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 대리는 결혼한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아이 계획이 없어?”, “아침마다 우는 애를 두고 출근하려면 얼마나 힘든데…. 최 대리는 남편만 챙기면 되니까 편하겠네.” 결혼 7년차 직장인 최민정씨(37·가명)는 동료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이 늘 불편하다. 남의 사정도 모르고 내뱉는 불필요한 관심에 짜증만 늘어간다. 최씨와 최씨 남편이 버는 돈은 월 500만원. 여기서 전세대출이자에 생활비, 공과금을 내면 100만원가량 저축한다. 이마저도 아이가 없을 때 가능한 일. 주변에 아이가 있는 가정을 보면 빠듯하게 살아온 신혼생활로 돌아갈 것 같아 고민이 깊다.


#2. 중소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박인영씨(38·가명)는 최근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다. 둘째 아이의 잦은 병치레로 연차를 많이 썼더니 부장의 눈밖에 났다는 얘기가 들린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김지아씨(35·가명)는 팀원들과 관계가 두텁고 업무성과가 뛰어나 내년까지 계약이 연장됐다. 김씨는 내년에 남자친구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일자리 보장이 우려돼 당분간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이다

#3. 3년 전 박아름씨(31·가명)는 남편을 만나 화려했던 솔로생활을 청산했다. 주말에는 남편과 영화를 보고 쇼핑을 즐긴다. 연애시절부터 박씨 부부는 ‘아이 없는 결혼생활’을 계획했다. 아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여유로운 부부생활이 더 소중해 출산은 생각하지 않는 것. 남들이 뭐라고 해도 박씨에게 출산은 하나의 선택일 뿐 필수사항이 아니다.


[창간9-인구절벽] 저출산, 문제는 '일자리와 집'이야

◆아기 울음 사라진 나라, 출생아 수 최저

갓난아기의 울음이 사라졌다. 늦게 결혼해 아이를 적게 낳고 결혼을 해도 자녀가 없는 ‘딩크족’이 늘었다. 2030세대는 출산을 포기하는 이른바 ‘출포자’로 불린다. 지난해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초산연령은 32세로 드러났다. 35세 이상 출산 여성비율은 23.9%까지 증가했다. 결혼연령이 늦어지면서 여성의 임신과 출산도 늦어졌고 자연스럽게 출산율이 하락했다.

통계청이 조사한 지난 7월 출생아 숫자는 3만3900명으로 전년대비 7.4% 감소했다. 7월까지 누적 출생아 숫자는 24만92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9% 줄었다. 월별·누적 기준 모두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저치다.


정부는 올 2분기 합계출산율을 1.16명으로 전망했다. 합계출산율이 1.3명 미만이면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합계출산율이 1.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포르투갈(1.23명)에 이어 두번째로 낮다.

저출산의 근본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먹고사는 문제 즉, ‘일자리’로 귀결된다. 통계에서 보이듯 여성들은 출산과 일자리가 연결되면 출산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직장인 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미혼여성의 38.3%가 ‘출산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기혼자가 계획하는 자녀 수는 1.8명, 미혼자의 예상 자녀 수는 1.1명으로 평균 1명 이상의 아이를 낳는 것을 꺼린다.

따라서 젊은층이 결혼과 일을 병행하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10년간 150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실효성은 미미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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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150조 투입, 변죽만 울린 저출산 대책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은 대부분 임신·출산·육아와 관련된 비용부담을 줄임으로써 출산을 장려하는 데 포커스가 맞춰졌다. 쉽게 말해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 필요한 ‘직접비용’을 지원하는 방법이다. 반면 여성이 출산할 경우 감내해야 하는 경력단절 등의 ‘기회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저출산 대책이 실현되려면 정부정책 외에도 출산·육아에 대한 기업 및 남성사회 전반의 인식변화가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2006년 발표된 1차 저출산대책은 남녀 초혼 연령 상승에 따른 가임기간 축소, 취업·만혼(결혼을 늦게 하는)여성의 출산 지연을 저출산의 원인으로 꼽았다. 주로 고용 불안정과 집값 부담, 여성의 경력 유지와 양육 부담이 크다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무상보육, 육아휴직제, 유연근로제 등 자녀가 있는 가정에 지원이 집중돼 합계출산율은 2005년 1.08명에서 지난해 1.24명으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2차 저출산대책(2011~2015년) 역시 청년세대의 정책지원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했다. 저출산 관련 예산 37조7200억원 중 34조8500억원(92%)이 출산·양육정책에 투입된 반면 고용정책 예산은 2조6900억원에 불과해 일자리·주거 등 결혼지원책이 미흡했다.

세번째 대책인 ‘출생아 2만명 늘리기’ 정책도 실효성 논란이 일기는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난임시술 의료비를 고소득 계층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소득기준 초과자 1만명과 경제적 부담으로 시술을 중단한 2만1000명 등 총 3만1000명이 추가 시술을 받으면 최소 7000명에서 최대 1만1000명의 추가 출생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재원조달 방안이 구체적이지 않다. 복지부는 난임시술에 610억~65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지만 어느 예산을 떼어 어디에 투입할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난임시술 지원대상에 포함된 상위소득자들이 정부의 시술비 지원으로 출산에 나설지도 미지수다.

또한 남성 육아휴직수당의 휴직급여 상한액을 1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상향조정한 것 역시 남성의 육아휴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여성의 육아휴직을 동반하지 않으면 출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밖에 회사가 육아휴직을 거부하면 500만원 이하 벌금을,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지만 문제는 노동자가 불이익을 무릅쓰고 회사의 부당함을 신고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오승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결혼에 대한 가치가 변한 데다 청년실업과 고용 불안정 등 고용문제, 높은 주거비용과 사교육비를 우려해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며 “안정적 출산율 제고를 위해선 혼인·출산·양육을 어렵게 만드는 일자리, 주거, 교육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