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포커S] 삼성·롯데·SK의 엇갈린 운명
허주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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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를 바라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6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증인석에 나란히 앉아 이같이 말했다. 5개월 뒤 세 사람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이 부회장은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고 신 회장은 불구속 기소됐다. 두 사람이 ‘피고인’이 된 반면 최 회장은 이번 게이트의 ‘피해자’로 남았다. 이들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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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차례대로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6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추가 출연금에 엇갈린 총수 운명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지난 4월17일 종료됐다. ‘특수본 1기→박영수 특검팀→특수본 2기’를 거치며 6개월간 이어진 대장정 끝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권남용·뇌물수수·공무상비밀누설 등 18개 혐의를 받는 피고인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같은 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앞서 지난 2월 말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대기업총수 중 유이하게 뇌물공여자로 지목돼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반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기소되지 않았다. 이들은 액수는 다르지만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삼성 204억·SK 111억·롯데 45억)했고 정권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그룹 현안이 있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경영권 승계(삼성), 총수 사면(SK), 시내면세사업권(롯데) 등이 대표적이다.
결정적 차이점은 실제 자금의 전달 여부였다. 삼성은 박 전 대통령을 좌지우지했던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추가로 213억원에 달하는 자금 지원을 약속하고 실제로 78억원을 전달했다. 또 최씨가 설립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지원금 명목으로 16억원을 건넸다.
롯데도 최씨가 실소유주라는 의심을 받는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로 지원했다가 오너일가 비리 관련 검찰 압수수색 직전 전액 돌려받았다. 반면 SK는 K스포츠재단에 89억원을 추가로 지원하라는 최씨 측의 요구를 받고 30억원으로 금액을 낮추려 협상을 하다 결국 한푼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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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사인 최순실씨가 지난 1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
특수본 관계자는 “롯데는 나중에 돌려 받았지만 어쨌든 금전이 실제 지급돼 (불구속) 기소했고 SK는 일방적으로 요구만 받아 기소하지 않았다”며 “SK는 추가 자금 출연 요청을 받고 기술적으로 거부해 뇌물공여를 의율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삼성의 경우 정씨를 위한 213억원 지원 요구를 받고 78억원이 실제 전달됐다”며 “약속한 돈과 실제 수수한 돈 모두 뇌물죄로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추가 출연을 실행한 각 그룹 고위 임원의 경우에도 삼성은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전무 등이 기소됐지만 롯데는 신 회장만 기소됐다.
최씨 측에 대한 추가 출연 여부, 건네진 돈의 반환 여부가 이들의 운명을 가른 셈이다.
일각에선 삼성이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존재를 정확히 인지하고 대기업 중 유일하게 맞춤형 지원을 한 것과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손해를 감수하고 합병을 지지한 게 이 부회장 구속기소의 결정타가 됐다고 분석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의 뛰어난 정보력이 스스로 발목을 잡은 것 같다”며 “자금 출연에 대한 대가로 거론되는 사안 중 국민혈세로 조성·운영되는 국민연금에 피해를 끼친 게 비판적 여론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신 회장 불구속 기소는 예견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두 재단 지원 외 추가 출연금이 오간 것이 명확한 만큼 뇌물공여가 아니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중론이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재판 과정에서 의혹이 소명되도록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답했다.
◆정권 교체 후 수사 재개 가능성
한편 세 그룹 총수의 엇갈린 운명은 각 그룹 경영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당장 삼성과 롯데는 재판이 마무리되는 연말까지 총수부재에 따른 경영공백이 불가피하다.
일부에선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삼성전자가 1분기 역대 두번째 실적을 기록하고 주가도 견조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총수 역할 무용론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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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서울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뉴스1 DB |
하지만 이 부회장은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면서 루프페이, 비브랩스, 하만 등 굵직한 M&A(인수합병) 10여건 이상을 성공시키며 삼성페이, 인공지능 비서(빅스비), 전장부품 등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했다.
신 회장은 롯데호텔 정책본부장으로 취임한 2004년부터 최근까지 30건 이상의 M&A를 주도해 성공하는 등 롯데그룹을 4배가량 키웠다(매출 23조→92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롯데그룹의 기틀을 닦고 신 회장이 성장을 이끌었다는 게 재계 안팎의 대체적 평가다.
이번 게이트 수사에서 최 회장이 불기소 처분을 받으며 강력한 오너 리더십을 발휘할 발판을 마련한 SK도 안심하기 이르다. 5월 장미대선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 19대 대선 일정을 감안해 서둘러 수사를 종료한 검찰 수사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수사가 재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관계자는 “우병우 봐주기, 삼성·롯데 제외 재벌총수 면죄부 수사 등 특수본 2기 수사결과는 검찰이 기대의 대상이 아닌 개혁의 대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줬다”며 “미진한 수사는 차기 정권에서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권한을 부여받은 특검이나 특임검사체제로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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