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로 평창올림픽 통역 로봇. /사진제공=박영선 의원실
퓨로 평창올림픽 통역 로봇. /사진제공=박영선 의원실

중국이 세계 로봇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지난 6일 폐막한 세계 3대 IT전시회 ‘IFA 2017’에서도 중국업체의 강세가 눈부셨다. 전체 참가업체의 약 40%를 차지했고 로봇관련부문 중 서비스로봇이 무려 90%에 달해 사실상 중국업체가 해당부문을 독점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기술력이 한참 앞선 것으로 평가받은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은 물론 개최국인 독일조차 중국의 위세에 기가 눌렸다.

중국이 경이적인 약진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다.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언급한 ‘제조 2025 계획’이 2015년부터 실행됐는데 이제 서서히 각 분야에서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


◆세계가 벌벌… 중국의 로봇굴기

지난해 중국정부는 제조 2025 계획의 10대 중점분야 중 하나인 로봇산업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른바 ‘로봇굴기’다. 고령화는 중국에서도 큰 고민거리여서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로봇산업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그 결과 산업용과 서비스용 모두 빠르게 시장이 성장했다. 연관산업을 모조리 집어삼킬 태세인 중국 로봇업계는 세계적으로도 관심거리다. 국제로봇협회(IFR)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내에 설치된 로봇이 9만대였지만 2019년에는 16만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의 강력한 지원정책은 이른바 ‘로봇인재’를 키우려는 데서 시작된다. 단순히 해당 산업에 여러 지원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문가를 양성해 장기적으로 흐름을 이어가려는 계획이다. 먼 미래에 일손이 부족해질 것을 대비한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국 선전지역의 대표기업 DJI가 주최하고 정부가 후원하는 ‘로보마스터대회’가 인재육성의 대표적 사례다. 세계1위 드론업체가 로봇개발에 필요한 소스를 제공하고 학생들은 여러 첨단기술을 집약해 경쟁을 벌인다. 이 대회는 2015년을 시작으로 지난 3년간 2만여명의 학생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파격적인 지원을 배경으로 세계1위를 넘어 관련산업을 집어삼키려는 야심에 업계에선 중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중국의 토종 로봇업체들은 힘을 합쳐 해외 유력기업의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선진기술을 짧은 시간 안에 확보할 수 있는 데다 공동으로 투자함으로써 위험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지양하려는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도 작용했다.

이 같은 중국의 로봇굴기는 중국 내수시장은 물론 세계경제에도 위협이 될 거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들린다. 장기적으로 로봇이 늘어나면 중국의 고용이 줄어 결국 소비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또 비슷한 문제를 세계적으로 유발시킬 수도 있다. 

퓨로를 시연해보는 민주당의원들. /사진제공=박영선 의원실
퓨로를 시연해보는 민주당의원들. /사진제공=박영선 의원실

◆한국, 활용 잘하지만 수준은 걸음마

이처럼 중국은 로봇열풍이 뜨겁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뜨뜻미지근하다. 제조공장 등 산업현장에서의 로봇활용도는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관련 기술수준은 선진국보다 3~4년쯤 뒤처졌고 일상에서도 로봇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에 관련업계와 정부는 로봇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손보면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미 세계 각국은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에 대한 중장기적 연구와 함께 구체적인 대비책을 모색 중이다. 박영선 한국적 제3의 길 국회의원연구단체 대표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세계 로봇시장은 최근 6년간 연평균 13% 성장했고 우리나라는 7.6% 증가세를 기록했다. 이에 박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37명이 로봇에 전자적 인격체로서의 지위를 부여하자는 내용의 ‘로봇기본법’을 지난 7월 공동발의했다. 국내시장이 세계시장의 평균치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성장하는 만큼 정부차원의 준비를 촉구한 것이다.

지난 4일 박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인간과 로봇' 전시회에 참석해 “최근 로봇과 관련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로봇이 정보를 스스로 학습하고 인간의 고차원적인 정보처리 능력을 구현하는 수준으로 진화했다”면서 “로봇과 로봇관련자가 준수할 로봇윤리규범을 명문화하고 로봇에 특정 권리와 의무를 가진 전자적 인격체로서의 지위를 부여해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사회를 대비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앞으로 어떤 분야를 중점적으로 육성할까. 이날 백운규 산업통상부 장관은 “로봇산업은 다양한 기술의 융·복합이 핵심”이라며 “의료·물류·스마트팜·소방방재 등 주요 4개분야를 중점으로 당장 700억원 이상을 집중 투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특수시장에서 강점을 보여야만 점점 뜨거워지는 로봇산업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 것.

앞서 산업부는 지난 6월9일 ‘대한민국 로봇산업 기술로드맵’ 공청회를 열고 8개 핵심분야를 발표했다. 중장기 로봇 기술개발 추진방향과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5대 제품기술과 3대 기반기술의 육성이라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한 것.

이 같은 노력은 코앞으로 다가온 평창올림픽에서 빛을 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역안내서비스를 제공할 ‘퓨로’와 올림픽 미디어촌 기자들에게 음료전달서비스를 수행할 ‘고카트 미니’가 대표적이다. 아울러 환자의 보행과 재활을 돕는 의료재활서비스 로봇, 가정용 반려로봇, 교육용 로봇도 중점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관련업계는 기술 고도화를 촉구했다. 단순히 양으로 승부할 게 아니라 특색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로봇제조사의 한 관계자는 “산업현장은 물론 생활 곳곳에서 로봇과 함께하는 시대가 곧 열린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 로봇만의 특징이 없다면 중국산 로봇이 안방을 점령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전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5호(2017년 9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