근에는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 전략모델을 원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자동차에 대해 보는 눈이 높아지며 취향이 다양화 된 것. 인터넷 상에선 많은 소비자들이 유럽에서 생산되는 기아차 씨드의 국내출시를 원하고 르노나 닛산, GM의 신모델이 해외에서 발표되면 국내 출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세계화와 현지화가 동시에 진행되며 고객들은 더욱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게 됐다”며 “국내시장에 반응이 좋다고 해도 노조와의 관계 등으로 차량을 직접 들여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앞으로 차량개발에 이런 소비자의 반응이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