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영화 '터널'이 현실 안되려면
김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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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흥행한 영화 <터널>은 무너진 터널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한 가장의 이야기다. 많은 장면이 인상 깊지만 개인적으로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 부분은 구조대가 터널 설계도를 믿고 구조작업을 벌이다가 뒤늦게 엉뚱한 지점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다.
영화에서 부실시공이 불러온 재앙은 상상을 초월한다. 구조대 대부분은 구조의지가 꺾이고 주인공은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설계도만 지켰어도…’라는 안타까움과 함께 씁쓸한 현실을 깨닫는다.
영화의 극적 구성을 위한 요소지만 이런 일은 실제로도 일어났다. 지난 9월7일 대전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4년 원주-강릉 고속철도(KTX) 매산터널 건설 도중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터널하중을 지지하는 강관 420개를 10㎝~2m가량 잘라내고 설계기준을 위반했다며 관련자 1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시공사 현대건설과 감리단 동명기술공단이 문제를 알고서도 발주처인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알리지 않았고 두 회사가 자체적으로 재시공한 후 이를 은폐하고자 감리보고서를 허위작성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해 5월 발주처의 안전점검 과정에서 이 사실들이 적발되지 않았다면 엄청난 규모의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과연 우리는 제2·제3의 매산터널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부실시공만이 아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시설도 위태롭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국토교통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 국도의 터널 499개 중 화재탐지기와 비상경보가 없는 곳은 256개(51.3%)와 202개(40.4%)나 됐다. 심지어 기본적인 긴급전화도 설치하지 않은 곳이 179개(36%)에 달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모든 터널에 안전시설을 구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관리 주체와 규모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앞으로 터널을 지날 때마다 마음을 졸이며 ‘나는 아니길, 내 가족만은 아니길’ 빌어야 하는 걸까.
재난전문가들은 국내 도로의 특성상 터널이 많아 엄격한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부실시공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건축학과 교수는 “터널 안은 차량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사고에 대비한 안전시설을 갖추고 부실시공에 대한 처벌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는 영화에서 보듯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게 아니다. 한 사회의 모순이 뒤엉켜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제도와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이다. 반복되는 부실시공 후에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건설사와 진정성 없는 수습과정 등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다. 이를 바꾸지 않으면 재발을 막지 못할 뿐더러 우리 사회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영화에서 부실시공이 불러온 재앙은 상상을 초월한다. 구조대 대부분은 구조의지가 꺾이고 주인공은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설계도만 지켰어도…’라는 안타까움과 함께 씁쓸한 현실을 깨닫는다.
영화의 극적 구성을 위한 요소지만 이런 일은 실제로도 일어났다. 지난 9월7일 대전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4년 원주-강릉 고속철도(KTX) 매산터널 건설 도중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터널하중을 지지하는 강관 420개를 10㎝~2m가량 잘라내고 설계기준을 위반했다며 관련자 1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시공사 현대건설과 감리단 동명기술공단이 문제를 알고서도 발주처인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알리지 않았고 두 회사가 자체적으로 재시공한 후 이를 은폐하고자 감리보고서를 허위작성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해 5월 발주처의 안전점검 과정에서 이 사실들이 적발되지 않았다면 엄청난 규모의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과연 우리는 제2·제3의 매산터널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부실시공만이 아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시설도 위태롭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국토교통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 국도의 터널 499개 중 화재탐지기와 비상경보가 없는 곳은 256개(51.3%)와 202개(40.4%)나 됐다. 심지어 기본적인 긴급전화도 설치하지 않은 곳이 179개(36%)에 달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모든 터널에 안전시설을 구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관리 주체와 규모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앞으로 터널을 지날 때마다 마음을 졸이며 ‘나는 아니길, 내 가족만은 아니길’ 빌어야 하는 걸까.
재난전문가들은 국내 도로의 특성상 터널이 많아 엄격한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부실시공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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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영화에서 보듯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게 아니다. 한 사회의 모순이 뒤엉켜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제도와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이다. 반복되는 부실시공 후에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건설사와 진정성 없는 수습과정 등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다. 이를 바꾸지 않으면 재발을 막지 못할 뿐더러 우리 사회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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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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