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노무현 명령' 지킨 글쟁이
People /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서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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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부(국민의정부, 참여정부)에 대한 향수, 때마침 불어온 글쓰기 열풍이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지난 5월21일 오후 서울 수서역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그는 그의 저서인 <대통령의 글쓰기>가 2년 만에 다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강 전 비서관은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를 출간해 일약 ‘글쓰기 전도사’로 떠올랐다. 실제 이 책은 2014년에 이어 지난해 말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렸다.
“이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발생하기 두 해 전부터 이미 국민 사이에선 민주정부에 대한 갈망이 컸다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국정농단 게이트를 경험하면서 본인의 말과 글로 국정을 운영한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폭발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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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사진=서대웅 기자 |
또 다른 이유로는 글쓰기 열풍을 꼽았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린 책이 한해 40여권이 나오지만 모두 잘 팔린 것은 아닙니다. 글쓰기 열풍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지금처럼 잘 팔리지 않았을 거예요.”
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거엔 자신을 드러내면 욕을 먹었지만 이젠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국민이 많아졌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억눌러왔던 표현의 열망
글은 나를 표현한다. 즉 글쓰기 열풍은 나의 생각과 감정을 발산하고픈 욕망이 사회적으로 퍼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전의 사회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침묵이 금’인 분위기였어요. 표현해서 득될 일이 없었거든요. 특히 독재시대엔 의사표현조차 제대로 못했어요. ‘유신헌법 이상하다’고 말하면 긴급조치 위반이었고 ‘긴급조치 위반, 이거 잘못된 법 아니야?’라고 말해도 긴급조치 위반이었죠. 독재정권이 끝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미네르바 사건’만 봐도 그렇습니다.”
독재뿐 아니라 급격한 산업화시대를 거친 점도 글을 쓰기 힘든 요인이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컨베이어 벨트’로 상징되는 산업화시대에 자신을 표현하는 건 도움이 안된다. 성장을 위해선 일사불란해야 한다. 다양한 생각, 창의성은 사치다. 그저 하라면 해야 한다. 학교에서도 표현(쓰기와 말하기)은 등한시하고 입력(읽기와 듣기)만 가르쳤다. 선인들이 축적해놓은 지식을 얼마나 잘 쌓았는지가 산업화시대의 경쟁력이었기 때문이다. 문제 제기를 하거나 자기 생각에 의문을 가지면 자신만 피곤한 시대. 이러한 사회에서 평범한 시민은 당연히 글쓰기가 힘들다.
“글을 못쓴다는 건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없다는 뜻이에요. 오로지 경쟁만 하는 시대에서 이제야 나를 바라보고 주변을 살피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글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글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그는 예측했다.
“우리나라가 기적 같은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건 국민 스스로 경쟁의식을 가졌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경쟁 일변도 사회에 한계가 왔다고 봐요. 과거엔 입력하고 모방하면 됐어요. 그런데 이 방식으론 더 이상 성장이 어려워요. 당장 중국이 그 방식을 쓰는데 우리가 못 따라갈 거예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만들기 위해선 사유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말과 글로 서로의 생각을 나눠야 창조적 성장이 가능합니다.”
◆“쓰고 나눠야 함께 발전한다”
‘심미성이냐, 효용성이냐’. 글을 밥벌이로 삼는 문단에서의 오래된 논쟁 중 하나다. 강 전 비서관은 작가가 아니라면 효용성에 입각해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자가 읽고 반응해야 비로소 글쓰기가 완성된다는 지론이다. 일기도 ‘미래 독자’인 내가 읽는다. 읽히지 않는 글은 결국 버리게 된다. 글을 쓸 때 항상 독자를 염두에 둬야 하는 이유다.
“‘위인지학(爲人之學) 위기지학(爲己之學)’. 논어의 한 구절입니다. 남을 위한 학문을 할 것인가, 나를 위해 공부해야 하는가. 나를 위한다는 건 수양, 성찰, 수도를 한다는 거죠.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지만 사회적가치가 좀 더 의미 있다고 봐요. 우리 모두를 위한 학문이요. 도를 닦았으면 산에서 내려와야죠. 그리고 사람들에게 수양하는 방법을 알리든 해야죠.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글 쓰는 행위가 선민의식의 산물은 아니라고 강 전 비서관은 말한다. 과거 글쓰기는 특수신분의 전유물로 계몽의 목적이 강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오히려 땀 흘리며 살아가는 이들이 쓴 글이 더욱 가치 있을 것이라는게 그의 판단이다.
“진정성을 느낄 수 있어요. 가령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5·18연설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그가 직접 겪은 일을 토대로 쓴 글이기 때문이죠.”
그는 책 말미에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쓰세요”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유를 “명령이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소수가 누리는 권력이나 지위를 좀 더 많은 사람이 나눠 갖고 함께 누리는 것’이 역사의 진보라는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을 덧붙였다. 강 전 비서관은 이제 <대통령의 글쓰기>를 넘어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요즘엔 과거와 달리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저의 글을 써보고 싶어요. <대통령의 글쓰기>는 사실 두 대통령의 글이에요. 가칭 <강원국의 글쓰기> 같은 책을 내볼까 생각 중이에요. 시가 될지 소설, 수필이 될지 모르겠지만 등단도 하고 싶고요. 마지막은 ‘글쓰기 학교’를 설립하는 것입니다.(웃음)”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9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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