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을 중심으로 활기가 넘치던 서울 대표상권 대학로와 홍대가 개성을 잃고 침체한 모습이다. 소극장과 거리음악(버스킹) 등 가난하지만 독특한 매력을 지닌 예술인들의 거리가 한때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한류 문화상품’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산업 침체와 상업적으로 변질된 젠트리피케이션화가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리게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학로·홍대 상권의 침체 원인과 현 상황을 분석하고 대안을 고민해본다. <편집자 주>


[강북 젊은 상권의 몰락-상] 색깔 잃은 ‘예술인의 거리’

강남역 만남의 장소 ‘에잇세컨즈’(옛 뉴욕제과), 대학생과 20·30의 스터디가 활발한 신촌·이대, 쇼핑과 패션의 메카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직장인 회식문화의 거리 종로와 광화문, 외국인 거리 이태원 등 서울시내 인기상권은 저마다의 뚜렷한 특색이 있다.


상권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 유명세를 타면서 사람들을 끌어당겼다가 다시 쇠퇴하고 몰락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새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대학로가 대표적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는 홍대도 실패한 상권으로 평가받는다. 대학로와 홍대가 인기를 잃은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로 거리. /사진=김창성 기자
대학로 거리. /사진=김창성 기자

‘예술 상권’이란 공통점

# 1. 올 4월 네이버 부동산카페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에는 ‘대학로 상권 좋은 바(Bar) 내놓습니다(급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9월에도 다른 커뮤니티를 통해 ‘대학로 메인상권 메인자리 팝니다’라는 글이 게재됐다. 두 게시글 모두 대학로 중심가인 혜화역 앞 역세권으로 유동인구가 집중적으로 몰리는 입지임에도 권리금을 터무니없이 낮췄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 2. 홍대는 2000년대 버스킹과 클럽문화로 젊은 층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외화벌이까지 톡톡히 하며 효자 노릇을 했다. 지방 정부가 나서서 관광특구 지정을 추진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특색을 잃고 대형화·상업화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골목골목 아기자기하게 꾸며졌던 미술 공방이나 편집숍을 대신해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음식점, 옷가게가 즐비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대학로와 홍대의 공통점은 유명 대학가에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상권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교통이 편리하고 유동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성공한 다른 상권과 대체할 수 없는 특징이다. 수십년간 자생적으로 발생한 연극산업, 미술·음악의 전시문화로부터 문화적 감수성을 느끼고 즐기기 위해 찾는 상권이다. 하지만 최근의 변화를 보면 대학로·홍대의 지속발전 가능성은 불안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다른 인기상권의 변화무쌍함과 샤로수길, 세로수길 등 새로운 상권에 차츰 밀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기하락 현상은 통계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조용히 죽어가는 상권 ‘대학로’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앞 ‘대학로’는 1975년 서울대 캠퍼스가 이전함에 따라 마로니에공원이 조성되고 주변으로 크고 작은 극장이 모여 ‘연극의 메카’로 성장했다. 대학로 하면 떠오르는 것이 연극이다.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과 서울대병원, 성균관대 등의 소비 수요를 가졌지만 최근 몇년 새 상권 침체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 지역 공인중개업소들에 따르면 혜화역 앞 A급 점포는 2017년만 해도 1층 66㎡ 기준 권리금이 2억~2억5000만원으로 보증금의 두배 수준이었지만 최근엔 권리금을 포기하고 떠나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월세를 10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절반 낮춰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채 공실로 남은 건물도 있다.

주말에는 그나마 유동인구가 있지만 예전보다는 대폭 줄었다. 평일엔 유동인구가 거의 없다. 대학로는 국내에서 공연산업이 지속성장하기 어렵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전인구경제연구소의 전인구 작가는 “대학로의 문제는 콘텐츠경쟁력 약화로 5년 전, 7년 전에 했던 공연이 바뀌지 않고 있다”며 “영화처럼 대본, 연출, 투자유치, 마케팅의 분업화가 안돼 한번 흥행한 공연을 놓을 수가 없다보니 옥탑방고양이, 작업의정석 등과 같이 오래된 로맨틱코미디가 주류를 이룬다”고 지적했다.

연극산업이 발달한 유럽의 경우 상업적인 시도 외에 다양한 분야의 아이디어와 연출이 이뤄진다. 전인구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연극 관람을 위해 대학로를 찾는 주소비층은 10~30대 여성으로 1~2년 만에 극장을 재방문한다는 응답이 대다수다.

전 작가는 “성공한 작품을 중심으로 지방 대도시까지 영역을 넓혀 굳이 서울까지 와서 볼 이유가 없고 연극 외엔 놀 게 없어 가까운 익선동, 가회동, 종로 등으로 빠져나가는 상권”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로를 살리기 위해선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연극을 알릴 수 있는 콘텐츠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영화제나 독립서점 등 개성과 젊음을 느낄 수 있는 거리로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급급매’ 딱지… 죽어가는 거리, 대학로·홍대

◆퇴색한 인싸들의 ‘핫플레이스’

상권의 성공을 결정짓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외지인, 특히 외국인의 방문이다. 대학이나 회사만 있는 상권은 주말엔 불황인 반면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상권은 ‘불황 없는 상권’으로 통한다. 이를테면 동대문 같은 상권이다.

홍대는 이른바 ‘인싸’(Insider·잘 노는 사람)들의 핫플레이스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하는 젊은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이 주요 타깃이다. 2000년대 홍대는 버스킹과 미술 공예품 전시, 클럽이 발달해 강북 최대상권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최근 2~3년 새 인기를 잃어가는 모양새다.

클럽문화가 절정이던 2000년대를 지나 2010년대 들어 상업자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마포구는 2016년 홍대와 서교동, 상수동, 합정동 일대의 관광특구 지정을 추진하며 관광정보센터를 세웠다. 관광특구는 정부의 관광진흥개발기금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홍대 상인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이유로 반대했다. 당시 홍대에서 활동하던 예술인 약 300명은 ‘홍대 관광특구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30년 넘는 시간 동안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홍대 문화의 자산을 이해하지 못한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관광특구 지정은 결국 보류됐다. 홍대는 지금 호텔과 면세점, 대기업 쇼핑몰이 들어서 더욱 활성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통계를 보면 개성을 잃은 상권에 대한 소비자들의 외면이 얼마나 무서운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서울 38개 상권의 투자수익률과 임대료상승률, 공실률 등을 종합분석한 결과 홍대·합정 상권은 2013년 1위에서 올해 4위로 밀려났다. 투자수익률은 6.2%(2위), 연간 임대료상승률은 0.3%(28위)다. 2016년 합정역 인근 상권의 연간 임대료상승률은 평균 45%로 이태원역(38%)이나 가로수길(36%)보다 높았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주요 소비층인 20·30대가 샤로수길이나 연트럴파크 등 새 골목상권을 선호하는데 따른 영향으로 분석했다.

외국인 유입 역시 마찬가지다. 마포구가 한국관광공사의 입국자수와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추정한 마포·홍대 방문 외국인수는 2015년 651만명에서 3년 만인 지난해 470만명으로 27.8% 감소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9호(2019년 11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