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9.10/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9.10/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서울=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 누구에게나 쓴소리는 쓰다. 자신의 약점을 들추고, 지적하는데 입맛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그런 충고를 달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 당 태종은 우리에겐 침략자이고, 형제를 죽이면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 패륜아로 인식된다. 하지만 태종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관리를 중요회의에 꼭 참석시켰다. 위징(魏徵)이라는 관리는 태종의 기분에 관계없이 대담하고 솔직하게 태종의 실책과 실수를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태종이 화를 내도 그는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할 말을 끝까지 했다. 위징이 죽자 태종은 “옛일을 거울로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과오를 알 수 있다. 위징이 갔으니 거울 하나를 잃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태종은 성당(盛唐)시대를 연 명군으로 꼽힌다.

정치판에 쓴소리하는 정치인이 드물다. 집권 여당 안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충언을 하는 결기 있는 정치인의 존재가 아쉽다.


◇ 쓴소리 마다 안해…"상대 공격하다 역습당해 실패할 수도"

정성호(59)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당내에서 쓴소리하는 의원으로 꼽힌다. 최근 정 의원은 여당의 독주에 대해 공피고아(功彼顧我)라는 바둑 용어를 써가며 쓴소리를 했다. ‘공피고아’는 위기십결(圍棋十訣)의 하나로 상대방을 공격하려면 먼저 자신에게 허점이 없는가를 살피라는 뜻의 격언이다. 자신의 약한 곳부터 보강한 다음 상대방을 공격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약점을 외면하거나, 기피하면 상대를 신바람내며 공격하다가 역습당해 실패하는 일이 흔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마당에서 정 의원을 만났다. 이날 오전 정 의원은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코로나19로 인한 4차 추경을 논의하고,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방법을 결정하고 왔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 위기로 국민 모두 촉각을 세우고 정부의 지원 규모나 방식을 주시하고 있다. 정 의원에게 생생한 정책 결정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2차 긴급재난지원금의 지원 대상은 누구인가?”

-1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며 코로나 확산세가 꺾이며 조금씩 코로나 위기가 가라앉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극우 단체의 8·15 광복절 집회와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사랑제일교회의 방역 비협조로 다시 코로나가 퍼졌다. 정부는 부득이 거리두기를 2.5단계로 올려야 했고, 12개 업종은 영업이 정지됐다. 상당수 업종이 영업 제한을 받아야 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생계가 한계상황에 몰렸다. 전례없는 위기 상황이다. 국가가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국가가 빚을 내서라도 도와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야간 형성됐다. 이들에게 위기 극복의 최소한 지원을 하는 것이다. 오늘 오전 청와대 비상경제회의에서 7조8000억원 규모의 4차 추가경정예산이 확정됐다. 또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을 위한 새희망자금, 특수고용형태근로자를 위한 고용안정지원금, 저소득층 긴급생계비, 아동돌봄쿠폰 등의 맞춤형 지원 등이 논의됐다.” 


“추경을 한 해 네 차례나 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IMF 외환위기 때 3차 추경한 적이 있다. 코로나 위기는 그만큼 특수하고 엄중하다. 국회가 신속하게 추경을 의결하고 집행해야 한다.


정부가 마련한 7조8000억원의 추경안 중 7조5000억원을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다. 국가채무는 올해 846조9000억원, 내년 952조5000억원으로 증가한다. 정부는 올해 세 차례 추경을 하면서 이미 34조2000억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역대 최고인 43.9%로 오른다.

“계속되는 국채 발행으로 국민 부담도 늘고 있다. 다른 방법은 없나?”

-이미 올해 세 차례 추경하는 과정에서 지출 구조 조정을 했다. 불요불급한 부분의 예산 사용을 줄이고 줄여, 더 이상 짜낼 곳이 없는 형편이다. 이런 한계 상황에서 개인이 빚을 질 것인가? 아니면 국가가 빚을 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은 국가가 빚을 져야 한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아직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넘지 않는다. OECD 국가들의 평균 국가채무비율이 110%에 이른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경제 성장의 동력 엔진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

정성호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8월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2020.8.3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정성호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8월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2020.8.3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정 의원은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9표 득표에 그치며 고배를 마셨다. “원내대표 선거에 떨어져 실망했나?”

-일찍부터 원내대표를 목표하지 않았다. 이번 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보니 당이 한쪽 의견만 듣고, 야당과의 협치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야당과 협치를 통해 통합의 정치를 이루고 싶었다. 또 보직 장사 하지 않고 연고주의, 정실주의 모두 없애는 것이 180석 거대 여당을 만들어준 국민께 보내는 강력한 변화의 메시지이고, 쇄신의 시그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경기 북부 접경 지역으로 민주당의 ‘험지’로 통하는 양주에서 6번 출마해 4선 의원이 됐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20년 전인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해 2000년 총선에서 동두천·양주지역 국회의원에 출마했지만 실패했다. 4년 뒤 재도전해서 국회에 입성했다. 북한과 접경지역으로 보수성향이 유달리 강했던 양주·동두천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왜 정치에 입문했나?”

-81학번이다.(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권위주의 군부독재에 맞섰다. 2년간 열심히 투쟁했다. 그러나 반정부 투쟁을 계속할 ‘용기’가 없었다. 사법시험을 봤다. 사법연수원생이었던 6월 항쟁 때는 거리에서 ‘정의’를 외쳤다. 군대를 마치고 바로 변호사 개업을 했다. 민변 회원으로 경기북부지역 시국사건 변론을 맡았다. 올바른 사회를 부르짖었지만, 변화는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답을 정치에서 찾았다. 내가 나고 자란 경기 북부는 그때도 지금도 낙후됐고 소외된 지역이다. 정치판에 직접 들어가 변화를 이끌고 싶었다.

