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코리아 푸드.” 푸른 눈의 미국인들이 한식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에 부는 한식 열기는 영화나 K-팝 같은 콘텐츠만큼이나 뜨겁다. 이른바 ‘K-푸드’로 인정받은 한국기업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결과다. 세계 넘버원, 미국시장 공략에 집중하겠다며 뛰어든 지 어느덧 10년. 성장세를 이어가는 시장에서 큰손이 돼버린 기업들은 다양한 형태로 미국 투자와 한식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미국에 부는 한식 열풍은 어느 정도일까. <머니S>가 창간 12주년 특별기획으로 미국 현지를 찾아가 한국기업들의 브랜드 활약상과 미래, 문화 한류 등 K-푸드의 위상을 집중 점검해봤다.<편집자주>


[미국 홀린 ‘K-푸드’, 현장을 가다-①] 맛지도 그리는 ‘K-푸드

# 비비고부터 신라면까지. 한국의 맛이 미국을 물들이고 있다. 과거 미국에 알려진 우리 음식은 불고기와 김치 정도로 한국인 이민자들의 주요 정착지인 하와이나 로스앤젤레스(LA) 코리아타운에서나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빵, 라면, 만두 등으로 상징되는 한국 대표 브랜드를 미국 어느 지역에서나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한국 브랜드=한인 고객’이라는 등식은 이미 깨진지 오래다.

지난 8월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국제공항(LAX) 근처에 위치한 월마트. 주말을 맞아 로렌 스펜서씨(33·여)가 장을 보러 나왔다. 평소 즐겨먹는 면과 만두를 사러 왔다는 그는 “한달에 한두번 여기서 한국 브랜드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집에서 간편하게 조리해 먹는다”며 “(한국 제품은) 쫄깃쫄깃한 식감이 좋고 먹을수록 더 빠져드는 맛”이라고 추켜세웠다. 마트 관계자는 “한인 외에도 최근 한국 브랜드를 콕 집어 찾는 현지인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외국 손님 카트 안에 신라면 제품이 담겨 있다. /사진=김설아 기자
한 외국 손님 카트 안에 신라면 제품이 담겨 있다. /사진=김설아 기자

◆한국 브랜드, ‘미국 맛지도’ 다시 그린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브랜드는 CJ제일제당의 만두 ‘비비고’다. 비비고 만두는 미국 코스트코에서 중국 만두 ‘링링’을 제치고 만두부문 판매 1위에 올라섰다. 링링은 미국 만두시장을 25년간 독식해 온 브랜드. 미국판 비비고 만두는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를 부추 대신 고수를 넣은 현지화전략으로 미국인들 입맛을 사로잡았다. 시식행사가 열리면 굽기가 무섭게 동이 날 정도로 미국의 명물이 됐다.


인기에 힘입어 매출도 껑충 뛰었다. 2015년 1240억원이었던 미국 등 글로벌시장의 비비고 만두 매출액은 올해 5650억원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에는 글로벌시장 매출액(3420억원)이 처음으로 국내시장 매출액(2950억원)을 앞질렀다.

매운맛 브랜드도 인기다. 신라면, 육개장사발면 등 농심의 라면 브랜드들은 미국의 면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농심의 지난해 미국 매출은 전년 대비 12% 늘어난 2580억원으로 사상 최대 성적을 기록했다. 미국에서 월마트, 코스트코 등 대형유통사 중심의 마케팅을 중점적으로 펼친 결과다. 지난해엔 사상 처음으로 미국 내 주류시장이라 불리는 메인스트림(현지 백인·흑인 중심 시장) 매출이 아시안마켓을 앞지르기도 했다.


더 고무적인 점은 일본 브랜드와의 경쟁이다. 현재 미국 라면시장 1위는 일본의 동양수산(시장점유율 46%). 일청식품(30%)과 농심(15%)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농심 라면의 성장세. 10년 전만 하더라도 2%대에 불과했던 농심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최근 몇 년간 빠르게 성장하면서 일본 라면을 추격 중이다. '다른 제품에서 맛볼 수 없는 깊은 맛', '한끼 식사로 손색없는 품질'. 미국 소비자들이 농심 라면을 주요 구매요인으로 꼽는 이유다.

베이커리업계에서도 한국 맛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 대표 프랜차이즈로 꼽히는 SPC는 파리바게뜨 브랜드로 본고장 미국을 적극 공략 중이다. 2005년 LA 코리아타운에 미국 1호점(웨스턴점) 오픈을 시작으로 맨해튼 핵심상권, 캘리포니아 주의 대표적인 주택가 등 다양한 상권에 진출했다.


