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빈곤 탈출] 아파도 참다 못해… '극단적 선택'
박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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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연중기획시리즈 <노후빈곤 길을 찾다>를 마련했다. 476호에서는 두번째로 ‘생존권 흔드는 노인정책’을 다룬다. 노인정책의 실태를 점검하고 노후빈곤이 일어나는 원인을 짚어봤다. 배고픈 노인, 집 없는 노인, 아픈 노인의 문제는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정부와 시민사회가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봤다. 또 노인정책이 부족한 현실에도 어려운 이들을 향해 손길을 내미는 민간활동의 현황과 필요성도 알아봤다.<편집자주>
# 2012년 서울 구로구 한 아파트에서 7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아파트 10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매달 수십만원에 이르는 병원치료비를 부담하는 아들에게 미안하단 이유였다. 남편과 사별한 뒤 자살하기 3개월 전부터 병원 치료비 문제로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100세시대가 성큼 다가왔지만 늘어난 수명만큼 행복한 삶이 연장되는 것은 아니다. 각종 질병을 안고 인생 2막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노인이 많다. 이른바 ‘유병장수시대’다. 해마다 의료비와 보험료는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치솟고 노인들은 점차 ‘의료빈민’으로 내몰린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해줄 제도적 장치조차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몸이 아픈 노인들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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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1인당 진료비 357만원… 평균 3배
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간한 ‘2015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건강보험 총 진료비는 57조원을 넘어섰다. 이 중 건강보험 재정이 부담하는 급여비가 43조원 이상으로 나타났다.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622만3000명으로 전체 건보 적용 대상자(5049만명)의 12.3%였다. 진료비는 22조2361억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38.3%를 차지했다. 이를 환산해보면 노인 1인당 진료비는 357만원으로 전체 평균(1인당 연간 진료비 113만원)보다 3배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앞으로 노인 인구가 전체의 25%를 차지하면 전체 의료비의 75%를 노인의료비로 지출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특히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진료비 급증이 노인층의 큰 부담이다. 비급여진료비는 해마다 팽창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종합병원급 이상 비급여 발생유형별 구성과 현황’ 연구결과에 따르면 비급여진료비는 2009년 6조2425억원, 2010년 8조1810억원, 2011년 9조5024억원, 2012년 9조9364억원, 2013년 11조1717억원, 2014년 11조2253억원으로 불과 5년 만에 두배 가까이 늘었다.
비급여의료비는 매년 불어나는 반면 건강보험보장률(전체 의료비 중 건강보험이 책임지는 비율)은 해마다 떨어졌다. 2009년 65.0%, 2011년 63.0%, 2014년 63.2%로 선진국 수준(75∼80%)보다 훨씬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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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비급여진료비 부담↑… 표준화 작업 ‘난항’
유병자 비중이 높은 70대 이상 노인 대부분은 실손의료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아 비급여진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정보원이 실손의료보험 현황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9월 말 기준 70세 이상 노인층의 가입률은 9.7%에 불과했다. 10명 중 9명은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
실손보험은 가입자가 질병이나 상해로 입원하거나 통원치료를 받는 경우 실제 부담한 의료비를 보험회사가 보상해주는 상품이다. 의료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원하는 항목(급여)과 지원하지 않는 항목(비급여)으로 나뉘는데 MRI(자기공명영상)와 초음파 촬영 등 주요 진료항목이 대부분 비급여라 실손보험 미가입자라면 의료비 부담이 대폭 늘어난다.
실손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매년 오르는 실손보험료는 노인에게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이다. 70세 이상의 실손보험료는 월 평균 6만2000원으로 조사됐다.
또한 비급여항목은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아 병원마다 가격이 제각각이다. 실제 MRI 촬영의 경우 어떤 병원에선 50만원선이지만 일부 병원은 100만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비급여코드 사용을 의무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 동일한 진료행위에 대해 의료기관마다 다른 코드를 기재한 탓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비급여진료 100개 항목을 표준화해 오는 4월 이후 공개할 계획이다. 단, 이번에도 도수치료는 표준화 항목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도수치료의 경우 보험료 인상 주범 중 하나로 비급여항목 표준화가 가장 시급한 항목”이라며 “이에 반하는 복지부의 결정은 다소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70세 이상 노인들은 의료취약계층에 해당되지만 현실적으로 보험료가 비싸 실손보험조차 가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신 지나치게 고가로 책정된 비급여비용 문제를 개선하고 천차만별인 비급여진료비라도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할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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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묶인 노인정액제 기준
의료계는 2001년 이후 동결된 노인정액제 기준금액을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수가(의료기관에서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돈)는 매년 인상됐지만 노인정액제 적용기준은 16년째 묶여 있기 때문이다. 노인정액제 본래 취지에 맞는 제도개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65세 이상 노인은 동네의원 외래진료 시 총 진료비가 1만5000원을 넘지 않으면 정액인 1500원(정액제)만 부담하면 된다.
하지만 의료수가가 오르면서 총 진료비가 대부분 1만5000원을 넘겨 현실적으로 노인들이 정액제 혜택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진료비가 1만5000원을 넘으면 진료비의 30%(정률제)를 부담해야 한다. 총 진료비가 2만원이 나올 경우 6000원(30%)을 부담하는 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기관 한 관계자는 “노인정액제 기준이 1만5000원이다 보니 어르신 입장에서는 부담할 금액이 자꾸 늘어나니까 병원에 항의한다”며 “병원에 자주 가는 어르신들에게 병원비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현행 노인정액제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오히려 어르신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의료계와 복지부는 개선안을 논의 중이지만 아직 아무런 해결책도 도출하지 못한 채 공회전만 이어가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노인정액제 기준을 상향조정하는 것을 검토 중이지만 아직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짧게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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