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나 철도를 잇는 ‘터널’은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국가기반시설이다. ‘터널이 무너질까’라며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최근 건설분야 안전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유례없는 대지진이 발생하며 국민의 불안감도 커졌다. 본지 취재 결과 국내 터널공사에서 사용하는 일부제품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신기술로 지정한 ‘튜브형강관’은 재질표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가장 중요한 제품성능을 검증할 길이 없다. 이런 불량제품이 대기업의 입찰 가산점 제도에 의해 강매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터널강관 안전문제. 계속 두고봐도 될까. <머니S>가 터널 전문가와 관련업계 종사자, 정부당국 관계자들을 통해 터널강관의 안전여부를 다각도로 짚어봤다.


<글 싣는 순서>
①검증없는 제품 무분별사용
②록볼트 시공, 해외는 어떨까
③하청업체에 부담 주는 신제품 비용
④논란 후 제품교체 속출


국내 터널을 지탱하는 록볼트 3개 중 2개는 부실시공의 위험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내 토목경력 20~30년의 복수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체 시공에서 30%만이 안전기준을 통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록볼트는 3~5m 길이의 강관으로 암반 안에 부착시켜 암석 붕괴를 막는 기능을 한다. 국산 ‘이형봉강’(철근 종류) 록볼트가 시장점유율 90%를 차지하고 나머지 10%는 2011년 코오롱글로벌과 티에스테크노가 개발한 신기술 ‘튜브형강관’ 록볼트다. 문제는 이형봉강, 튜브형강관 둘 다 부실시공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감리절차가 허술하다는 데 있다.


/사진제공=삼성물산
/사진제공=삼성물산

◆튜브형강관 25년 기술… 국내 상용화 성급

전통적인 이형봉강 록볼트는 터널 안 구멍에 접착제를 바르고 철근을 끼워넣는 방식이다. 반면 튜브형강관은 수압으로 팽창시켜 암반에 달라붙게 만든다. 이형봉강의 경우 천장에 부착하면 중력에 의해 접착제가 흘러내리고 철근이 떨어질 염려가 있다. 실제 공사과정에서 인명사고가 많았다. 튜브형강관도 철판을 둥글게 말아 용접한 부위가 수압으로 찢길 위험이 있다. 특히 중국산의 경우 40%가 파손된다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말이다.

두 제품 모두 단점과 위험성이 있다. 토목업계 관계자는 “록볼트는 제품의 품질보다 암반 상태에 따라 어느 제품을 사용할지 선택하는 전문성과 설계기준을 지키는 공법으로 안전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 터널공사에서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지켜지지 않는다.


이형봉강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일부러 구부려 시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튜브형강관의 경우 해외에서는 기계공법을 이용해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지만 국내에선 일부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공사장 근로자 대다수가 연로하거나 외국인이라 사명감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게 터널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튜브형강관은 스웨덴 기업 아트라스콥코가 만들어 1985년 특허를 받았고 2010년 독점권이 해제됐다. 아트라스콥코는 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7년 국내 대리점을 설립한 후 1980년대 한국법인을 세워 경부고속도로 등의 터널공사에 납품했다. 현장마다 다른 종류의 제품이나 크기를 적용하는데 암반 상태에 따라 록볼트가 아예 필요없는 경우도 있다. 제품 생산단계에서 거의 모든 공정이 기계에 의해 이뤄지며 표본실험 중 불량제품이 발견되면 전량 폐기한다. 수압을 일으키는 ‘스마트 펌프’를 이용해 강관이 암반에 밀착됐는지 여부도 기계로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상으로 밀착 소요시간과 실패(Fail), 오류(Error) 등의 기록이 남는다. 밀착 소요시간은 암반 상태에 따라 4~5초 사이로 미세한 차이가 발생한다.

반면 국내 현장에서는 이런 공정과 검수절차가 비교적 미흡한 것이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강관이 암반 속에서 제대로 팽창했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운 데다 품질기준상 강도마저 이형봉강 대비 약한 편이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장기술자가 암반 상태를 보고 필요한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발주사의 설계기준과 시공사 임의로 제품 종류를 결정한다.


튜브형강관 기술을 개발한 이인규 티에스테크노 부사장은 “30년 기술을 하루아침에 따라가긴 힘들지만 여러 차례 성능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입증해가고 있다”고 해명했다.

튜브형강관 록볼트. /사진제공=테크비전
튜브형강관 록볼트. /사진제공=테크비전

◆국내업체 간 이권다툼… 부실시공도 잇따라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터널공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록볼트는 이형봉강이다. 튜브형강관은 공사장 안전사고와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시장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토목업계 관계자는 “터널공사를 위해선 두 제품 모두 필요하고 어느 하나로 대체하기는 불가능한데 국내 시장에서는 기존 업체와 신기술 업체가 이권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록볼트 비리도 부실시공에 한몫한다. 지난 9월 경찰은 원주-강릉 고속철도(KTX) 8공구 매산터널 건설공사에서 설계기준보다 최고 2m 짧은 강관 420개가 사용된 사실을 적발했다. 2014년 5월 시공사 현대건설이 공사절차를 어긴 현장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감사원은 영남과 강원지역 14개 터널에서 설계기준 대비 록볼트 수량이 평균 14% 적은 것을 발견했다. 감사원은 록볼트 특성상 현장 확인이 불가능해 관련서류를 조사했다. 록볼트를 빼돌려 시공사가 가져간 부당이익은 약 7억9400만원에 달했다.

토목경력 20년 이상의 터널 전문가는 “록볼트는 어떤 제품이 가장 적합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어떻게 시공하느냐에 따라 안전성이 달라지고 정확한 시공이 중요한데 국내 터널공사는 위험요소가 많다”며 “터널 붕괴사고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안전함을 주장하는 전문가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긴장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