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지만 산업은행의 분위기는 암울하다. KDB생명, 대우건설 등 대형 자회사 매각이 연이어 수포로 돌아가면서 실적개선에 난항이 예고돼서다.


최근 산업은행은 세차례나 추진한 KDB생명의 매각을 또 다시 미루기로 결정했다. 매각대상은 KDB칸서스밸류유한회사(60.3%)와 KDB칸서스밸류사모투자전문회사(24.7%)가 보유한 KDB생명 지분 85%다. KDB생명 매각은 시기와 방식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계획이다.

조기 매각하려던 대우건설도 오는 3월 대우건설의 ‘2016년 사업보고서’ 감사의견이 나올 때까지 매각을 유보하기로 했다. 당초 산업은행은 대우건설의 매각공고를 낼 예정이었으나 3분기 보고서에 대해 ‘감사 의견거절’이 나오면서 대우건설의 주가가 하락해 매각이 좌초됐다.


산업은행 본점. /사진제공=산업은행
산업은행 본점. /사진제공=산업은행

◆업황 부진에 자회사 매각 딜레마

문제는 KDB생명과 대우건설의 매각시기다. 두 회사의 경영실적이 이른 시일 안에 개선되기 어려운 데다 업황부진이 겹쳐 재매각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KDB생명은 중국계자본이 단독 입찰했으나 산업은행이 예상한 가격보다 낮은 조건을 제안해 매각이 무산됐다. KDB생명은 저금리 장기화로 인한 보험회사의 수익성 악화와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의 도입을 앞둬 건전성 하락이 우려돼 매물가치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우건설은 인수합병(M&A)시장의 대어로 꼽히지만 주택경기가 위축된 데다 해외수주가 부진한 만큼 재매각 시 제값을 받을지 우려하는 시각이 팽배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각에선 산업은행이 두 회사의 재매각을 위해 추가 유상증자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산업은행이 두 회사에 쏟은 증자는 지금까지 4조원. 대우건설에 3조2000억원, KDB생명에 1조원의 유상증자를 진행했으나 여전히 시장에서 매물가가 낮은 상태다.


실적개선을 위해 몸집을 줄인 산업은행으로선 난처한 입장이다. 기존의 10부문 6본부 54부(실) 82지점인 조직을 9부문 6본부 53부(실) 77지점으로 축소하는 등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이행했으나 추가 증자에 나설 경우 실적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지난해 3분기 산업은행은 누적 651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대손준비금을 반영하면 당기순손실은 무려 1조221억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말 1조895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이후 2년 연속 대규모 손실이다.


더욱이 올해는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도 줄었다. 금융위원회는 산업은행 혁신안에 따른 자구계획 이행으로 경상경비를 지난해보다 3.0% 삭감했다. 업무추진비도 14.6% 감액했다. 기획재정부의 내년 업무추진비 관련 예산지침이 5% 이상 절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산업은행이 상대적으로 대폭 감액한 것이다. 수출입은행과 예금보험공사, 주택금융공사, 캠코 등은 5% 감액 편성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아직 자회사에 추가 증자를 검토하지 않았다”며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KDB생명과 대우건설의 매각을 불가피하게 미루는 것으로 재매각 시기를 조율할 것”이라고 말했다.


[머니포커S] 산업은행 계열사 매각 '빨간불'

◆‘설상가상’ 매각가격 조절 난제

자회사 매각의 핵심은 가격이다. 설상가상 산업은행은 자회사의 매각가격을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매각가를 낮추면 인수 후보자들이 투자매력을 느끼겠지만 산업은행이 쏟은 투자금에 비해 손해 볼 수 있고 매각가가 높으면 실패가 반복돼 매물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

대우건설의 현재 주가는 주당 6000원 내외다.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건설 지분은 50%로 37.5%를 취득했을 당시 1주당 1만3000원에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주가는 절반 이상 떨어진 상태다.

산업은행이 KDB생명에 투자한 총 투자금액은 9500억원 이상인데 KDB생명의 매각가는 5000억~6000억원 수준으로 형성된다. 이미 4000억원 이상을 손해보기 때문에 매각가를 더 낮추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KDB생명의 전신인 금호생명의 일반공모가는 6257억원이다. 공모가 이하로 KDB생명의 매각가치를 책정할 경우 소액주주들이 반발할 우려도 있다.

그래도 산업은행이 두 회사의 조기매각을 검토하는 이유는 뒤늦게 매각을 추진하다가 결국 자회사로 떠안은 대우조선해양의 교훈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에 빌려준 돈 1조8000억원어치의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지분 79%를 확보했다. 지금까지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에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입했으나 지난 6월 말 기준 대우조선이 완전자본잠식에 빠져 상장폐지 위기에 처하자 울며겨자 먹기로 대우조선을 떠안게 됐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에 대한 지분율이 50%를 초과함에 따라 상법상 대우조선의 모회사가 됐다. 이제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에 자금지원은 물론 재산상태까지 점검해야 하는 상황. 상법상 모회사는 자회사에 영업보고를 요구할 수 있고 보고하지 않으면 자회사 업무와 재산상태를 조사할 수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산업은행 측은 “부실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사전에 알 수 없었다”고 답했지만 이제는 모회사로 이 같은 변명도 할 수 없다.

그나마 기대했던 132곳의 비금융자회사 매각도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산업은행은 유암코(연합자산관리)와 주식양수도계약을 맺고 비금융자회사의 패키지매각을 1~2월 안에 마무리하지만 돌려받은 자금규모는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매각에 성공한 중소·벤처기업 79곳 가운데 70%가량이 매출 100억원 이하며 산업은행이 보유한 지분이 20% 미만인 곳도 38곳에 이른다.

은행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대형 자회사의 지분 매각이 기약없이 중단됐고 비금융자회사의 매각에도 돌려받는 자금이 미미하다”며 “올해 자회사 매각, 몸집 줄이기를 통해 정책금융에 집중 투자키로 한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