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동력 잃고, 금융당국 수장도 공석… 금융회사 직원들 '허탈'

금융권 성과연봉제 도입이 불투명해졌다. 정부가 노사갈등에도 성과연봉제 도입을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였는데 ‘최순실 게이트’로 동력을 상실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금융권은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한발 물러난다 하더라도 사용자(사업자) 측에서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어서다.


다만 내년 1월1일 도입 계획은 물 건너 갈 것으로 보인다. 대상자인 금융회사 임직원이 대부분 성과연봉제 도입을 불편해하고 노동조합도 파업 등으로 맞서면서 정부 도움 없이 사측이 나홀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논란을 키우고 시간만 낭비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그동안 성과연봉제 도입을 두고 임직원을 비롯해 노사간 적잖은 갈등을 빚었는데 허무하게 마무리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불안한 정국에 뒤로 밀린 성과연봉제

지난 7일 금융노조 소속 7개 금융공기업 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가처분 신청서엔 내년 1월1일부터 도입하기로 한 성과연봉제가 무효임을 구하는 본안 소송과 본안 소송이 끝나기 전까지 성과연봉제 도입을 유보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노조 소속 공기업 노조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자산관리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이다. 금융노조는 이번 가처분 신청과 무관하게 성과연봉제 반대를 위한 총파업에 나설 계획이다.

금융노조가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성과연봉제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사진=뉴시스 DB
금융노조가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성과연봉제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사진=뉴시스 DB

사실 금융노조가 총파업에 나서지 않아도 성과연봉제 도입일정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최순실 게이트’로 정부의 원활한 국정 운영이 불가능해졌고 국회가 추천하는 인물을 차기 총리로 선임하겠다고 청와대가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만약 차기 총리를 선임한다면 여당보다는 야당이 추천한 인물로 발탁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되면 성과연봉제는 흐지부지될 수 있다. 야당은 그동안 성과연봉제 도입을 반대해왔다.

올 초부터 성과연봉제 도입을 진두지휘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기획재정부 장관 및 경제부총리 내정자로 발탁된 점도 성과연봉제 시행을 더욱 어렵게 한다. 정부가 갑작스럽게 임 위원장을 부총리로 임명하면서 금융위원회도 사실상 수장이 공석인 상태다. 차기 금융위원장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바통을 이어받아도 여론몰이할 수 있는 시간이 촉박하다.

기획재정부도 사정이 비슷하다. 기획재정부는 유일호 현 부총리와 임 내정자 두 사령탑이 컨트롤하는 상황. 임 위원장의 인사청문회 일정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부총리 인수·인계작업을 진행 중이어서 사실상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하다. 성과연봉제 도입이 뒷전으로 밀린 셈이다.

◆도입 기류 지속… 은행직원 ‘긴장’


시중은행도 성과연봉제 도입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시중은행장들은 그동안 정부의 강력한 지침에 따라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하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동력이 힘을 잃으면서 재논의하겠다는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기류가 바뀐 것은 아니다. 사 측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분위기가 반전될 수 있다.

A은행 관계자는 “성과연봉제와 관련해 어떤 지침도 내려온 것이 없다”며 “(내년 1월1일) 도입 여부는 알 수 없다. 관련 부서에 문의해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B은행 관계자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준비가 사실상 올스톱됐다”며 “현재의 흐름으로 볼 때 내년에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C은행 관계자는 “내년에 시행이 될지 안될지 예측조차 하기 힘들다”며 “정부 추진과 무관하게 사측이 도입을 원한다면 따라가지 않겠는가. 지금은 지켜볼 뿐”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금융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해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하는 등 요란한 움직임을 보였는데 지금은 조용하다”며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역시 (사측에서) 어떤 준비를 하는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지침이 내려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도 흐지부지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확정 짓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성과연봉제 도입에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치는 행원도 적지 않았다. A은행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할 말이 없다”면서도 “임직원 상당수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힘들지만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B은행 관계자 역시 “정부가 추진하는 것보다 은행의 자율에 맡기는 게 논란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개인 의견을 전했다.

정부에 불만을 토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올 초까지만 해도 성과연봉제 도입을 두고 내부직원 간 갈등이 극에 달했다”며 “논란이 확산됐지만 누구 한명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결국 금융회사 직원만 마음고생한 것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정부의 신뢰를 깎은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것”이라며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 찬반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 사례는 마무리가 모호한 것 같다. 정부와 금융당국, 은행장(금융공기업 최고경영자)들의 무능을 보여준 것 아니냐. 허무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금융노조는 계속해서 총파업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사측이 대화의 창구를 열지 않고 특히 일부 금융공기업의 경우 사측이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어서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구체적인 명단은 공개할 수 없지만 일부 금융공기업과 은행권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 중”이라며 “언제 어떻게 성과연봉제 도입이 다시 논란의 핵으로 부상할지 알 수 없는 만큼 총력을 다해 막을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