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잠잠해진 '쿠팡 vs 물류협회 싸움', 왜?
박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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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로켓배송 /사진=쿠팡 제공 |
-쿠팡과 한국통합물류협회, 공생관계임에도 갈등
-국토부 업계 의견 수렴해 최종안 10월 발표
-DHL·UPS·FedEx는 항공법, 우체국택배는 체신법 등 유사업종도 논란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소셜커머스업체 쿠팡을 제소한 지 2달이 지났다. 당시만 해도 엄청나게 큰일이 난 것처럼 떠들썩했지만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잠잠하다. 왜일까.
쿠팡과 물류업계는 공생관계다. 물류업계에선 로켓배송을 앞세운 쿠팡에 일부 ‘밥그릇’을 빼앗겼다고 여길 수 있지만 반대로 보면 물건을 사들이고 되파는 ‘큰 고객’이라 관계가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협회는 얘기가 다르다.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니 작은 일이라도 해가 된다면 반대부터 하고 보는 것.
◆이유① - 쿠팡의 로켓배송·아이템마켓 물류 ‘큰 손’
물류협회 입장에선 쿠팡의 ‘로켓배송’이 눈엣가시다. 2014년 3월부터 시작한 로켓배송은 쿠팡에서 제품을 사면 ‘쿠팡맨’이 24시간 내에 배달해주는 빠른 배송서비스로, 9800원어치 이상 사면 배송비를 받지 않는다. 이런 배송행위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배송 때 이용하는 차가 논란이다.
택배차들은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을 달아야 하는 반면 쿠팡의 배송차는 ‘흰색’이다. 협회는 쿠팡의 이런 행위를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으로 보고 지난 6월1일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다. 화물자동차운송사업은 현행법상 ‘다른 사람의 요구에 따라 화물자동차를 사용해 화물을 유상으로 운송하는 사업’으로 규정된 만큼 로켓배송을 유상운송행위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2001년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금지조치도 예로 들었다. 물류협회 관계자는 “당시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르면 셔틀버스는 형식상 무상운행이지만 결국 모든 상품가격에 전가되므로 실질상은 유상운송으로 봤다”면서 “쿠팡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하지만 쿠팡은 직접 사놓은 물건을 소비자에게 팔 때 로켓배송을 해준다. 게다가 3500대에 달하는 배송차가 모두 쿠팡 소유라 유지보수도 직접 하며, 배송을 책임지는 ‘쿠팡맨’도 직접 고용한다. 따라서 “내 물건을 내가 직접 갖다 주는 데 문제될 것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여기까지가 그동안의 쟁점이다. 팽팽히 맞서며 공방전을 벌였지만 싸움을 거는 쪽도 행동보다는 말이 앞섰다. 이는 쿠팡의 로켓배송이 전국을 커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쿠팡은 로켓배송 불가지역에선 물류업체와 계약을 맺고 배송을 위탁한다. 국내 한 대형 택배사가 해당 업무를 맡고 있다.
또 쿠팡이 직접 매입하는 물건을 물류창고로 옮겨올 때도 화주와 직접 계약한 물류회사가 배송을 책임질 수밖에 없고, 인기 상품을 상위에 노출시켜주는 ‘아이템마켓’은 오픈마켓 형태여서 판매자가 물류회사와 계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으로 거래가 늘어나면 택배 이용량도 덩달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협회가 싸움을 걸었지만 소속기업들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쿠팡이 물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형 온라인 쇼핑몰이다보니 개별 물류업체가 불만을 표출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번 싸움의 특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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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통합물류센터 /사진=CJ대한통운 제공 |
◆이유② -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 논의
물류협회와 쿠팡 간 싸움의 핵심은 ‘화물차 번호판’인데 이는 정부 정책과 관련이 있다. 정부는 2004년부터 화물차 영업용 번호판 발급기준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꿨다. 신규발급을 제한해 화물차 운송단가를 유지하려 한 것인데 문제는 택배차도 화물차로 분류돼 발이 묶였다. 빠르게 늘어나는 전자상거래 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자 불만이 터져나왔다.
게다가 DHL과 UPS, 페덱스(FedEx) 등은 항공법이 적용되고 우체국택배는 체신법이 적용돼 노란색 번호판을 달지 않고 영업이 가능하다. 거의 비슷한 형태의 업종임에도 제도의 사각지대 안에 있어서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쿠팡은 수천억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으며 이런 맹점을 파고들었다. 쉽지않은 선택이지만 박리다매를 실현하려면 규모의 경제가 뒷받침돼야 하기에 내린 결정이다. 직접 물건을 사서 빠르게 배송하는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다. 이를 위해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달러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문제는 국토부가 허가제로 운영 중인 화물차를 등록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 그런데 이 방안에는 대형업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택배업계와 배달서비스를 해주는 쿠팡 등 유통업계, 개인용달업계 등 크게 3개 업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물류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물류업계의 오랜 증차요구 때문이다. 시장 상황이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제도에 묶여 한계에 봉착했으니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정부가 손을 대자 또다른 논란이 생겨났다. 업체 입장에선 규제가 풀려야 덩치를 키우기 쉬워 반기는 입장이지만 협회는 화물차가 무작정 늘어나면 제2·3의 쿠팡이 생겨날 것이며 업계가 혼탁해져 결국 회원사에 해가 될 거라고 주장한다. 규제의 양면성 때문에 같은 업계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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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물류센터 /사진=쿠팡 제공 |
게다가 이번 제도 개정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개인용달업계라는 지적도 있다. 운수사업법상 영업용 번호판 양도양수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거래가격이 꾸준히 올랐고 최근엔 3000만원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웃돈을 주고 영업용 번호판을 산 사람들은 ‘투자금’을 날리게 되는 상황이어서 제도개편이 달갑지 않다.
분노한 업자들은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인 ‘화물연대’를 통해 공식 입장을 밝히며 생존권을 위협받는 제도개선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대형 물류사와 개인업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상황이 된 것.
현재 택배회사들은 택배기사를 직접 고용하기도 하지만 개인업자에게 일감을 주는 하청형태로 계약하기도 한다. 택배차 대수를 무작정 늘릴 수 없는 만큼 허가받은 차를 가진 개인업자와 손을 잡은 것이다. 번호판 규제가 풀리면 이런 관계가 어찌 될지 모른다. 택배회사가 이들을 품으면 될 것 같지만 원만히 조율될 지는 미지수다.
결국 같은 일을 하면서도 각 이해집단의 복잡한 관계가 미묘하게 얽혀 서로의 눈치만 보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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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투데이DB |
◆'키'는 정부의 손에
어쨌든 정부는 전자상거래시장 급성장의 영향으로 부족해진 택배용 소형화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 마련에 나섰지만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기가 쉽지 않다. 이해관계가 얽인 여러 당사자들의 의견과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을 들으며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여러 대안별로 영세사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완책을 강구할 예정”이라며 “아직 구체화된 건 없고 업계의 의견을 모아 10월에 최종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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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규 기자
자본시장과 기업을 취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