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가 공공제약사 설립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한 논의는 수년 전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됐지만 실효성이 낮고 제약산업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제약업계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전례를 감안하면 또 다시 무산될 가능성이 높지만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국회, 공공제약사 설립 물밑작업 박차

지난 6월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은 ‘국가필수의약품의 공급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국무총리 소속 ‘국가필수의약품관리위원회’를 구성해 국가필수의약품 공급계획을 수립하고, ‘공공제약사’를 설립해 국가필수의약품을 생산·공급하게 해야 한다는 게 법안의 골자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2003년), 신종인플루엔자(2009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2015년) 등 신종감염병이 지속적으로 발병·유행하는 상황에서 의약품 생산과 공급이 전적으로 민간에 맡겨져 있어 환자에게 필수적인 의약품이 시장상황에 따라 공급이 중단되거나 거부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주무부처도 공공제약사 설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초 권혜영 목원대 의생명보건학부 교수를 담당자로 ‘국가필수의약품 공급 및 관리를 위한 공공제약 컨트롤타워 도입 세부실행 방안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용역은 11월 말까지 진행되며 최종 보고서는 12월 중에 나올 예정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제약업계 일각에선 공공제약사 설립에 찬성하는 입장인 권 교수가 연구용역을 맡으며 권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내다본다. 

권 교수는 지난 4월 권 의원이 개최한 ‘공중보건위기 대응 공공제약 컨트롤타워 도입방안’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서 “낮은 채산성으로 공급이 불안정하지만 꼭 필요한 의약품의 생산·공급을 위해 여러 정부기관이 참여하는 ‘공공제약의약품관리위원회(가칭)’를 설립해야 한다”며 “공공제약사 설립의 걸림돌인 인프라 구축은 희귀의약품센터, 약사회, 의사협회, 소비자단체 등 민간의 협력과 국제협력이 이뤄지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성 vs 실효성 팽팽


실제 지난 2010년부터 올 7월까지 생산·공급 중단된 의약품은 583건으로 이 중 42.5%(248건)가 의약품 사용량 감소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공급이 중단됐다. 이런 가운데 응급의료상 필요한 해독제 등을 비롯해 총 126개 품목이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돼 있지만 대부분이 수요가 낮아 수익성이 떨어지고 민간 제약사들은 공급을 기피하고 있다.

하지만 제약업계에선 다른 약가 조정 등 정책적 유인책으로 민간 제약사의 필수의약품 생산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정부와 국회 움직임을 보면 과거 어느 때보다 공공제약사 설립 의지가 강한데 강행되면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제약산업 전반이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실효성을 감안해도 국가예산을 투입해 새로운 공공제약사를 만드는 것보다 이미 시장에 진출한 제약사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희귀의약품과 필수의약품 중심 공공제약사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설립 후 다른 분야로 영역을 넓혀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민간 제약사가 필수의약품을 안정적으로 생산·공급할 수 있도록 약가 지원을 늘리거나 별도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