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S, 현대글로비스, 범한판토스 등 국내 대기업 계열의 물류회사는 물류업계의 ‘금수저’로 통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모회사가 물량을 몰아주면 ‘땅 짚고 헤엄치기’ 성장이 가능해서다. 이렇게 성장한 금수저 물류기업들은 업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7대 대기업 물류자회사는 전체 수출물동량 732만개의 83%를 취급한다.


중소 해운사들은 이렇게 성장한 대기업계열 물류사들이 막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갑질’을 일삼는다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 계열 물류사들이 모기업의 일감몰아주기로 3자 물류업체의 기회를 박탈할 뿐 아니라 기존의 화물까지 덤핑 수주하고 해운사에는 낮은 운임을 강요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국내 3자물류업체와 해운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해운업계는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선주들의 요구로 대기업 계열 물류사의 3자물류업 진출을 제한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일감 뺏기를 제한하자는 취지지만 대기업 내부거래를 용인하고 물류산업의 경쟁력을 낮추는 결과만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부산신항만 스케치. /사진=머니투데이 DB
현대부산신항만 스케치. /사진=머니투데이 DB

◆ '금수저 갑질' 못막는 이유

# 대기업 계열 A물류회사는 중국 수입화물을 수송하던 B해운에 TEU당 220달러이던 운임을 50달러로 낮출 것을 강요했다. B해운이 이를 거절하자 A사는 즉시 선사를 교체했다.

# C선사는 선주협회에 대기업 물류 자회사의 부당행위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는데 이런 정보를 입수한 대기업 물류자회사는 C선사가 어떤 비딩에도 참여하지 못하도록 횡포를 부렸다.


이는 한국선주협회의 ‘대기업계열 물류 자회사 부당횡포 사례’에 실린 내용이다. 국적선사들은 이같은 횡포에 반발해 ‘정당한 계약을 하지 않으면 비딩에 불참하겠다’고 나서기도 했지만 대기업 물류 자회사는 오히려 ‘모든 물량을 외국선사에 넘기겠다’고 했다는 게 선주협회의 주장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지난 2월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2자물류기업(계열사 물류를 주로 취급하는 물류회사)의 3자물류시장 진입을 막는 내용을 담은 ‘해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화물운송사업자와 국제물류주선업자는 해당 기업집단의 일감만을 수주하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현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계류 중인 이 법안은 논란의 중심에 있다. 대기업 물류 자회사의 횡포가 3자 물류활성화 및 물류산업 경쟁력을 심각히 저하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법안이 시행되면 물류산업의 미래를 이끄는 물류회사들이 오히려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어서다.

특히 모회사 및 계열사 물량이 20%에도 미치지 않는 CJ대한통운은 국내 3자물류업계의 리딩 기업임에도 규제대상에 포함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물류 자회사에 대한 무조건적인 제재는 미래 경쟁력을 갖춘 3자물류 기업을 키우자는 정부의 정책방향에 어긋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 "일감몰아주기 면죄부 법안"

더욱 큰 문제는 이 법안이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에 면죄부를 준다는 점이다. 정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의 두번째 항목에는 ‘(3자물류업 제한을) 적용 받는 화물운송사업자에 대해 상속세 및 증여세법의 45조의 3, 제45조의4, 제45조의5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조항들은 특수관계법인 등을 통해 총수일가가 얻는 이득에 증여세를 매기는 내용으로 총수일가의 부당한 이득을 막는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근간이 되는 조항이다.

법안에 이 조항이 더해진 것은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된 이후 대기업 계열 물류사들이 공격적으로 3자물류 일감 수주에 나섰다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한국선주협회는 대기업 계열 물류사들이 2자물류 비율을 낮추기 위해 3자물류 일감을 무차별적으로 수주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유섭 의원실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 물류회사의 3자물류 진입을 제한하려면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면제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이같은 조항을 포함했다”며 “현재 대기업의 규제 회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사실상 무의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행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중소기업에 공정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목적과 부합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수없이 제기됐다. 대다수의 대기업 총수들이 지분율을 조정해 규제를 회피해서다. 규제 시행 후 대기업 물류 자회사의 3자물류 진출이 더욱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2012년 40%에 불과했던 현대글로비스의 3자물류 비율은 2015년에는 56%로 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류 자회사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를 면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목적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막기 위함이 아니라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제한하는 것”이라면서 “물류회사는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쉽게 성장시킬 수 있는 회사인 만큼 증여세를 면제해주는 것은 사실상 총수일가의 꼼수 승계를 돕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비단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아니더라도 물류산업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3자물류사업 확대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며 “대기업 물류 자회사를 2자물류 회사로 묶어두는 식의 단순한 처방이 아닌 한국 물류업의 보다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