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카드사가 비자카드의 해외이용수수료 인상분을 당분간 부담키로 했지만 부담기간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카드사는 현재 비자카드의 해외이용수수료 인상이 '독점지위 남용'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상태여서 소비자에게 인상분을 부과하면 자칫 비자카드의 수수료 인상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난처한 입장이다. 게다가 카드사가 인상분을 계속 내는 것도 비용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고민이다.


16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비자카드는 내년 1월부터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해외이용수수료를 현행 1.0%에서 1.1%로 0.1%포인트 인상한다. 이 수수료는 소비자가 해외에서 카드결제 시 부담하는 비용이다. 이를테면 해외에서 100달러어치 물품을 카드로 결제했을 경우 기존에는 101달러만 카드사에 내면 됐지만 앞으로 101.1달러를 카드대금으로 내야하는 셈이다.

카드사는 수수료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부과하지 않고 당분간 각사가 부담키로 했다. 수수료 인상 건에 대한 내용을 최소 한달 전 소비자에게 고지해야 하지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수수료 인상 내용을 소비자에게 알렸을 경우 비자카드의 수수료 인상을 카드사가 받아들이는 입장으로 내비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앞서 카드사는 비자카드의 수수료 인상이 불공정거래에 해당된다며 지난달 초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상태다.


/이미지=머니S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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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비자카드 ‘독점’ 여부 판단 늦어질 듯

문제는 비자카드의 수수료 인상 건에 대한 공정위의 결론이 언제 날지 모른다는 점이다. 카드사가 주장하는 수수료 인상의 쟁점은 비자카드가 ‘독점적 지위’를 남용했는지 여부지만 공정위가 이를 판단하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카드업계는 비자카드가 일방적으로 수수료를 올리는 등 독점지위를 남용했다고 주장하지만 공정위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비자카드가 독점지위를 지녔는지 따져야 한다. 카드업계는 비자카드·마스터카드·유니온페이 등 국제브랜드카드사 1~3위 회사의 카드사용액 비중이 지난해 기준 전세계 93%(‘닐슨리포트’ 1085호)로 비자카드의 독점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공정거래법 제4조는 독점지위의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시장지배적사업자로 ‘추정’한다”고 명시해 공정위의 판단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또 시장지배적사업자(독점사)로 판단하려면 ‘시장’을 판단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모호해 공정위는 ‘SSNIP(작지만 유의미하고 일시적이지 않은 가격인상)테스트’까지 고려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SSNIP테스트란 A사업자가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가 B사업자로 옮겨가는지 여부를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콜라회사(A)가 콜라가격을 10% 올린다고 했을 때 소비자가 사이다회사(B)로 갈아탄다면 콜라회사(A)의 시장지배력이 없다고 본다. A사업자의 독점지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비자카드의 독점지위를 인정하더라도 실질적인 가격 남용행위(공정거래법 제24조)에 해당하는지를 따져야 하기 때문에 공정위의 결론이 늦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결론이 1~2년이 걸릴지, 3~4년이 걸릴지 현재로선 예측하기 힘들다”며 “단기간에 결론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수료 인상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이처럼 비자카드 수수료 인상 건에 대한 공정위 결론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카드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만약 수수료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부과하면 비자카드의 수수료 인상을 카드업계가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카드사 한 관계자는 “비자카드의 수수료 인상과 관련한 문제가 현재 진행형인데 소비자에게 인상 통보를 하면 카드사가 비자카드의 방침을 수용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더 큰 문제는 나쁜 선례가 된다는 점”이라며 “다른 국제브랜드카드사들도 비자카드처럼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올렸을 때 국내 카드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수수료 인상분을 카드사가 계속 부담하는 것도 장기적으론 골칫거리다. 카드사가 매월 부담하는 비용이 크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시하기 힘들다는 게 카드업계의 설명이다.

임윤화 여신금융연구소 연구원은 “지난해 해외카드 이용금액이 132억6000만달러고 우리나라 소비자가 비자카드로 해외에서 결제한 비중이 약 55%라 이를 통해 카드사가 비자카드에 내야하는 수수료 인상분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계산대로라면 비자카드 해외이용수수료 인상분에 대한 금액은 연간 86억원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카드사 관계자는 “한달간 카드사가 부담하는 수수료가 당장의 손익에 악영향을 끼치진 않겠지만 수수료 부담 기간이 늘어나면 카드사로선 부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내년 카드사 순이익이 1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비자카드에 내는 수수료가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비자카드 수수료 인상 건을 고객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 중인 카드사도 있을 것”이라며 “현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