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노인들-르포] 어울려 살아가는 ‘인생 3막’
이남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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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수명이 길어졌지만 장수가 반갑지만은 않은 시대다.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리면서도 배우자를 잃거나 자식에게 외면당해 쓸쓸한 여생을 보내는 노인이 많다. 노인의 정서적 빈곤은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다. 노인 부양의식 쇠퇴나 학대, 고독사, 자살 등은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머니S>는 연중기획 <노후빈곤, 길을 찾다> 6번째 시리즈를 통해 노인의 정서적 빈곤을 야기하는 문제들을 짚고 정부와 지자체가 살펴야 할 과제를 고민해봤다.<편집자주>
어르신들의 주거형태가 변하고 있다. 신체적·심리적·사회적 기능이 쇠퇴하는 노인들이 함께 생활하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형 주거모델이 주목받는다.
한때 ‘현대판 고려장’으로 불렸던 노인시설이 최근 들어 이미지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 다채로운 공동체 생활로 외로움을 떨치고 대학 의료기관과 제휴한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여유로운 마음과 건강한 신체가 보장되는 셈이다. 어르신들이 행복한 노년을 꾸려나가는 공간, 실버타운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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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요가 수업. /사진제공=노블레스타워 |
◆다양한 여가활동, 동거동락 극대화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위치한 A실버타운은 도심형 실버타운으로 인기를 끈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전원은 아니지만 백화점, 대형마트, 대학병원 등이 주변에 있고 4~6호선 지하철과 버스노선이 다양해 가족들도 쉽게 찾아온다.
A실버타운은 노인들이 주말에 교회나 절에 찾아갈 만큼 이동이 자유롭고 가족들도 자주 방문하는 '도심형 할머니 댁'으로 자리 잡았다. 2007년 설립해 10년 동안 3개동이 생길 만큼 규모도 커졌다.
지난 12일 오전 9시, A실버타운의 강당에 모인 노인들은 뻣뻣한 몸을 움직이며 아침체조로 하루를 시작했다. 매트를 깔고 강사의 구령에 맞춰 스트레칭하는 와중에 노인들은 틈틈이 친한 지인들에게 지난밤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나눴다.
노인들은 30분 정도 체조를 한 후 삼삼오오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한다. 오늘 아침식사 메뉴는 노인들의 소화를 돕는 마죽과 콩비지찌개다.
저염식 무공해 식단으로 구성된 식사는 흑임자죽, 녹두죽 등 노인들의 소화를 돕기 위한 죽이 삼시세끼 포함된다. 잡곡밥과 시리얼, 각종 샐러드와 식빵, 제철 과일도 구비돼 입맛에 따라 골고루 식사할 수 있다.
오전 11시 반에는 할머니들이 피트니스센터에서 실버요가 수업을 듣는다. 아픈 몸을 푸는 자세에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지만 ‘어제보다 훨씬 자세가 좋아졌다’는 강사의 칭찬에 할머니들은 더욱 의욕적으로 요가자세를 취한다.
요즘에는 날이 더워져 일찍부터 텃밭을 가꾸는 노인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무료로 분양받은 텃밭에서 노인들은 상추와 방울토마토를 길러 다른 입주자들과 나눠 먹는다.
밭을 가꾸던 김진복씨(73·가명)는 “전라도에서 태어나 고향에 내려가려고 했지만 자녀와 손녀들이 인근에 살길 원했다”며 “지난해 가을에는 벌레도 덜 먹고 싱싱하게 자란 배추를 수확해 아이들과 김장했다. 올 여름 방울토마토 농사가 잘돼 손녀에게 맛있는 토마토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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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교실. /사진제공=노블레스타워 |
오후 3시 로비에선 가곡교실이 열렸다. 악보를 보며 흥얼거리는 노인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가곡교실은 금세 다 자리가 찰 만큼 인기가 높다. 트로트와 가곡을 신명나게 부르는 노인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오후 활동은 다양하고 자유롭다. 가족들이 찾아와 함께 다채로운 수업을 듣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먹기도 하고 하루 숙박을 신청하면 게스트룸에서 함께 숙박도 할 수 있다.
