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은행 B부행장은 지난 4월 중국법인장으로 내정됐지만 아직 중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중국 은행감독국이 B부행장의 법인장 부임을 승인하지 않아서다. 통상 중국법인장은 국내은행이 법인장을 선임한 후 중국 금융당국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중국의 금융 아그레망(사전부임승인)에 제동이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은행권의 ‘해외진출 1번지’ 중국법인이 고전하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불거진 한-중 갈등과 중국 경제성장률 하락에 중국법인 실적마저 떨어지면서 ‘탈중국화’ 조짐이 보인다. 올 하반기 중국을 등진 은행들이 어디에서 해외수익을 낼 수 있을까.

◆중국, 은행 줄이고 자산관리 선회


시중은행은 일단 대출 규모를 줄여 탈중국화를 시도하는 분위기다. 이는 중국 금융당국의 규제 영향이 크다. 중국 금융당국이 국내은행 통화량 증가를 막기 위해 대출한도를 일괄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

알짜기업에 대출하지 못하게 되면서 손익분기점도 맞추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중국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와 롯데, 신세계, 현대·기아차 등 우리나라 기업의 고전으로 중국시장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 내 국내은행 자산규모는 235억5000만달러(약 27조원)로 전년 대비 14.2% 늘었다. 반면 당기순익은 2200만7000달러(약 250억원)로 전년 2000만달러 보다 8.2% 증가에 그쳤다. 2014년 당기순익 1억500만7000달러(약 1191억원)와 비교하면 5분의1로 쪼그라들어 덩치는 늘었지만 실속을 챙기지 못했다.

은행들은 고육지책으로 자산관리업으로 중국사업의 무게 추를 옮겼다. 대출시장은 상승세를 점치기 어려운 반면 자산관리시장은 성장이 지속될 것이란 판단ㄷ에서다. 또 자산관리업은 중국법인을 통하지 않고 별도의 합작법인 설립 등 경영권을 갖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중국당국의 승인이 수월한 장점도 있다.


신한베트남은행 입출금창구. /사진제공=신한은행
신한베트남은행 입출금창구. /사진제공=신한은행

지난 3월 KEB하나은행은 북경랑자하나자산관리유한공사에 250억원을 투자해 영업에 들어갔다. 이 유한공사는 이달 말까지 총자본금을 10억위안(1630억원)으로 늘려 자산관리뿐 아니라 투자자문업도 수행할 방침이다.

은행 관계자는 “2015년 말 기준 중국의 자산관리시장 규모는 93조 위안(1경6000조원)에 달한다”며 “예대마진으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내기 어려워 자산관리와 비은행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행기 탄 은행장, 베트남·유럽 집중

아예 신흥국가로 눈을 돌리는 은행도 눈에 띈다. 일부 은행들은 ‘포스트 차이나’로 베트남을 꼽았다. 실제 은행장들은 최근 베트남행 비행기에 올라 직접 법인을 살피는 등 시장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 4일 위성호 신한은행장은 취임 후 첫 해외출장 행선지로 베트남을 선택했다. 위 행장은 베트남을 거쳐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현지법인을 둘러보고 영업환경 점검은 물론 현지 금융당국 관계자를 만나 사업 확장 가능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역시 지난달 신한베트남은행에 들려 직원들을 격려한 바 있다.

인도네시아시장도 관심이 높다. 김용환 NH농협금융회장은 다음달 동남아 출장길에 오른다. 올 초부터 인도네시아 진출에 시동을 걸어온 김 회장은 인도네시아 국영은행, 민영은행들과 접촉하고 있으며 합병이나 현지 은행 지분투자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IBK기업은행 역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사무소를 기점으로 지방은행 2곳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인수 매물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움직임은 분주하다. 현재 국내와 인도네시아 현지의 컨설팅회사, 로펌 등이 자문단으로 참여해 시장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은행 관계자는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단기순이익을 가장 많이 달성한 나라”라며 “올 하반기 은행 진출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아직 인도네시아는 합작이나 지분투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지은행을 M&A(인수합병)하는 움직임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은행장이 해외 투자자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투자설명회(IR)도 잇따라 열리고 있다. 투자자에게 직접 경영전략을 설명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쌓기 위해서다.

해외사업장을 찾는 현장영업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외국인 주주에게 주주가치 제고를 강조함으로써 주가상승을 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머니S토리] 중국 떠나 동남아 찾는 행장님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지난 4월 영국과 프랑스를 돌며 직접 기업설명회를 개최했고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은 지난달 영국 런던에서 해외 기관투자자를 상대로 기업설명회를 주재했다.

이미 주가상승 효과를 본 우리은행은 이번 IR에서 기관투자자들을 포섭해 지분매입을 독려할 방침이다. 우리은행은 만약 이 전략이 성공한다면 주가상승은 물론 우리금융지주회사 전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외수익이 미미한 기업은행은 김도진 행장이 해외 이익비중을 20% 이상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업은행이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지난 3월과 4월 홍콩·런던을 방문한 데 이어 하반기에도 유럽을 방문해 해외 투자자들을 만날 계획이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아직 IR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9월경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홍콩을 찾아 해외 투자자들을 만나는 행사를 준비 중이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장들의 해외 출장지를 보면 하반기 경영전략을 알 수 있다”며 “은행들이 글로벌사업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중국에서 부진했던 수익 개선을 위한 글로벌행보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