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포커S] 은행권 '정규직 전환' 딜레마
이남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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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권현구 기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부는 2020년까지 공공부문에서 상시·지속적으로 근무하는 비정규직 20만5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은행권도 정규직 전환에 팔을 걷고 나섰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이 무기계약직(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준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다.
특히 기업은행은 무기계약직 3100여명과 기간·파견근로자 2900여명 등 총 6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그동안 은행은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는 있었지만 기간·파견근로자까지 정규직 전환에 포함한 경우는 처음이다.
시중은행은 기업은행의 파격적인 행보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은행의 공공성을 감안할 때 정부의 일자리정책이 시중은행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국책은행 경영평가에 '일자리 압박'
시중은행 경영 공시를 보면 올 상반기 기준 기간제 근로자는 ▲농협은행 2979명 ▲KB국민은행 794명 ▲신한은행 736명 ▲우리은행 576명 ▲기업은행 455명 ▲KEB하나은행 442명 순이다. 다만 기업은행은 준정규직인 무기계약직 인원 3100명이 별도로 존재한다.
은행권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어느정도 이뤄진 상태다. 우리은행은 2007년 3076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으며 신한은행도 2011~2013년에 걸쳐 2300명의 창구담당 직원을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국민은행은 2014년 무기계약직이던 텔러 4200명을, 하나은행은 2015년 외환은행과 통합 후 313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책은행에 정규직 전환 요구가 거세졌다. 금융당국은 국책은행의 경영평가에 일자리 기업지원, 일자리 창출기여도(정규직 전환 실적)를 반영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연내 국책은행의 경영평가 지표를 재정비하고 내년에는 달라진 경영평가조항, 평가위원회 등을 나열한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이는 임직원 성과급 지급과 다음해 목표설정, 예산·정원 승인에 반영되는 지표여서 국책은행이 정규직 전환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업은행은 연말까지 기간제 근로자 4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파견 근로자는 자회사에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산업은행도 노사전문가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에서 비정규직 근로자 114명의 정규직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비정규직이 가장 많은 농협은행은 농협중앙회를 중심으로 2019년까지 ‘비정규직 제로화’ 작업을 추진한다. 농협은행은 2014년 4명, 2015년 16명, 2016년 4명, 올해 8월 말 기준 4명의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내년에도 10여명이 정규직 전환 혜택을 볼 것으로 보고 있다.
농협은행을 제외한 시중은행은 아직 정규직 전환 추가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이미 새정부 출범 후 하반기 공채규모를 늘린 터라 정규직 확대에 따른 내년도 임금상승을 우려하는 눈치다. 점포를 줄이고 희망퇴직를 확대하는 등 몸집 줄이기에 나선 시중은행이 인건비 부담을 떠안으면서 정규직 전환을 확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국책은행 경영평가 지표를 개편하면서 정규직 전환 실적을 넣어 금융권이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는 효과를 꾀할 것”이라며 “시중은행도 정규직 전환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비정규직원들이 혜택을 얻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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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적용·선택제" 요구도 제각각
정치권에선 은행권의 정규직 전환작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사회약자로 분류되는 비정규직의 차별대우를 방지한다는 측면에서다.
이번 국감에서 정무위원회 소속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시중은행이 ‘RS직군’·‘준정규직’·‘LO’ 등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별도 정규직 직급을 만들어 2등 정규직을 제도화했다”며 “금융당국이 시중은행까지 온전한 정규직 전환 방침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와 정치권의 요구에 은행 내부는 갑론을박으로 시끄럽다. 우선 비정규직원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임금체계 산정부터 노사갈등이 벌어진다.
시중은행은 오래전부터 정규직 전환작업을 벌여 파견직을 제외한 비정규직 규모가 10% 미만에 불과하다. 이 중 절반은 정규직 전환을 스스로 원하지 않는 고액연봉의 변호사, 회계사 등이다. 채권, 외환딜러 등 전문계약직들도 근속은 짧지만 정규직보다 급여 등 처우가 높은 경우도 많다.
이들은 정규직 전환 조건으로 높은 임금을 요구한다. 일부 비정규직 사이에선 정규직 전환을 일괄 적용이 아닌 ‘선택제’로 도입하라는 요구까지 나올 정도다.
올 상반기 기업은행은 준정규직원(무기계약직)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다수의 직원들이 '직군에 따라 차등적용 하거나 정규직 전환을 선택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이미 정규직보다 보수가 높거나 전문분야가 아닌 영업 등에 투입되기 싫다는 입장이다.
청원경찰이나 청소원, 법인차량 운전기사 등 파견직원이 내놓는 요구는 더 다양하다. 통상 은행은 협력업체와 도급계약을 맺고 판견직원을 간접 고용한다. 은행 일손을 돕는 주요 인력이지만 복지나 임금에선 은행원과 전혀 다른 처우를 받는다.
이들은 대부분 협력업체와 계약을 마치고 은행에 재채용되길 원한다. 이들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하면 은행은 임금 부담이 늘어 신규채용 규모가 감소할 것이란 우려를 제기한다.
시중은행 인사부 관계자는 “2015년에도 청년 일자리를 늘리라는 정부 지침에 따라 채용을 늘렸는데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며 “은행이 포용하지 못할 수준으로 정규직을 늘리면 수년 뒤 희망퇴직이 확대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학교 교수는 “은행별로 비정규직원의 직무를 분석해 동일노동에 해당하는지, 동일한 임금이 지급되는 게 합리적인지 따져 정규직 전환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2호(2017년 11월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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