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아이도 가을을 탄다
의사들이 쓰는 건강리포트
서경석 아이조아한의원 평택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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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처서와 백로가 지났다. 바람은 선선하고 30도를 웃도는 더위도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천고마비의 계절,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인데 아이는 밥도 잘 안 먹고 피곤해하며 짜증만 낸다. 축 처진 모습도 보인다. 아이도 가을을 타는 것일까.
‘가을을 탄다’는 말은 가을에 왠지 모를 우울감을 느끼는 현상을 지칭한다. 의학적으로는 ‘계절성 우울증’이라 불린다. 계절성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은 일조량의 변화다. 일반적으로 해가 짧아지면 항우울 효과가 있는 두뇌 갑상선 호르몬의 대사가 줄고 정신을 차분하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늘어나면서 우울감을 느끼기 쉬워진다.
흔히 남자가 가을을 많이 타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남자만 그런 건 아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여성이 계절성 우울증에 시달릴 확률이 남성보다 3배 높다고 한다. 게다가 어린아이도 가을을 탄다.
◆ 가을 타는 아이, 이유는?
가을 타는 아이의 증상은 어른과 조금 다르다. 어른의 경우 우울감과 무기력, 피로 등의 증세를 보이지만 아이들은 자꾸 짜증을 내고 보챈다. 엄마가 하는 말 한마디에도 신경질을 내고 뭔가를 해줘도 귀찮아 한다. 말수도 줄고 기운이 없는지 소파에 누워 움직이려 하질 않는다. 아침에는 유독 늦잠을 자며 일어나기 힘들어한다. 기운이 없는데 밥도 잘 안 먹어 식탁에서 깨작거리기 일쑤다. 심해지면 건강에 이상 징후가 나타날 수 있다.
면역력이 떨어진 탓에 가을 환절기를 감기와 함께 시작하거나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에 비염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영유아들은 자면서 땀을 흘리거나 자다 깨기도 한다. 모두 가을 환절기를 겪는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아이들이 가을을 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른과 마찬가지로 일조량의 차이, 계절 변화 등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가을이 되면 낮의 길이가 점차 짧아지면서 일조량이 줄어든다. 일조량이 줄면 호르몬 변화로 우울감이 찾아온다. 또 일교차, 차고 건조한 바람 등도 아이 호흡기를 자극한다. 기분이 처지거나 짜증이 심해지고 감기나 비염 등에 시달리는 이유다.
가을맞이가 유독 고생스러운 건 여름을 힘들게 보낸 탓도 있다. 아이들은 양기가 넘치고 열도 쌓이기 쉬워 조금만 더워도 땀을 잘 흘린다. 아이들은 땀을 흘리면서도 쉬지 않고 뛰어노는 존재다. 그만큼 양기가 충만하다. 하지만 땀을 많이 흘리면 그만큼 체내 수분 손실과 진액 소모가 많아져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다.
폭염에 시달리며 땀을 많이 흘리다 보니 자꾸 찬 음식을 찾게 된다. 차가운 음료, 아이스크림, 찬 과일 등을 자주 먹으면 속은 냉해지고 배탈, 설사 등 배앓이에 시달리게 된다. 찬 것들은 맛이 달고 칼로리도 높아 입맛을 사라지게 한다. 영양 섭취도 부족한데 비위까지 냉해져 소화기 전반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다.
너무 덥다고 과도한 냉방 속에서 여름을 보낸 것도 문제다. 여름 내 과도한 냉방은 실내외 온도차를 심하게 해 체온조절능력이 부족한 아이들로 하여금 여름 감기, 냉방병, 냉방 비염에 시달리게 만든다. 특히 냉방병은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두통, 소화불량, 무기력감 등을 불러오기도 한다.
◆ 겨울까지 건강하게 지내려면
아이가 가을 타는 것을 그저 한 계절을 지나는 통과의례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가을을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감기나 비염 등으로 골골거리며 지나게 했다간 다가올 겨울에 더 잦은 병치레로 곤욕을 치를 수 있다. 가을을 좀 더 건강하고 활기차게 보내는 방법을 알아두자.
먼저 계절변화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아침저녁은 선선하다 해도 아직 한낮은 여름마냥 덥다. 하지만 계절변화에 순응하기 위해서는 여름 생활을 정리해야 한다. 특히 일교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는 것은 일종의 경계경보다. 한낮에는 에어컨 바람을 줄이고 외출할 때 겉옷을 하나 더 챙기자. 속옷과 양말도 잊지 말자.
몸의 속과 겉을 모두 따뜻하게 보호해야 한다. 여름 내 차가운 것을 즐겨 먹느라 차가워진 속을 따뜻하게 만들어야 소화기 기능이 회복되고 영양분의 소화·흡수도 수월해진다. 당근, 우엉, 연근 등 가을 뿌리채소는 체온을 상승시키면서 면역력과 원기 회복에 도움을 준다. 배 마사지를 해주거나 잘 때 배를 따뜻하게 덮어주고 한의원에서 복부 뜸이나 보위고를 붙이는 것도 좋다.
여름보다 1시간 정도 더 재워도 좋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에는 수면과 관계되는 호르몬에 변화가 생겨 아이도 쉽게 피로를 느낀다. 여름보다 수면 시간을 충분히 주고 숙면할 수 있도록 하라. 잠들기 1시간 전에는 목욕을 마치고 실내조명과 소음을 줄이며 TV 시청은 삼가도록 하는게 좋다.
햇볕을 받으며 신체 활동도 즐겨보자. 가을은 야외활동을 하기 좋은 계절이다. 햇볕을 통해 생성되는 비타민D는 뼈 건강은 물론 면역력을 높여준다. 또 적당한 신체활동은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무기력과 피로감을 줄여준다. 아이와 가벼운 산책, 자전거 타기, 배드민턴, 공놀이, 줄넘기 등을 즐겨보자.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자꾸 피곤해하고 짜증을 부린다고 해서 부모도 같이 힘들어하며 짜증을 내선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아이가 편안하고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휴식할 수 있도록, 계절변화에 적응하며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사랑받는다는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생활하도록 이끌어주자.
따뜻한 한방차로 수분과 영양을 동시에 섭취하고 차가운 물보다 미온수를 수시로 마시면서 환절기 호흡기 건강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가을에 도라지, 대추 등을 달여 따뜻하게 마시면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된다. 특히 폐 기능을 원활하게 하고 속을 편하게 가라앉히는 모과차도 효과적이다. 모과는 비타민C가 풍부해 면역력 증강에 좋고 감기도 예방해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6호(2017년 9월20~2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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