월마트 매장 냉동식품 코너 앞. /사진=김설아 기자
월마트 매장 냉동식품 코너 앞. /사진=김설아 기자

파리바게뜨의 인기요인은 신선하면서도 맛있는 품질과 300여개에 달하는 다양한 제품을 구비한 점. 평균 100개 미만의 품목을 취급하는 미국시장의 기존 베이커리 브랜드와 차별화를 뒀다. 꾸준한 인기로 2014년 1087억원이었던 SPC 미주법인 매출은 지난해 1551억원으로 뛰었다.

SPC는 현재 미국에 생산시설 2곳을 설립하고 주요 도시에 78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이후 미국 전역에 2020년까지 파리바게뜨 매장 300여개를 추가로 내고 2030년까지 2000개를 더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SPC 관계자는 “일평균 약 3만5000명, 연간 약 1300만명의 미국인이 파리바게뜨 매장을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1위·다인종 국가… 글로벌사업의 요충지

이처럼 한국 브랜드는 미국 내 일반 마트나 주요 상권 매장 등 어디서든 볼 수 있고 캘리포니아나 뉴욕처럼 다문화 요소가 강한 곳뿐만 아니라 미니애폴리스의 오하이오나 디모인 같은 소규모 도시에서도 만날 수 있다.

미국이 글로벌 식품시장의 새 도약처로 떠오르면서 국내 식품기업들이 미국시장 개척에 적극 나선 결과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국내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하고 중국과 동남아는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로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면서 “일찌감치 미국시장에 역점을 두고 투자해 온 기업들이 성과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 투자가 더 활발해 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CJ는 현재까지 미국에 약 28억달러(약 3조2000억원)를 투자했다. CJ그룹 내부에서는 중장기적으로 최근 인수한 냉동식품기업 쉬완스, 만두공장 등 식품을 중심으로 약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추가 투입 계획을 갖고 있다. 농심 역시 LA공장 생산라인 증설에도 미국 현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올초부터 2공장 건립을 위한 부지를 물색 중이다.

기업들이 이렇게 미국 투자를 감행하는 이유는 미국이 가진 여러가지 매력요인 때문이다. 미국 식품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1조2700억달러(약 1424조원)로 글로벌시장의 약 19%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식품시장과 비교하면 10배 큰 규모. 미국 식품시장은 올해 1조3100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냉동식품시장의 전망도 밝다. 미국냉동식품인스티튜트(AFFI)와 식품마케팅인스티튜트(FMI)가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냉동식품 매출액(소매기준)은 전년대비 2.6% 늘어난 570억달러(약 65조 9000억원)에 육박한다. CJ는 특히 이 부분에 주목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비비고부터 신라면까지… ‘K-푸드’에 빠진 1500조원 시장

미국이 다인종이 섞여 사는 ‘샐러드 볼’(salad bowl) 국가라는 점도 식품 기업에겐 기회 요인이다. 우리와 음식문화가 비슷한 중국인이나 매운맛에 익숙한 멕시코인 등 히스패닉계를 공략해 성과를 내면 백인들이 주로 찾는 마트는 물론 고급시장인 홀푸드 등에도 입점을 노려볼 수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미국은 제일 큰 마켓일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로 전세계 식품시장을 리딩하는 상징성이 큰 곳”이라며 “이곳에서 한식을 알리고 제품을 확대한다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글로벌사업에서 절반은 성공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다는 측면에서도 미국시장은 긍정적이다. SPC 관계자는 “맨해튼과 다운타운 LA와 같은 시장은 브랜드 성장에 결정적인 요소고 고급 브랜드 이미지와 인지도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글로벌시장 핵심인 미국에서의 성공은 파리바게뜨가 전세계 다른 국가로 사업을 확장하는 데 큰 힘이 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성장목표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심은 미국에 부는 매운맛 열풍에 힘입어 미국 투자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입맛이 다국적으로 변화되면서 최근 10여년간 아시아와 남미의 맵고 강한 맛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라틴계과 아시안 등 이민인구의 증가와 밀레니얼세대의 성장으로 다양하고 새로운 음식에 관심이 증가하는 추세다.

임소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미국 뉴욕 무역관은 ‘2019년 미국 식품 트렌드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 소비자들이 이국적인 맛을 추구함에 따라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식품을 소개하기에 좋은 시기”라며 “한식에 대한 관심이 미국에서도 높아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608호·6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