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서소문동의 대한항공 빌딩/자료사진=뉴스1 DB
서울 중구 서소문동의 대한항공 빌딩/자료사진=뉴스1 DB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의 매출채권을 담보로 설정해 6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대한항공은 21일 이사회를 열고 한진해운이 화주들에게 받을 운임료 등의 매출채권을 담보로 하역비로 쓰일 6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하역비용 등에 막혀 지체되던 한진해운 선박들의 하역작업이 속도를 낼 전망이지만 자금지원이 늦어지며 한진해운발 물류사태 수습에 드는 비용이 더 늘어났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된다.


당초 17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되던 물류대란 처리비용은 현재 많게는 27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선박임대료와 유류비 등의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송지연으로 인한 화주들의 소송 가능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앞서 한진그룹의 책임론이 강화되자 자신의 사재 400억원과 대한항공을 통한 600억원의 자금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조 회장 소유지분을 담보로 한 사재출연은 조속히 이뤄졌으나 대한항공을 통한 600억원 지원은 난항을 겪었다.


대한항공이 빠른 결정을 하지 못한 것은 ‘배임’을 피해 지원할 방법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10일 해외터미널(롱비치터미널) 지분 담보를 우선 확보한 후 지원 방안을 의결했으나 조속한 자금마련이 불가능하고 불확실성이 존재해 다른 방안을 찾아왔다.

끝내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의 매출채권을 담보로 지원하기로 결정하자 업계에서는 ‘쉽게 풀렸을 일이 너무 오래 걸렸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한진해운의 매출채권 존재는 법정관리 돌입 직후 이미 법원에 보고된 사항이다. 한진그룹과 정부 모두 이를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빠른 시점에 지원을 했을 수 있다는 아쉬움이 남아서다.


다만 이 방안 역시 ‘배임’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진해운은 보유한 매출 채권 중 최대 1억달러를 회수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한 실사를 통해 회수가능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이 역시 배임의 소지가 있다. 담보설정 이전에 다른 채권자들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 점도 변수다.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이 같은 방안을 택한 것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한진그룹의 책임을 운운하고 금융당국은 그룹 계열사에 대한 여신조사에 돌입하는 등 정부의 압력이 강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재계 관계자는 “한진그룹이 정부의 압력을 못이겨 ‘배임’ 논란을 무릅쓰고 지원을 하는 모양새”라며 “물류대란 수습비용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와 한진그룹 측의 조율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