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색'으로 승부하는 만화카페… '친숙함'으로 승부하는 만화방

# 학교를 마치면 자연스레 발걸음이 만화방으로 향했다. 새로 나온 책을 찾고 있으면 친구들도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하나둘씩 만화방으로 모였다. 한참 만화에 빠져있다 보면 어디선가 고소한 라면냄새가 났다. 같은 라면인데 만화방 아저씨가 끓인 라면은 이상하게 맛있었다.


PC방, 보드게임방 등에 밀려 사라지던 추억의 만화방이 만화카페로 다시 태어났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특색 있는 서비스로 무장한 만화카페는 만화방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최근에는 웹툰의 인기에 힘입어 젊은 층에서 만화카페의 인기가 대단하다. 하지만 그 틈바구니에는 오래전 만화방의 모습을 간직한 곳도 있다. 푹신한 소파에서 만화책을 쌓아두고 하루 종일 뒹굴 수 있는 낭만을 가진 만화방은 예전부터 우리에게 ‘쉼터’였다.

만화카페. /사진=장효원 기자
만화카페. /사진=장효원 기자

◆만화카페: 데이트 장소로 ‘인기’

젊음의 거리 홍대 중심가에 위치한 한 만화카페. 철조망 위에 유리를 붙여 꾸며진 검은색 철문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원한 공기와 함께 각종 포스터가 붙어있는 통로와 신발장이 보였다. 신발장 옆에는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안내문구가 적혔다. 구두를 신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던 터라 행여 주변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줄까 걱정했지만 카페 내부를 보니 실내화가 왜 필요한지 알 것 같았다. 이 카페는 의자와 소파 대신 널찍한 침대와 등받이를 마련해놓고 어디서든 만화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카페에 있는 손님 중 책상에 앉아서 만화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창가에서도, 다락방처럼 꾸며놓은 구석 공간에서도 다리를 펴고 쉬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어서다.


카페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장 입구와 비슷했다. 거친 시멘트 천장과 연결된 검정 철제 구조물에 달린 작고 노란 조명들이 실내를 비췄다. 그리 밝진 않지만 만화책을 보는데 부족함이 없는 적당한 수준이다. 조명과 연결된 철제 책장에는 액션, 순정, 소년만화 등 갖가지 장르의 만화책이 마치 전시된 작품처럼 정갈하게 꽂혀있다. 만화뿐 아니라 기존 만화방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패션잡지나 연애소설, 웹툰 단행본 등도 구비돼 있다. 이곳을 주로 찾는 고객들의 입맛에 맞춘 것이다. 많은 책들 사이에서 보고 싶은 책을 찾느라 고생할 필요는 없다. 카운터에 문의하면 컴퓨터로 책의 위치를 바로 찾아준다. 이 카페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주변에 대학교가 있어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거나 공강 시간에 많이 찾는데 종종 양복을 입은 직장인들도 퇴근 후 와서 만화책을 보고 간다”며 “주말에는 커플들이 데이트장소로 많이 이용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카페를 찾았을 때도 평일 낮이라 손님은 별로 없었지만 커플들과 여성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평소 만화방을 갈 때처럼 트레이닝복에 모자를 푹 눌러쓴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왔다면 부끄러울 뻔했다고 속으로 안도했다.
손님들은 대부분 마실 것과 간식거리를 옆에 두고 만화를 즐겼다. 이곳에서는 외부음식 반입을 허용하지 않지만 음료 외에도 여러 음식이 준비돼있다. ‘긴밤지새우볶음밥’, ‘간장계란밥 네가 쏘시지’ 등 톡톡 튀는 이름의 식사류와 함께 수입맥주도 판매한다. 만화와 함께 즐기는 맥주는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만화방. /사진=장효원 기자
만화방. /사진=장효원 기자

◆만화방: ‘아재들의 놀이터’는 계속된다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조금 걷다 보면 건물 3층에 있는 허름한 만화방을 하나 볼 수 있다. 이 만화방은 무려 15년 넘게 한 자리에서 영업 중이다. 만화방이 대중에게 인기를 끌었을 때부터 한파를 맞았을 때까지 모든 풍파를 견뎌온 셈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왠지 모를 구수함이 느껴지는 오래된 종이냄새가 코를 스쳤다. 법으로 실내 흡연이 금지된 터라 과거와 같이 매캐한 담배 찌든내는 맡을 수 없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빽빽하게 꽂혀있는 만화책들이다. 창문을 제외한 모든 벽면에 설치된 세겹으로 만든 책장도 모자라 소파 사이를 가로지른 책장에도 만화책이 빼곡히 쌓여있다. 제일 안쪽에 있는, 몇년간 아무도 펼치지 않았을 것 같은 누런 책을 보니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만화방 역시 모든 장르의 만화책을 구비해 놨다. 특히 만화카페에서 찾기 힘들었던 성인극화, 무협만화 등이 가게의 절반을 차지한 모습이다. 책을 분류하는 법도 다소 특이하다. 보통 서점에 가면 제목에 따라 가나다순으로 책을 정리하는데 이곳은 작가 이름에 따라 가나다순으로 책을 모아놓는다. 무협, 성인만화를 주로 보는 손님들은 제목보다 작가 이름을 보고 책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만화방 주인 강씨는 “여긴 예전부터 온 나이 든 단골들이 많다. 한번 오면 대여섯시간은 기본이고 더 오래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퇴근시간이 지난 후 방문한 만화방에는 40대 이상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십 권의 만화책과 라면그릇을 쌓아둔 손님도 있었고 옆으로 기대어 졸고 있는 손님도 있었다. 아예 만화책을 보지 않고 TV 앞에 앉아 야구를 시청하는 손님도 있었다. 만화방보다는 그냥 ‘아재들의 놀이터’로 이곳을 정의하는 게 더 어울릴 듯 싶었다. 아재 중 한명인 기자도 1시간에 1800원인 티켓을 끊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자장면을 시켰다. 가장 맛있는 자장면 중 하나가 ‘만화방 자장면’ 아니겠는가. 이곳에선 카운터에서 판매하는 과자나 음료 외에 다른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서 주문하면 식당에서 만화방에 500원을 수수료로 준다는 후문이다.

취재를 위해 이것저것 묻는 기자에게 만화방 사장이 던진 첫마디는 “이 근처에 만화카페가 많은데 거기를 가지 뭐 볼거 있다고 여길 왔느냐”였다. 오래되고 낡은 만화방보다 손님이 붐비는 만화카페가 더 관심 끌기 좋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기자는 말했다. “슬리퍼에 잠옷만 입고 편하게 올 수 있는 만화방이 없어지는 게 싫어서요.”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