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포커S] '유통공룡'에 칼 뽑은 공정위
김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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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가 판촉비를 떠넘기거나 판촉사원을 보내라고 요구하는데 ‘을’의 입장에선 거절하기 어렵죠. 비용 부담도 늘고 인력 활용이 제한되니 애로가 큽니다.”
“유통업체에서 팔리지 않은 상품을 회수해가라고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응하고 있어요. 결국 유통업체의 재고비용까지 떠안게 돼서 사업에 상당한 부담을 느껴요.”
- 최근 공정위 간담회에서 드러난 납품업체 애로사항 중
프랜차이즈업계를 떨게 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날이 유통업계로 향했다. 공정위는 내년부터 TV홈쇼핑과 기업형 슈퍼마켓을 집중 점검할 방침이다. 유통업계의 고질적인 갑질 관행을 손보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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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뉴스1 장수영 기자 |
◆ “갑질 근절” 집중 타깃된 유통가
공정위는 지난 13일 “대형 유통업체들이 법을 위반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불이익보다 커 소위 ‘갑질’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유통분야 불공정거래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에는 가맹분야에 이어 두번째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판매수수료 공개 확대 등 15개 실천과제가 포함됐다.
우선 대형 유통업체의 ▲상품대금 부당감액 ▲부당반품 ▲납품업체 직원 부당사용 ▲보복행위 등을 4대 악의적 불공정거래 행위로 규정하고 이 같은 행위로 발생한 피해에는 3배의 배상책임을 부과하기로 했다. ‘최대 3배’ 규정을 일괄 ‘3배’로 못박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우리 법원은 손해액 인정에 매우 보수적이고 3배까지 부과하는 경우도 없어 법 취지대로 집행되지 않는다”면서 “반사회적 행위에 대해 최대 3배가 아닌 3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법 집행체계 태스크포스에서 논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유통업체의 불공정 행위를 적발하면 부과하는 과징금은 2배로 높아진다. 그동안 임대사업자로 구분돼 대형유통업 규제에서 제외됐던 복합쇼핑몰도 백화점, 마트 등과 비슷한 수준의 규제를 받는다.
납품업체 종업원의 인건비 부담 문제도 대책에 포함됐다. 시식행사 같은 판촉행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가 분담하도록 법제화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납품업체가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하는 사례가 많았다.
공정위는 판촉행사로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가 이익을 얻는 비율만큼 인건비를 분담하도록 하는 내용을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에 담았다. 만약 이익비율 산정이 곤란한 경우 양측이 비용을 반반씩 분담하도록 했다.
과징금 기준금액도 높아진다.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했을 때 부과되는 과징금 기준율을 기존 30~70% 수준에서 60~140%로 2배 인상할 예정이다. 인상기준안은 오는 10월부터 적용된다. 판매수수료 공개대상을 백화점과 TV홈쇼핑에서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몰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수수료율 공개로 인한 영업기밀 유출 우려가 나오지만 공정위는 그간 수수료 지급거래가 공개되지 않아 정보접근이 어려웠던 점, 유통업체간 수수료율 비교가 쉽지 않았던 점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공정위는 또 매년 민원빈발 분야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거래실태를 점검할 계획이다. 올해 가전과 미용전문점에 이어 내년에는 TV홈쇼핑과 대형슈퍼마켓(SSM)이 대상이다. SSM이 중점 개선분야로 선정된 것은 공정위 역사상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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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근 없는 채찍 vs 불공정관행 개선
유통개혁안이 발표되자 관련업체들은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투자 위축과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 우려도 제기한다.
유통업체 한 관계자는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온라인·모바일쇼핑의 성장으로 매출부진이 이어지는 등 이미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혹을 하나 더 달게 됐다”면서 “유통업체 특성상 지금도 관련 소송이 많은데 징벌적 배상을 할 경우 지나치게 많은 소송이 야기돼 경영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복합쇼핑몰도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될 경우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문재인정부와 상반된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통 대기업의 영업제한이 이뤄지면 쇼핑몰에 입점한 소상공인이 2차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상황이다.
중소업체 한 관계자는 “유통 대기업의 역할과 소비자 편익 제고 등 순기능적 측면은 간과하고 정부가 당근 없는 채찍질만 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저성장 기조에 놓인 유통업이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각종 규제까지 겹치면서 신규 사업은 물론 기존 사업까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반면 중소 납품업체들은 ‘구두발주’ ‘부당반품’ 등의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종합대책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납품업체 한 관계자는 “이번 종합대책이 실제 현장에 적용되면 불공정거래로 고통받던 납품업체들의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특히 대규모유통업거래 공시제도가 도입되면 거래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퇴양난에 빠진 대형유통업체와 반색을 표하는 납품업체. 공정위발 유통개혁이 업계의 부당 관행을 바로잡는 시발점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규제를 만들기 전에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업계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공정위가 다음 행보를 어떻게 이어갈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2호(2017년 8월23~2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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