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4년. 이금기 회장이 일동제약 대표이사에 올랐다. 일동제약 평사원으로 입사한 지 24년 만이었다. 이후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2010년까지 그는 국내 제약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최근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는 일동제약의 간판 제품 비오비타, 아로나민, 큐란 등의 개발과 매출 성장을 이끈 주역이 바로 그다.


#. 1996년엔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남양산업을 인수, 일동후디스를 출범시켰다. 일동후디스는 트루맘, 산양분유 등 고품질 유아식을 잇달아 내놓으며 분유사업 10년 만에 업계 3위로 자리 잡았다. 최근엔 분유, 이유식에 이어 커피, 발효유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현재 일동후디스 경영에만 전념하고 있는 이 회장이 그리는 큰 그림은 종합식품기업으로 거듭나는 것. 하지만 그 길이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 


이금기 일동후디스 회장. /사진제공=머니투데이 DB
이금기 일동후디스 회장. /사진제공=머니투데이 DB

이금기 일동후디스 회장의 셈법이 복잡하다. 독일·프랑스산 분유가 인기를 끌면서 뉴질랜드·호주산 분유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데다 사업 다각화로 여기저기 벌려놓은 제품들이 시장에 안착하는 데 난항을 겪는 등 알맹이 없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지주사 전환을 앞둔 일동제약과 미묘한 신경전까지 벌어진 상황이다.

◆ 사실상 ‘최악 성적표’…조제분유 위기

4년 만에 흑자전환. 2015년에 이어 지난해 일동후디스가 낸 긍정적인 성적표 뒤에는 그의 말 못할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일동후디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1509억7820만원. 전년보다 23% 늘었다. 하지만 당기순이익과 영업이익은 각각 75%, 40% 감소한 3억9179만원, 15억321만원에 그쳤다.


업계에선 이를 사실상 최악의 성적으로 본다.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조제분유를 모두 수입해 판매하는 일동후디스가 FTA관세 인하로 원가절감 효과를 입었음에도 부진한 실적을 냈다는 것. 일동후디스는 지난해 무관세 혜택으로 산양분유 20억원, 트루맘 16억원 등 약 35억원의 원가를 낮춘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사업다각화를 위해 지난해 출시한 텀블러형 컵커피 ‘앤업카페’와 ‘카카오닙스’가 각각 200억원씩 400억원 매출을 올린 상황이다. 두 히트제품이 출시되기 전인 2015년 매출액 1160억원과 비교해보면 사실상 속빈 제자리 성장이다.


유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컵커피랑 카카오닙스 등이 잘 팔리면서 전년에 없던 히트상품의 덕을 봤음에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저 정도인 것은 메인인 조제분유사업이 그만큼 부진하다는 방증”이라며 “독일산 압타밀 등 해외직구로 들어오는 인기 수입분유들이 정식 유통되면서 일동후디스의 산양분유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판매관리비(판관비)를 지나치게 많이 써 영업이익을 낮췄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일동후디스 사업보고서를 보면 판매관리비와 판매·지급수수료 모두 전년 대비 증가했다. 앤업카페 2+1 행사로 유통수수료 지출을 키웠고 홈쇼핑에서 판매된 카카오닙스는 채널 특성상 적은 이익을 남기면서 수수료를 떼이는 구조라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종합식품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제품군을 다양화하며 브랜드를 늘렸지만 실제로 알려진 브랜드는 거의 없다”며 “영업 관련 비용이 증가한 것은 회사가 제품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뜻으로 계속해서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경영 악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돌파구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여러 신제품을 내놨지만 주력할 만한 메인 제품이 없어 올해는 신제품 출시를 미루고 있다. 실제 지난해 12월 출시 예정이었던 화장품과 건강커피는 최근 원산지를 변경하는 등 출시 자체가 무기한 연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 “일동은 내 회사”…독립상장의 꿈 

일동의 지분 정리도 이 회장에겐 머리 아픈 부분이다. 모회사인 일동제약의 지주회사 전환이 가시화되면서 이 회장 의지와 무관하게 회사가 강제 상장 당할 위기에 놓여서다.

우선 일동제약 오너일가는 비상장 계열사인 일동후디스를 상장시켜 지주회사 요건을 갖추길 바라고 있다. 이 경우 일동후디스 상장이 호재로 작용해 일동제약의 주가 상승도 노려볼 수 있는 데다 오너일가의 경영권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은 계열분리를 통해 일동제약그룹에서 떨어져나가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 일가는 일동홀딩스와 일동제약에 각각 6.9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전문경영인이지만 일동을 키운 사람은 본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본인이 실질적으로 운영했던 회사 밑으로 들어간다는 건 이 회장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라고 귀띔했다.

그는 “계열사 분리를 하려면 일동제약이 일동후디스 지분을 버리거나 이 회장이 계열사 분리를 위해 지분을 사던지 해야 하는데, 제약 계열사로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 이 회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관건”이라며 “실질적으로 이 회장 일가가 보유한 주식과 일동제약이 가지고 있는 일동후디스 주식을 맞교환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 회장 뜻대로 독립상장이 된다고 해도 걸림돌은 있다. 독립상장이 되면 일동제약과 별개회사가 되므로 ‘일동’이라는 상표권과 로고 이미지 등을 사용할 수 없다. 일동후디스가 과연 일동을 버리고 후디스로만 자립할 수 있느냐는 물음표가 찍힌다. 

유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일동 이미지로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일동을 떼면 인지도가 떨어질 것”이라면서 “독립상장도 어렵지만 독립 성장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동후디스 관계자는 “상장 관련 부분은 아직 내년 여름까지 기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경영진이 심사숙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영업이익이 저조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가 OEM으로 이뤄지다 보니 아무래도 거래비용이 발생하고, 판매되는 만큼 지출도 큰 구조를 띄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올해는 수익을 높이는 방법으로 경영구조를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85세. 재계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 회장의 리더십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그가 과연 머리아픈 고민들을 털어내고 종합식품기업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