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시험대 오른 '박진회표 돌팔매'
CEO In & Out / 박진회 씨티은행장
이남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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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다윗이 골리앗에게 돌팔매를 던진다. 거인 골리앗은 투구와 갑옷으로 완전 무장했지만 다윗의 작은 돌팔매질에 힘없이 쓰러진다.
은행권에도 ‘다윗의 돌팔매’를 휘두르는 주역이 있다.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이 그 주인공이다.
박진회 행장은 전국에 있는 씨티은행 점포 133개를 32개로 줄이는 파격적인 ‘디지털 실험’을 추진 중이다. 점포를 줄이는 대신 새로운 소비자금융 전략을 내세워 덩치가 큰 시중은행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포부다.
사상 유례없는 점포 축소에 금융권에선 우려의 시각을 내비친다. 이로 인해 대규모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이란 불안감과 씨티은행을 시작으로 전은행에 점포 축소가 시행될 우려가 제기된다. 결과가 좋아 시중은행이 이를 벤치마킹한다면 파장이 일파만파 커질 수 있다.
◆점포 축소, 자산관리 센터로 전환
씨티은행의 대규모 점포 축소는 우리나라 금융 역사상 유례없는 행보다. 은행들이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최근 고객 비대면 거래 활성화로 점포를 꾸준히 축소하는 추세지만 영업점의 80% 이상을 없애는 점포 개편은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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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 /사진=임한별 기자 |
박 행장은 핀테크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은행이 문을 여는 환경에서 전통적인 점포 영업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비대면으로 대출을 진행한 결과 디지털로 들어오는 대출자의 신용거래가 지점 고객과 비슷하거나 우수했다는 평가다.
디지털금융 대출수익을 확인한 박 행장은 새로운 영업점 형태로 ‘허브 앤 디지털’을 제시했다. 이는 다른 시중은행이 6~7곳의 점포를 하나로 묶어 작은 CEO체제를 구축하는 ‘허브 앤 포크’ 방식처럼 디지털을 중심으로 고객자산(WM)관리점포를 묶어 관리하는 영업 방식이다.
비대면 거점인 고객가치센터·고객집중센터는 전화와 ‘e-챗(Chat)’과 같은 원격채널 등을 활용해 금융전문가가 상품과 서비스를 안내한다. 영업점에서 고객을 대면하던 직원 대부분이 비대면채널로 옮겨가는 셈이다.
남은 점포들은 자산관리 영업으로 특화해 100여명 인원이 투입되는 규모로 대형화된다. 지난해 문을 연 청담자산관리센터에 약 80명이 근무하는 것과 같은 비슷한 형태로 운영될 전망이다.
기존 영업점 창구에서 고객을 상대하던 리테일업무는 모두 터치스크린 형태인 ‘세일즈월’, ‘워크벤치’, ‘사이패드’ 등에서 이뤄진다. 창구 직원들은 모두 사라지고 고객들의 스마트존 이용을 돕는 ‘유니버셜 뱅커’라는 새로운 직종의 직원만 일부 배치된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차세대 소비자금융의 핵심은 디지털과 오프라인 자산관리센터의 결합”이라며 “두달 정도 파일럿팀을 운영했는데 직원들이 반응도 좋았다. 신설기구인 고객가치센터는 콜센터와는 전혀 다른, 기존 은행에선 볼 수 없던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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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개월, 고객 공감 이끌까
박 행장의 과감한 실험에 역풍도 만만치 않다. 점포를 떠나게 된 직원은 비대면 상담에 불과한 콜센터 직원으로 전락했다며 반발한다. 이에 대해 박 행장은 “점포 축소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은 절대 없다”고 거듭 밝히지만 근속 연수가 오래된 직원은 달라진 업무에 적응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제주도 등 지방지점은 없애고 수도권에 자산관리센터를 세워 고액 자산가만 챙긴다는 날카로운 지적도 제기된다. 앞으로 씨티은행 지방고객은 비대면 거래만 가능해져 창구상담이 필요한 대다수 고령층은 거래 해지가 불가피하다.
일각에선 씨티그룹이 한국에서 개인 고객 영업을 철수 하거나 대폭 줄이기 위한 전단계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른바 수익에 도움이 안되는 고객을 밀어내는 ‘디마케팅 전략’이다.
씨티은행은 6월부터 일부 조건에 충족하지 않는 고객에게 계좌유지수수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매달 마지막 영업일에 총수신 1000만원 미만인 고객에게 수수료 5000원이 부과된다. 따라서 자산이 적은 고객의 계좌 이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문제는 은행 서비스를 바라보는 국내 금융고객의 정서다. 은행을 보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인식하는 국내 금융시장에서 일반고객의 거래는 깐깐하게 조이는 반면 고액 자산가의 거래를 확대하는 박진회표 전략이 얼마나 공감을 얻을지 미지수다.
씨티은행 노조는 점포 축소를 반대하는 쟁의에 돌입했다. 직원에게 정시출퇴근, 각종보고서 제출 금지, 행내 공모에 따른 면접금지 등 3가지 지침을 내렸고 단계별로 수위를 높일 계획이다.
박 행장은 정면돌파에 나섰다. 그는 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경쟁자가 반길 일을 하고 있다”며 노조의 쟁의를 비판하고 “우리는 작지만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고 이제 과감히 실행하고자 한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박 은행장의 임기는 3년, 오는 10월까지 4개월 남았다. 박 행장의 연임을 내다보는 관측도 있지만 정권교체 후 은행권 수장들이 물갈이될 것이란 전망이 높아 앞으로의 행보가 중요하다. 박 행장이 쏘아올린 돌팔매가 외국계은행의 실패한 실험으로 남을지, 디지털실험의 모범 사례로 남을지 두고 볼 일이다.
☞박진회 행장 프로필
▲1957년 전남 출생 ▲경기고 졸업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영국 런던정경대(LSE) 경제학 석사 ▲한국개발연구원(KDI) 입사 ▲씨티은행 입행 ▲자금담당 본부장 ▲삼성증권 운용사업부 상무 ▲한미은행 기업금융본부장 ▲재무담당 부행장 ▲한국씨티은행 수석부행장 ▲한국씨티은행 은행장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9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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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머니S 금융팀 이남의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