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의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회사지배구조법)이 다음달부터 본격화된다. 금융회사들은 가장 민감한 사외이사 겸직과 임원 해임·연임, 임직원 겸직, 위험관리책임자 임면·면직, 최대주주 자격심사와 의결권 제한 등이 법제화되면서 깐깐해진 제도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특히 임원·사외이사의 선임요건이 까다로워져 내년 3월 말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의 선임작업에 업계의 이목에 쏠린다.


내년 말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해야 하는 금융지주회사는 다수의 사외이사 교체까지 맞물려 곤혹스러운 눈치다. 임기가 만료되는 지주 회장의 경우 차기 회장 선임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해 이사회가 바뀌는 것을 꺼리기 때문.

그러나 일각에선 금융전문가들이 새로운 사외이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벌써부터 물밑작업에 들어갔단 이야기도 나온다. 경영진 견제 등 사외이사의 책임이 무거워진 반면 CEO 추천 등 권한이 강화됐고 억대 연봉을 지급하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진제공=신한금융지주
/사진제공=신한금융지주

은행권에선 신한·KB·하나·농협금융지주와 우리은행 등 5대 은행권 사외이사 33명 중 26명(78%)이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신한금융의 경우 9명 중 6명, KB금융은 6명 전원, 하나금융은 8명 중 7명, NH농협금융은 4명 중 3명, 우리은행은 6명 중 4명의 임기가 내년 3월까지다.

지배구조법에 따르면 사외이사는 통상 2년의 임기가 보장된다. 이후 1년씩 연임이 가능하고 최장 6년까지 업무를 볼 수 있다. 다만 총 사외이사 수의 5분의1 내외에 해당하는 수를 매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새로 뽑아야 한다. 내년 3월 사외이사 교체 바람이 불어올 은행권의 지배구조 현황과 쟁점을 살펴봤다.


◆신한금융= 신한금융은 지난 3월 주총에서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해 논란이 있었다. 내년 3월 임기를 앞둔 한동우 회장이 차기 회장 선임과정에서 지배구조의 안정화를 꾀하기 위해 재일교포 출신 사외이사 2명을 신규 선임했기 때문. 또 기존 사외이사를 기타비상무이사에 앉혀 친정체제 이사회 구축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신한금융은 재일동포 사외이사 수가 이사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은 신한금융지주 창립멤버의 후손으로 신한금융의 주식도 대거 보유하고 있다.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는 6명이다. 이상경 사외이사(전 헌법재판소 재판관)는 임기 5년을 채워 물러나야 하지만 새 지배구조법은 최장 임기를 6년으로 늘렸기 때문에 1년 연임도 가능하다. 올해 임기가 1년 연장된 고부인 이사도 재일교포 출신으로 차기 회장이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할 경우 연임될 가능성이 높다.


신한금융은 오는 11월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열고 차기 회장 선임작업에 착수한다. 통상 회추위 첫 회의부터 최종 선출까지 약 1개월이 소요되므로 회장 선출절차는 한 회장의 임기 2개월 전인 내년 1월쯤 마무리될 예정이다. 주총시즌이 3월인 만큼 새 회장과 함께 뛸 사외이사도 적은 인원이 선임될 가능성이 있다.

◆KB금융=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의 실패작이라는 오명을 얻은 KB금융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6명을 전원 유임시켰다. 2년에서 1년으로 줄었던 임기를 1년 더 연장한 것. 따라서 내년 3월 모든 사외이사는 또 한차례 재선임과 퇴임의 갈림길에 선다.

KB금융의 사외이사 선임에 영향을 끼칠 만한 쟁점은 내년 11월 임기가 끝나는 윤종규 회장의 후임 선임이다. 지난 7월 이사회는 현직 회장에게 연임 우선권을 주는 방안을 뺀 경영승계규정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사외이사 전원으로 구성되는 지배구조위원회에서 차기 회장을 선임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내년 말은 정권교체기와 맞물려 벌써부터 외압과 낙하산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KB 내분 사태로 홍역을 치른 KB금융이 새로운 회장 선임으로 지배구조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선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내년 3월 교체될 사외이사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하나금융= 금융지주 중 하나금융의 사외이사가 대체로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더욱이 올해 김병호 부회장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해 금융당국이 요구한 지배구조 안정화도 구축했다. 지배구조법에선 금융회사 CEO의 비상상황 발생에 대비해 대행자 후보선임 등 비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김정태 회장을 포함해 2명의 사내이사를 추가한 것.

김정태 회장의 임기는 오는 2018년 3월 끝난다. 따라서 차기 회장의 후계구도를 예상하고 내년도 사외이사 선임을 논하기엔 이른감이 있다. 다만 사외이사 8명 중 7명의 임기가 내년 3월 끝남에 따라 두 사내이사가 차기 회장 후보로 나설 경우 새로운 사외이사 추천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높다.

◆NH농협금융= 상반기에만 2013억원의 당기순손실. 빅베스(부실채권 정리)를 선언한 NH농협금융은 올해 대대적인 체질개선에 나섰다. 현재 비상경영체계를 가동 중이고 자본 적정성을 높이려는 자본확충방안 마련에도 나섰다.

내부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사외이사의 자격 논란도 제기됐다. 더욱이 지난 2014년 선임된 김준규 사외이사가 서울지방변호사회에 겸직 등을 신고하지 않은 채 2년간 이사회로 활동해 논란이 됐다. 농협금융은 내년 3월 사외이사 선임과정에서 겸직 등의 확인절차를 구축할 예정이다.

◆우리은행= 사외이사 6명 중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4명은 전부 교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과점주주방식의 지분매각이 성공하면 4~7개 과점주주가 사외이사를 1명씩 새로 추천하기 때문. 과점주주 추천 사외이사가 선임되면 일시적으로 사외이사 수가 늘어나지만 기존 사외이사들은 임기가 끝나는 대로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사외이사는 이사회를 구성해 차기 우리은행장을 선임한다. 민간 과점주주들이 기업가치 제고 목적으로 자율성을 갖고 경영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과점주주가 추천한 이사회의 성향에 따라 우리은행의 지배구조가 결정될 전망이다.


[머니포커S] '지배구조법 물갈이' 긴장하는 은행권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