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포비아’(화학제품 공포증)가 오는 것일까. 가습기 살균제 성분 논란이 거세다. 올해 ‘옥시사태’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하반기에도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이번엔 치약이다. 지난달 26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아모레퍼시픽 치약 11종에서 치약제에 허용되지 않은 원료 CMIT·MIT(메틸클로로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가 함유됐다고 발표했다. 국민들은 들끓었다. 옥시사태 당시 103명의 목숨을 앓아간 바로 그 성분, CMIT와 MIT가 우리가 매일, 하루에 3번이나 사용하는 치약에서 발견됐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은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이마트 왕십리점 고객만족센터에 환불조치 후 회수된 아모레퍼시픽의 치약들이 카트에 가득 쌓여 있다. /사진=뉴스1 DB
지난달 29일 서울 이마트 왕십리점 고객만족센터에 환불조치 후 회수된 아모레퍼시픽의 치약들이 카트에 가득 쌓여 있다. /사진=뉴스1 DB

◆문제의 성분 ‘CMIT·MIT’, 정말 인간에 유해한가

CMIT·MIT는 사실 많은 국내 공산품에 광범위한 용도로 함유된 물질이다. 가습기살균제에도 쓰였고 샴푸·린스 등과 같은 씻어내는 화장품류, 가글액과 같은 의약외품에도 사용된다.

이 물질이 많이 쓰이는 이유는 탁월한 '보존' 능력과 '살균' 용도 때문이다. 화장품의 경우 오래 두고 쓰면 곰팡이가 생길 수 있어 이를 억제하는 보존제로 CMIT·MIT가 사용된다. 또한 가습기살균제에서 쓰인 것처럼 살균 용도로도 쓰인다. 일반적으로 보존제보다는 살균용도로 쓰일 때 더 많은 CMIT·MIT가 제품에 함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CMIT·MIT는 옥시사태에서 입증됐듯 유해한 물질이라는 점에선 이견이 없다. 물론 당시 옥시제품 피해자의 폐 손상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계열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CMIT·MIT 계열의 화학물질도 인간이 흡입 시 폐 섬유화 등을 일으킬 수 있어 문제가 됐다. 정부도 CMIT·MIT가 폐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어 유독물질로 지정한 상태다.

이번 사태에서 식약처는 아모레퍼시픽 치약 11종에 CMIT·MIT가 0.0022∼0.0044ppm 함유됐으나 양치한 후 입안을 물로 씻어내는 제품의 특성상 인체에 유해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미국·유럽 등 전세계적으로 치약의 보존제로 CMIT·MIT 사용이 가능하나 우리나라에서는 벤조산나트륨, 파라옥시벤조산메틸 및 파라옥시벤조산프로필 3종만 치약의 보존제로 허용한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CMIT·MIT를 치약에 최대 15ppm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기준이 마련돼 있다. 식약처는 국내 치약제품에 함유된 CMIT·MIT가 0.0022∼0.0044ppm로 소량이고 물로 씻어내면 큰 문제가 없지만 보존제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회수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CMIT·MIT는 코로 마시면 폐 손상이 우려되며 피부에 닿으면 붓기나 염증 등 과민성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입으로 삼킬 때는 많은 양을 먹으면 위험하지만 기준치 이하에선 부작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CMIT·MIT 유해성의 핵심은 '폐로 흡입하느냐'와 '물로 씻어내느냐'로 갈린다. 가습기살균제처럼 우리가 코로 흡입하는 성분의 경우 폐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반면 이번 치약사태는 입안을 물로 씻어내기 때문에 유해성이 적다는 것이다.

국내 한 생활용품회사 관계자는 "CMIT·MIT가 생각보다 많은 생활용품에 함유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대부분의 제품에는 인체에 유해하지 않을 정도의 분량만이 함유된다. 이를테면 CMIT·MIT가 함유된 치약 사용으로 인해 치사량에 이르르려면 수만개의 치약을 일생동안 사용해야 한다. 코로 흡입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정미 의원이 지난달 27일 국정감사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함유된 치약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이정미 의원이 지난달 27일 국정감사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함유된 치약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불안’과 ‘괜찮다’로 갈린 소비자, 정부의 허술 관리도 한몫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국내 한 대형마트에 아모레퍼시픽 '메디안' 치약을 환불하러 온 대학생 이모양(22)은 "치약 뒷면에 CMIT·MIT가 함유된 것을 확인하곤 추석 때 선물받은 치약 모두를 환불받으러 가져왔다"면서 "물로 씻어내면 안전하다고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CMIT·MIT가 함유되지 않은 치약을 구매해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환불고객 주부 남모(35)씨는 "아이들이 사용했을 때 걱정이 크다"면서 "조심해서 나쁠 일은 없으니 아예 환불받고 다른 제품을 사용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번 사태에 대해 너무 유난을 떨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치약코너에서 제품을 고르던 주부 양모(44)씨는 "옥시사태로 우리가 가습기살균제 성분에 너무 예민해져 있는 것 같다"면서 "해외는 치약에 사용되는 CMIT·MIT 기준치가 오히려 더 높은데도 큰 문제가 없지 않았나. 정부가 나서서 불안을 조장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직장인 정모씨(38)는 “이런 우려 때문에 평소 가격이 비싸더라도 친환경성분이 함유된 치약을 사용 중이다”면서 “벌써부터 많은 업체들이 자사 제품에 CMIT·MIT가 함유되지 않았다며 마케팅을 펼치더라. 괜히 이번 사태로 '친환경성분' 제품에 프리미엄이 붙어 가격이 더 뛰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문제는 정부의 허술한 성분관리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모레퍼시픽 11종 치약의 원료공급업체인 미원상사는 치약, 구강청결제, 화장품, 샴푸 등의 제작 원료를 국내외 30개 업체에 연간 3000톤이나 납품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부는 CMIT·MIT의 총 생산량, 총 수입량, 해당 물질이 어떤 용도로 어떻게, 얼마나 쓰였는지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이번 유해제품 환불 문제도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국정감사 현장에서 제기해 알려진 사안이다. 심지어 제품 환불에 대한 모든 책임도 아모레퍼시픽에 떠넘긴 상태다. 

참여연대 가습기살균제참사대응 태스크포스(TF) 관계자는 "이번 사태 후 식약처가 소비자의 사용경과나 내용을 정밀히 파악하고 그에 대한 업체들의 책임을 중하게 물어야 맞는 것 아니냐"며 "하지만 그다지 심각한 일이 아니라며 적당히 넘어가려는 듯 보이는 식약처의 태도는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CMIT·MIT 외에도 항균필터 및 스프레이 제품 등 생활 속 유독화학물질에 대한 정부의 관리체계가 제대로 돼 있는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