“정치에 입문하며 어떤 정치인을 꿈꾸었나?”

-처음엔 나의 사상과 생각이 과격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실제 정치는 한쪽이 일방적이어선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치가 다른 쪽도 함께 가야 한다. 여야가 근본적인 사상이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다. 정책의 우선 순위와 가치관이 조금씩 다른 것이다. 한쪽을 무시하면 그쪽을 지지하는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극단적 진영 논리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협치를 이끌어 내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다.

“현재 여당이 야당과의 협치를 실현하고 있나?”

-협치가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 협치를 이루려면 여당이 양보를 해야 한다. 실제 현 여당이 야당이었을때, 여당을 향해 양보를 요구했다. 권력이 있는 여당이 양보를 하지 않으면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여당 내에서는 야당이 실제 협치할 생각이 없고,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데 무슨 양보냐고 주장하는 의원도 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양보하고 대화를 이끌어내야 큰 정치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9.10/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9.10/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한쪽을 무시하면 그쪽 지지 국민을 무시하는 것"

“여야의 협치를 경험해 보았나?”

-20대 국회때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맡았다. 야당 의원과 많은 대화를 했다. 여야간 협조를 통해 많은 법안을 신속히 처리했다. 힘들지만 함께 가야 결국은 빨리 가는 것이다. 협치가 여당과 야당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이다. 야당에게 일정 부분 양보하고 협치하자는 주장으로 당내 강성파로부터 엄청난 공격과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협치하지 않고는 신속하고 원만한 국회 운영을 할 방법이 없다.

그에게는 ‘무적(無敵)의 신사’라는 별명이 있다. 온화하고 친근한 성품 덕에 주변에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의 단단한 몸 때문이라는 농담도 있다. 그는 대학 재학 당시 학내 역도부 주장을 했다. 지금도 그때의 몸을 유지하고 있다.

협치를 강조하는 그가 태극기 부대 등 극우 단체에 대해서도 관용을 보일까?

-야당이 집권을 목표로 한다면 극히 보수적인 태극기 부대와 전광훈 목사 같은 종교인과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국가의 가장 우선 목표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들이 정부의 코로나 방역 조처를 왜곡하고, 호도하고,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것은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이제 그의 내부로 향하는 쓴소리를 들어보자. “최근 국민의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많이 떨어지고, 야당 지지도와의 격차도 크게 줄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민들이 기대하는 거대 여당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원래부터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야당과의 협치를 이끌어 내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위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책임이 크다. 정부 여당은 현재의 경제적 위기를 코로나 탓으로만 들릴 수 없다. 봉건시대 가뭄이 들었들 때 왕은 삼베 옷을 입고, 거친 식사를 하며 기우제를 지내며 국민의 안녕을 기원했다. 집권여당이 오만한 적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특히 부동산 3법 처리 과정에서 야당과의 대화가 부족했다. 국민의 한 축이 지지하는 야당을 무시하면 안된다. 또 사안에 따라 내로남불식 주장을 하고, 기득권에 젖은 듯한 모습이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다.

그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않고, ‘덕분에 배지’를 달고 있었다. ‘덕분에 배지’는 코로나와 싸우며 헌신하는 현장의 의료진을 응원하기 위해 만든 배지다. 그는 한달 전부터 이 배지를 착용했다고 한다. “평소에 국회의원 권위의 상징인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다니나?”

-초선때는 의원 배지를 달고 다녔다. 때론 내가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배지를 보고 인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의원 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다.어떤 분들은 국회의원이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배지를 당당하게 달고 다니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다.

◇"국회의원 배지 보고 인사하는 것 같아 안달아대신 덕분에 배지"

그에게 정치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충고를 부탁했다.

-사회 변혁과 개혁을 원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인으로서 가장 큰 덕목은 애국심이다. 국가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다.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정성껏 듣고, 그들의 희망과 꿈을 모아 정책을 만들고 입법 활동을 해야 한다.

그는 민주당내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지원하는 세력의 좌장으로 꼽힌다. 이 지사와는 사법연수원 동기(18기)다. 이 지사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경기도 국회의원이라고 한다. 차기 대권 유력후보로 꼽히는 이 지사와의 관계를 물었다.

-개인적으로 불만이다. 나를 이재명계라고 부르지 마라. 내가 나이도 이 지사보다 3살 많고, 정치도 이 지사보다 먼저 시작했다. 사석에서는 이 지사가 나보고 형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보면 내가 이재명계가 아니고 이재명이 내 계보라고 해야 맞다. 동지적 긴밀한 관계이다.

“가까이서 본 이 지사는 어떤 사람인가?”

-사회적으로 어렵고 소외된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애정이 깊다. 그들에 대한 공감도 역시 높다. 성남시장과 지금 도지사 역할을 하며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 지사와는 30여년의 질긴 인연이다. 6월 항쟁이 있던 1987년,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연수원생들이 열댓명 모여 공부모임 ‘노동법연구회’를 만들었는데, 거기서 이 지사를 만났다. 이 지사는 공부 열심히 하던 모범생이었는데, 정치 입문할 때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그는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를 알고, 그 가치를 비전으로 만들어 구체화하는 추진력과 결기가 있는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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