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최 회장은 지난달 24일 출국해 도시바 경영진을 만나고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출국 전 “본입찰에서는 다를 것”이라고 호기있게 말하던 최 회장은 이날 서울 김포공항에 위치한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서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출국 당시는 편한 캐주얼 의상이었지만 귀국할 때는 말끔한 정장을 착용해 신중해진 그의 속내를 대변했다. 이날 자리에 동석한 그룹 관계자도 “미디어에서 관심을 가져줘 고맙다”고 짧게 언급했다.

지난달 24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출국 전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DB
지난달 24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출국 전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DB

◆왜 도시바를 인수하려 할까

최태원 회장은 그동안 도시바의 반도체사업부문 인수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도시바가 낸드플래시시장에서 점유율 세계 2위에 올라있는 기업이어서다.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낸드플래시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36% ▲도시바 17% ▲웨스턴디지털(WD) 16% ▲마이크론 12% ▲SK하이닉스 10% ▲인텔 7% 순이다.

낸드플래시는 4차 산업혁명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 분야다.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이 발달하면서 전원이 꺼져도 기록이 보존되는 낸드플래시의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시장조사매체 IHS마킷에 따르면 2015~2020년 낸드플래시의 시장성장률은 한해 평균 45%로 25%를 기록한 D램과 큰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4분기 시장규모도 낸드플래시가 113억달러(12조7645억원)로 집계되면서 D램이 기록한 125억7800만달러(약 14조1200억원)를 곧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1분기 사상최대의 매출인 6조2895억원을 달성한 SK하이닉스는 D램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낸드플래시 경쟁력은 취약하다는 평이다.

아울러 도시바 반도체사업부문 인수가 최 회장이 그동안 외쳐온 그룹 변화의 상징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최 회장이 그간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 등 안정적인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해 도시바 인수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인수전 변수 산적… 여의치 않다

최 회장과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일본 내에서 한국과 중국 기업에 도시바 반도체사업부문을 매각할 경우 기술 유출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커져서다. 도시바 경영진이 일본 정부와 여론을 무시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여기에 지난달 13일 WD 측이 도시바에 우선교섭권을 요구한 데 이어 25일에는 스티브 밀러건 WD 최고경영자(CEO)가 도시바에 위기극복용 자금을 제공하겠다고 밝히면서 인수전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또 27일에는 일본정책투자은행과 미국 투자펀드 KRR이 ‘연합’을 구성해 인수전에 뛰어드는 등 도시바 인수전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변수가 많다. 가격·비가격적인 측면 모두 SK하이닉스에 불리한 방향으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SK그룹은 외부의 부정적인 예측에 괘념치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도 상당기간 도시바 인수에 자신감을 가지고 협상을 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귀국한 최태원 회장도 “아직 일본밖에 다녀오지 않았다”며 도시바 반도체사업부문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 발언을 두고 업계는 일본 현장방문 이후 해외 재무적투자자를 직접 찾아가 도시바 반도체사업부문 인수에 대한 논의를 추가로 진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K, 도시바 인수에 역량 총동원

해외투자자와 손잡는 것과 별도로 그룹 내부에서 자체적인 M&A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움직임도 관측된다. 각 계열사의 M&A를 총괄하는 PM실을 중심으로 투자은행과 로펌의 M&A관련 인력을 적극 영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의 주요 계열사 내 임원급 인사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포착된다. 안정적인 내수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답게 SK그룹은 전통적으로 재무라인이 강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올 초부터는 신사업을 진행하는 전략라인에 점차 힘을 싣기 시작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SK그룹은 도시바 반도체사업부문 인수에 뛰어들기 전부터 관련 정보를 꾸준히 수집해왔다. 지난해에는 전략적 차원에서 도시바의 지분을 소량 인수한다는 계획도 있었지만 최종 단계에서 무산됐다. 당시 SK하이닉스가 실사와 실무를 담당하고 SK㈜가 최종 검토를 맡은 것으로 전해진다. 또 그룹 내 M&A전문가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최 회장의 일본방문에 동행하면서 SK텔레콤의 사내유보금 15조원이 이번 인수전에 투입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SK그룹 측은 어떤 내용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SK그룹 관계자는 “도시바 반도체사업부문 인수와 관련해 어떤 것도 알려줄 수 없다”며 “도시바 관계자들이 한국어 기사까지 전부 번역해 확인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그는 “괜히 도시바를 자극해서 좋을 게 없지 않은가”라고 덧붙였다.

이래저래 쉽지 않은 싸움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도시바 반도체사업부문을 품에 안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