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은 1978년 관측 이래 가장 큰 규모였다. 이후 수차례 여진이 발생하면서 국민의 불안감은 극도로 커졌다.


지진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일반적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안전할까’다. 특히 고층아파트는 국내 주거유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높은 층에 거주할수록 지진 대피에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심리는 부동산시장에도 여파를 미친다. 짧은 시간 안에 집값이 폭락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매도 문의가 늘거나 앞으로의 주택구매 계획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경주 지진 피해 농가에서 어르신이 무너진 지붕을 바라보고 있다./사진=이동훈 머니투데이 기자
경주 지진 피해 농가에서 어르신이 무너진 지붕을 바라보고 있다./사진=이동훈 머니투데이 기자

◆가을 이사철 분양시장 ‘우울’

국내 건축법상 1988년 이후 건축허가를 받은 3층 이상의 주택은 지진규모 5.5~6.5에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를 해야 한다. 고층아파트일수록 지진 충격에 잘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설계하지만 지난달 발생한 경주 지진 후에는 아파트 저층이나 단독주택에 대한 문의가 급증했다.


경주지역 공인중개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규모 5.8의 지진 이후 아파트 저층 매수나 전세를 문의하는 경우가 늘었다.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예전에는 손님들이 선호하는 로열층이 주로 높은 층이었는데 지진 이후 7층 이하의 저층을 문의하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며 “6층이 빠르게 거래된 사례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런 분위기는 경주뿐만 아니라 부산, 울산, 대구 등 인근 대도시로 확산됐다. 경주 인근 울산에서는 지진이 일어난 며칠 만에 초고층아파트 매물이 나오기도 했다. 울산의 한 시민은 “지진 걱정 때문에 당장 이사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고층이나 집을 사는 것 자체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10월에는 지방에서만 아파트 2만9339세대가 분양을 준비 중이지만 부동산시장 분위기는 냉랭하다. 부산 해운대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실제 집값이 떨어지거나 급매물이 나오지 않아도 불안에 떠는 사람이 많고 저층 이사 상담이 늘어난 만큼 앞으로 지진 발생빈도가 많아질 경우 집값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아파트뿐만 아니라 경주 주요호텔을 비롯해 펜션과 리조트 등 휴양시설도 지진의 충격을 받았다. 지진 직후 경주시가 파악한 휴양시설 예약 취소율은 65% 수준이다. 취소한 관광객 수가 6000여명이며 이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액이 10억원가량으로 추정됐다.


◆동일본 대지진 후 집값 83% 폭락

오랜 시간 대지진을 겪어온 일본에서는 지진이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크다. 먼저 건축연한이나 목조, 철골 등 건축정보를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많은 사람이 집을 사기 전 지반이 단단한 지역인지 파악한 후 부동산에 투자한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발생 후에는 집값 폭락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도쿄 부동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당시 도쿄의 20층 이상 고층아파트 가격은 지진 한달 만에 82.8% 하락했다. 두달 후인 5월에도 아파트값이 39.5% 내렸다. 고층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면서 일반아파트도 27.3% 떨어졌다. 이후 인근 지역 재개발사업이 중단되고 초고층 주상복합타운 건설이 취소되기도 했다. NLI리서치연구소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좋은 전망을 갖춘 곳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