A실버타운은 입주보증금은 2억8000만원(18평기준)이며 식사비와 시설이용료 등이 포함된 월 관리비는 10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도시에서 생활하던 노인이 연금소득으로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가곡수업에 참여한 박영란씨(57·가명)는 “올 초 노부모를 실버타운에 모셨는데 비슷한 연배의 식구들이 생겨 몸과 마음이 편하다는 말씀을 자주 듣는다”며 “안정적인 곳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시는 것 같아 우리도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오후에는 럭셔리 실버리조트로 불리는 주상복합형 B실버타운를 찾았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자리 잡은 이곳은 2011년 준공해 4년 만에 입주율 100%를 달성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55.36평형 최고급 단지에 입주하려면 보증금 9억원가량에 매달 200만원 이상 관리비를 지출해야 한다. 입주자 평균자산이 50억원 이상에 달할 정도로 경제계, 의료계, 법조계, 고위직 공무원 출신이 많다.
특히 B실버타운은 젊은 시절 바빠서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을 즐기는 입주자가 많은데 스포츠댄스동호회가 인기가 높다. 오랜 시간 스포츠댄스를 연습하고 입주자들과 손을 잡고 시간을 보내면 친밀감도 높아져 줄어드는 사회적 인맥에 대한 허무함을 달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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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노인복지센터 붓글씨 교실. /사진= 임한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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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노인복지센터 부채춤 수업. 사진= 임한별 기자 |
◆노인유치원 ‘주·야간보호센터’
실버타운에 입주하지 않은 노인들도 정서를 보듬어주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지자체 노인복지센터나 보건소에 방문요양서비스를 신청하거나 노인 주·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면 자원봉사자들이 집을 찾아오는 재가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주·야간보호센터에선 자원봉사자들이 아침에 집을 방문해 노인을 차로 모셔오고 식사를 대접한다. 하루종일 노인들의 이야기 동무가 되고 한달에 한두번은 야외 활동도 진행한다.
당뇨나 고혈압 등 노인성 질환을 겪고 있어도 치매, 뇌졸중, 파킨슨 등 특정 노인성질환이 아닌 경우 노인들은 비싼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사람들과 만나 다채로운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실버타운 간 시어머니, 양로원 간 친정엄마>를 집필한 이한세 스파이어 리서치 대표는 “고가의 입주 보증금에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곳을 찾기보다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시설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노인주거시설 뭐가 다를까
노인주거시설은 크게 요양원, 요양병원, 실버타운으로 나뉜다. 각 시설은 입소 자격기준과 정부의 비용보조, 개인이 지불해야 할 비용 등이 다르므로 꼼꼼하게 비교한 후 상황에 맞게 입주해야 한다. 자칫 시설을 잘못 선택하면 필요 이상의 비용이 발생하거나 입소가 거절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요양원 : 스스로 식사나 거동하기 어려운 장기요양등급 노인이 이용하는 시설로 정부는 환자의 의료급여를 80% 지원하며 개인은 입주보증금 없이 월 50만~100만원을 지불하면 된다.
▶요양병원 : 치매나 각종 질환을 앓는 노인이 수시로 의사의 진료와 처치,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다. 요양보호사가 상주하지 않아 간병인을 따로 고용해야 한다. 정부는 병원비의 80%를 지원하고 치료에 따라 개인이 지출하는 비용이 다르다.
▶실버타운 : 60세 이상 건강한 노인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정부의 보조금 없이 개인이 입주보증금을 내고 월 100만원 이상의 생활비를 지불한다. 노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갖춰 다수의 노인이 서로 어울려 외롭지 않게 생활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9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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