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四面楚歌). 최근의 현대자동차그룹을 바라보는 재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글로벌, 특히 G2(중국·미국)시장에서 고전하는 가운데 대내외적 악재가 지속되며 어려움이 가중됐다. 미래 전망도 밝지 않다. 빠르게 변하는 완성차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서지 못하고 한발 뒤에서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변혁은 언제나 위기에서 비롯된다. 현재의 위기는 현대차그룹에 변화를 촉구한다.

지난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서 열린 '대체연료 &스마트 모빌리티 서밋'에서 지영조 현대차그룹 전략기술본부 부사장이 발언하는 모습.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지난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서 열린 '대체연료 &스마트 모빌리티 서밋'에서 지영조 현대차그룹 전략기술본부 부사장이 발언하는 모습. /사진제공=현대차그룹



◆파괴적 혁신, ‘성공방정식’ 바꾼다

보수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는 현대차그룹이 스스로 쇄신을 꾀한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성공방정식을 적립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것.


현대·기아차는 그동안 가격경쟁력을 기반으로 글로벌시장에서 빠른 성장을 거뒀다. 쇳물부터 자동차까지 모든 공정을 수직계열화해 가장 이상적인 ‘패스트팔로워’ 모델을 구축했다. 수직계열화의 장점은 비용절감으로 이어졌고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양적성장을 일궜다.

하지만 이 같은 포지션이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는 실정이다. G2시장에서의 판매량 급감은 이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준다. 현대차그룹은 ‘사드보복’이라는 대외적 요인을 탓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많은 전문가가 현대·기아차의 중국시장 부진과 관련해 “사드 보복은 트리거일 뿐 궁극적인 문제는 기술력이 급격히 높아진 현지업체와의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시장 부진도 마찬가지다. 양적팽창에 치중한 나머지 변화하는 시장트렌드에 부응하지 못하고 경쟁력을 상실한 게 문제다. 그간 소비자가 원하는 차보다 공급이 용이한 차를 만든 것.


현대차그룹이 최근 발표한 ‘글로벌 조직 운영체계 개편’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쇄신이다. 세계시장을 권역별로 나눠 자율경영시스템을 도입하는 게 골자다. 본사에 집중된 기존 의사결정시스템에서 탈피해 각각의 시장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현대차는 우선 내년에 북미와 인도지역의 자율경영시스템화를 추진한다. 기아차도 북미에서 이 시스템을 우선 실시한다. 중국시장은 더욱 공격적으로 공략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8월 중국 사업본부와 연구개발본부를 한곳에 모아 별도의 중국제품개발본부를 출범했다. 중국시장이 원하는 차를 적기에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9월에는 중국 맞춤형 커넥티드카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별도의 빅데이터센터를 만들었다.


‘수직계열화 성공방정식’에 대한 더욱 파괴적인 혁신도 시도한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미래차시장 기술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미래차분야의 대대적인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확대에 나섰다. 그룹 내에서 모든 것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기존의 폐쇄적 구조에서 벗어나 이종회사와 협업을 강화하는 것.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네트워크기업 시스코와 커넥티드카분야에서 손잡는 것을 시작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에 회사의 미래를 걸었다. 지난 6월 코나 출시행사에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ICT기업과의 협업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기조를 잘 보여준다.


특히 자율주행 핵심기술에서 가장 앞서가는 이스라엘 기업들과 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 중이다. 세계 최고 자율주행기술을 가진 모빌아이와 협업을 논의 중이며 내년에는 이스라엘에 오픈 이노베이션센터를 설립하고 현지의 유망 스타트업과 미래 혁신기술분야에서 전방위적 협력에 나설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차후 오픈 이노베이션센터를 미래 모빌리티와 인공지능 등 분야의 연구거점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최근 글로벌업계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은 오너경영체제의 강점을 잘 활용하는 것”이라며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늦었지만 빠른 의사결정과 행동력으로 혁신을 거듭한다면 업계 선도 위치도 노려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대차그룹 양재동 사옥. /사진=뉴스1 DB
현대차그룹 양재동 사옥. /사진=뉴스1 DB


◆지배구조 개선 과제는 발목

현대차그룹의 혁신이 모든 면에서 빠르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변화의 필요성이 절실하지만 더딘 부분도 있다. 특히 ‘지배구조 개선’은 이 회사가 당면한 최대 난제다. 문재인정부 재벌개혁담당관을 자처하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일 현대차그룹 포함 5대그룹 CEO를 만나 “지배구조 개선의 의지를 보여달라”고 거듭 강조한 점을 상기하면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제스처를 보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복잡하게 꼬인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함과 동시에 오너경영체제 승계라는 과제를 안고 있어 실마리를 찾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핵심순환 고리를 끊고 오너경영체제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재계에선 현대차그룹이 올해 안에 순환출자 해소와 관련한 직접적인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한다. 섣불리 지배구조 개선 움직임을 보였다간 기업사냥꾼의 타깃이 되기 십상이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공정위의 요구에 대해 공익재단이 보유한 지분을 정리하는 등 부차적인 사항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응답하며 시간을 벌 것이란 게 재계의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는 무리하게 수직계열화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라며 “회사의 성장을 이끈 수직계열화가 미래가치 변화의 발목을 잡는 셈”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4호(2017년 11월15~2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