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거주하는 직장인 42만명이 매일 1시간30분을 출퇴근하는데 보낸다. 1년으로 계산하면 17일에 달하는 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내는 셈이다. 정부가 경기도민들의 편리한 출퇴근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 제도 등을 시행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머니S>가 수도권 직장인의 출퇴근 실태를 살펴보고 국토부의 새 철도정책에 대한 전문가들의 기대와 우려를 들어봤다.<편집자주>


#. 경기 안산시에 사는 A씨(33)는 매일 반복되는 지옥 같은 출퇴근길이 고역이다. 오전 6시30분에 집을 나서야 하는 그는 아침식사를 언제 했는지도 아련하다. 무엇보다 빡빡하게 사람이 들어찬 버스와 지하철을 견디기 힘들다. A씨는 “일찍 출근하는 만큼 쾌적한 출근길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도권교통본부에 따르면 A씨처럼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외곽지역에서 서울로 출퇴근·통학하는 인구는 하루 평균 246만명에 달한다. 이 중 출퇴근에 1시간 이상을 허비하는 사람은 3명 가운데 1명 꼴이며 A씨처럼 4시간 이상 소요하는 인구도 2%에 달한다.

외곽지역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대부분이 출퇴근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한다. 경기 부천시에서 서울 서초구로 출퇴근하는 B씨는 “콩나물시루 같은 대중교통이 싫어서 자가용으로 출퇴근하지만 도로 위 사정도 마찬가지”라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앉아서 출퇴근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경기 파주시에서 서울 영등포구로 출퇴근하는 C씨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C씨는 “하루에 3시간30분을 길 위에서 소비하는 셈”이라며 “특히 여름철에는 무더위와 장마의 영향으로 출퇴근길이 더 길고 짜증나게 느껴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수도권에서 서울(강남 기준)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행복 상실'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월 94만원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행복의 가치를 화폐 단위로 표시하는 데 논란이 있겠으나 장시간 출퇴근이 삶의 질을 낮추는 요인인 건 부정하기 어렵다.


/사진=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사진=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M버스·2층버스 “시도 좋지만 한계 있다”

출퇴근전쟁으로 인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정부도 해결책 마련에 나섰다. 국토부 한 관계자는 “출퇴근시간이 길어지면 국가경제적으로 손실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의 질도 낮아진다”며 “출퇴근전쟁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수년 전부터 ‘출퇴근 손실’에 대해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강구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동차 10부제, 지하철 9호선·신분당선 개통과 광역급행버스(M버스), 2층버스 및 조조할인제도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방안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특히 M버스, 2층버스와 조조할인 제도에 대해 전문가 대다수는 일시적인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이승일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M버스와 2층버스 등의 정책은 출퇴근전쟁을 단기적이고 일시적으로 해결할 뿐”이라며 “서울과 경기·인천 등 주변지역을 이어주는 대중교통의 서비스 용량을 개선하면 출퇴근이 편해질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이 서울 주변지역으로 이주하게 되면 다시 출퇴근 환경이 열악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운수업계는 현재 시행 중인 제도에 문제가 있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업계 한 관계자는 “M버스 및 2층버스, 조조할인 같은 제도는 민간운수회사가 정부의 요청에 등 떠밀리다시피 하는 서비스”라며 “경제성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운수회사는 적극적으로 해당 노선을 증차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출퇴근시간대의 수용량 부족을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M버스의 구조에 의문을 제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통학자는 “M버스는 기점 및 종점 5㎞ 이내에만 정차할 수 있어 사실상 특정지역에 거주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라며 “서비스의 혜택에서 소외된 시민이 더 많다. 다시 말해 일부지역의 문제는 완화시킬 수 있어도 광역권 출퇴근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엔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사진=뉴스1 이재명 기자
/사진=뉴스1 이재명 기자

◆"광역교통청 설치, 종합대책 세워라"

우리보다 출퇴근 상황이 더 열악한 일본은 재택근무 비중을 늘리는 실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최근 일본정부는 기업들에게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정책을 권장했다. 지난 7월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20년까지 재택근무자 비율을 현재 4%에서 1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의 혼잡을 줄이고 나아가 세계 최고 수준의 출퇴근전쟁을 해소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철도 중심의 도시계획을 통해 출퇴근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탄력근무제를 도입해 출퇴근전쟁에서 다소 숨통이 트이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대책이 여러번 논의됐지만 아직 적극적으로 도입되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은 출퇴근전쟁이 긴 시간에 걸쳐 다양한 사회환경을 통해 형성된 문제인 만큼 우리가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그에 맞는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익기 한양대학교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모든 나라에서 출퇴근전쟁이 벌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짧은 시간대에 엄청난 수요가 몰리기 때문”이라며 “수요가 많은 곳은 도시철도 및 광역철도의 노선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은 마을버스 등을 통해 광역망에 환승 연결하는 서비스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광역교통청 설치로 지자체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교통대책을 수립하는 것도 추진할 만한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금기정 명지대학교 교통공학과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금 교수는 “출퇴근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교통수단의 수급불균형”이라며 “해결방안은 단기적으로 출근시간 조절, 유인가능한 시간대별 요금 차등화, 수요대응형 중간회차 기능의 고도화 등이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대도시에 집중되는 도시구조를 해결하려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499호(2017년 8월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