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쇼핑몰이 동네상권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상인들을 살려주세요.” 지난 8월24일 경기 군포시 산본역 인근의 복합쇼핑몰 ‘롯데피트인’ 정문 앞. 개점한 지 3개월이 지났음에도 산본 상인들은 삭발식을 강행하거나 곳곳에 현수막을 거는 등 롯데에 대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같은 날 경기 부천시 상동에는 2019년 준공 예정인 신세계 복합쇼핑몰의 건설을 저지하려는 상인들이 모였다. 일주일 전 이들은 민관협의회를 만들고 서명운동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처럼 거대유통기업이 짓는 초대형 복합쇼핑몰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최근 몇년 동안 확산됐다.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광주·목포·군산 등지에서도 복합쇼핑몰과 지역상권이 정면 충돌하고 있다.


산본 롯데피트인 앞을 메운 현수막들. /사진=김노향 기자
산본 롯데피트인 앞을 메운 현수막들. /사진=김노향 기자

◆경제논리 vs 상권침해 ‘갈등 팽팽’

롯데피트인은 ‘패션전문 쇼핑몰’을 콘셉트로 내세웠지만 내부에는 유명 음식점과 빵집, 카페, 편의점, 가구점, 생활용품점, 어린이놀이공원 등이 있다. 지상 10개층 가운데 7~9층은 음식점과 카페가 밀집했다. 


문제는 산본역 앞에 1990년대 신도시 건설 이래 20년 넘게 상권을 지킨 기존 음식점과 카페, 옷가게 등이 있어 이들의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산본 중심가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이모씨는 “휴일이나 어린이날엔 거리가 손님들로 북적였는데 최근엔 한산해졌고 반대로 롯데피트인 앞 도로는 주차장에 진입하려는 차들 때문에 30분 넘게 정체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롯데피트인 안 음식점들은 평일 낮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번호표를 받은 후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이 몇시간째 이어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산본 중심가는 문을 닫거나 매물공지를 붙인 가게가 수십개에 이른다.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대형상업시설이 들어온 후에는 집값과 상점 임대료가 오르는 데다 기존상권의 매출이 감소해 매물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조사에 따르면 복합쇼핑몰이 문을 연 후 반경 15㎞ 이내의 상권 매출은 평균 46.5% 감소했다. 음식점은 80%, 의류는 58.8%, 식료품 및 담배판매점은 43.1% 줄었다.

부천에 짓는 신세계 복합쇼핑몰의 경우 반경 800m 거리에 삼산시장이 있고 부평종합시장(2.2㎞), 부평문화의거리(2.3㎞), 부평지하도상가(2.7㎞)가 가깝다. 인천지역 상인 대표는 “복합쇼핑몰이 세워지면 주변 5~15㎞의 시장과 음식점, 잡화점 등의 매출이 평균 46.5% 떨어지고 2~3년 안에 60%가 폐업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통기업 입장에서 볼 때 복합쇼핑몰사업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신성장모델이다. 국내에서 복합쇼핑몰사업을 먼저 추진한 곳은 롯데로 일본 대형유통그룹을 본떠 설계했다. 지난해 롯데그룹의 매출액 83조원 중 쇼핑부문이 차지하는 규모는 전체의 35%에 달했다. 롯데는 2011년 롯데몰 김포공항점에 이어 롯데피트인 동대문점, 잠실 롯데월드몰, 롯데몰 수원점 등을 지을 때마다 지역상인들과 마찰을 빚었지만 복합쇼핑몰 13개를 추가 오픈할 계획이다.

신세계도 지난해 광주와 올해 부천 등지에서 복합쇼핑몰사업을 추진하며 상인들과 부딪쳤다. 하지만 신세계 복합쇼핑몰은 호텔과 백화점, 면세점, 창고형할인매장 등을 입점시켜 고용 2만6000명, 생산 1조4000억원의 경제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복합쇼핑몰이 백화점과 영화관뿐 아니라 동물원, 어린이놀이공원, 미술관, 공연장 등을 짓고 지역의 랜드마크로서 지역상권을 주도한다.


롯데몰 안 어린이 놀이공원. /사진=머니투데이DB
롯데몰 안 어린이 놀이공원. /사진=머니투데이DB

◆복합쇼핑몰 이미 지었는데… 상인들 ‘상생’ 요구

지난해에 이어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복합쇼핑몰사업의 상권 침해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롯데가 기업으로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역상권을 무너뜨리고 빈부격차를 극심하게 만드는 상황에서는 양극화 해소가 우선과제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복합쇼핑몰의 고용효과 등을 내세우며 지역주민을 설득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국감 당시 “유통기업이 고용하는 숫자가 직간접적으로 약 13만명”이라며 “지역상인들과 협상 후 사업을 결정하고 있고 앞으로도 함께 상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복합쇼핑몰 허가 시 반경 3㎞ 내의 지자체와 협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복합쇼핑몰사업이 지역상권에 큰 영향을 주는 만큼 기업이 상인들과의 협력계획을 세우고 상생발전 협의회나 기금 등을 설치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태순 산본중심상가상인회 회장은 “이미 지어진 복합쇼핑몰을 없앨 수는 없지만 같은 상권에 속한 이상 상생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기업 측이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롯데피트인 개발프로젝트 관계자는 “이해관계자가 많아 어려운 점이 있다”면서 “그래도 지역상인들과 타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