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로 불리는 차종을 샀더라도 법적으로는 SUV가 아닌 경우가 존재한다. 현대 베뉴는 기타형 차종이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SUV로 불리는 차종을 샀더라도 법적으로는 SUV가 아닌 경우가 존재한다. 현대 베뉴는 기타형 차종이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말 그대로 SUV(승용형 다목적차) 열풍이다. 비대면에 따른 ‘캠핑’과 ‘차박’ 인기에 수요가 폭발적이다. 소형부터 대형까지 크기가 다양해진 것을 넘어 쿠페형 SUV나 지붕이 열리는 컨버터블 SUV처럼 기존 틀을 파괴한 형태도 등장해 소비자 선택권이 넓어졌다. 차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시장 자체가 커지는 선순환효과로 이어졌다는 평이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승용차 중 SUV는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53만2832대가 새로 등록됐다. 해당 기간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가 123만6338대인 점을 감안하면 SUV 판매는 무려 43.1%에 달한다. SUV 점유율이 2013년 19%였고 2017년 31.4%였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느껴진다.

하지만 SUV로 불리는 차종을 샀더라도 법적으로는 SUV가 아닌 경우가 존재한다. SUV라는 말은 법에서 정의된 게 아니라 시장에서 특정한 형태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여서다. 사람들은 관념적으로 SUV가 어떤 형태인지 인식하지만 구체적인 정의가 모호한 데 따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는 다목적형으로 인증받았다. /사진제공=한국지엠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는 다목적형으로 인증받았다. /사진제공=한국지엠

갖다 붙이면 SUV?

SUV는 사전적 의미로 스포츠형 유틸리티 차 또는 스포츠 실용차로 정의한다. 우리말로 쓰면 영어와 한자가 뒤섞인 정체불명의 용어가 돼버려 오히려 이해가 더 어렵다. 북미에서는 거친 노면을 달릴 수 있도록 사륜구동시스템을 갖춘 큰 승용차로 정의된다.

6~7년 전부터는 소형 SUV라는 개념도 국내에 정착되기 시작했다. 생김새가 비슷한 해치백(따로 구분된 트렁크가 없는 구조로 문을 들어 올려 열 수 있는 차)은 인기가 없었지만 소형 SUV는 달랐다. 신차가 출시될 때마다 기존 시장을 갉아먹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전체 파이를 키웠다.


이런 이유로 자동차 제조사는 해치백보다 약간 높으면 SUV라고 부른다. CUV(크로스오버 유틸리티 차)라는 개념도 있지만 국내 소비자는 SUV 외의 것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CUV는 오프로드보다 온로드 지향의 SUV형태를 지닌 승용차다. 르노 ‘캡처’도 국내 출시됐을 때는 소형 CUV로 부르다가 지금은 SUV로 구분한다. 다른 브랜드도 해외에서 크로스오버 또는 CUV 등으로 구분하더라도 국내에선 SUV로 부른다. SUV라는 용어가 ‘대세’란 얘기다.

이 같은 이유로 SUV의 원래 목적인 험로주행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SUV로 통칭하는 상황이 생겼다는 게 자동차업계의 중론이다. 수입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인증과는 별개로 마케팅 개념으로 SUV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일반적”이라며 “새로운 용어를 적용하려다 실패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쌍용 코란도 R-플러스는 다목적형 차종이다. 티볼리는 기타형. /사진제공=쌍용자동차
쌍용 코란도 R-플러스는 다목적형 차종이다. 티볼리는 기타형. /사진제공=쌍용자동차

잘못된 용어 사용, 문제 없나



그렇다면 용어 사용엔 법적인 문제가 없을까. 국토교통부에서는 법률로 정해진 구분에서 벗어나 허위나 과장해 사용하는 게 아닌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SUV라는 용어는 시장에서 사용하는 것이며 차의 형태에 따른 인식으로 본다”며 “자동차관리법에서 정의하는 자동차 유형별 구분에 따르면 승용차 중 다목적형에 가깝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1996년 12월 개정된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에서는 ‘짚형’을 ‘다목적형’으로 바꾸고 세부기준이 추가됐으며 지금도 해당 기준을 사용한다. 지프(JEEP)는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여서 이를 대신할 단어를 추가한 것. 지금은 SUV라고 부르는 차를 예전엔 ‘찝차’로 부른 이유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승용차의 유형별 세부기준은 ▲일반형 ▲승용겸화물형 ▲다목적형 ▲기타형으로 구분된다.


일반형은 2개 내지 4개의 문이 있고 전후 2열 또는 3열의 좌석을 구비한 유선형인 것으로 정의된다. 2인승 차나 7인승 미니밴 등도 해당된다. 승용겸화물형은 차실 안에 화물을 적재하도록 장치된 것을 의미한다. 모닝이나 레이의 밴 모델이 대표적이다.

다목적형은 ‘후레임형이거나 4륜구동장치 또는 차동제한장치를 갖추는 등 험로운행이 용이한 구조로 설계된 자동차로서 일반형 및 승용겸화물형이 아닌 것’이라고 정의됐다. 그리고 기타형은 ‘위 어느 형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승용자동차인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소형SUV로 인식하는 현대자동차의 베뉴와 기아자동차의 니로, 르노 캡처, 쌍용자동차 티볼리 등이 ‘기타형’에 속한다. SUV와 닮았지만 험로주행 성능을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수입차 브랜드 미니(MINI) 컨트리맨은 SUV가 아닌 SAV(스포츠 액티비티 비히클)이라는 용어를 쓰며 ‘일반형’으로 등록했다. 하지만 BMW의 X 라인업은 회사가 SAV로 정의함에도 1부터 7까지 모두 ‘다목적형’으로 인증받았다.

형태 구분에 따른 구매비용도 지자체에 따라 차이가 있다. 서울기준으로는 공채 매입비율이 다목적형 5%지만 일반형은 20%나 된다. 서울에서 배기량 2000cc 이상 6000만원짜리 다목적차를 살 때는 등록세와 공채할인(3.75%) 등을 합해 총 392만3453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형으로 분류된다면 총 423만9271원으로 둘의 차이는 31만5818원이나 된다. 자동차회사가 어떻게 등록했느냐에 따라 이 같은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결국 다목적형으로 인증을 받아야만 험로주행 성능이 검증됐다고 봐야 한다는 게 관련업계의 주장이다. 인증 업무를 담당하는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다목적형으로 구분되는 차종은 전쟁 시 차출 목적으로 험로주행성능에 대한 규정이 엄격했고 10여년 전만 해도 수입 SUV는 이 같은 국내 인증기준을 맞추기가 어려워 출시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2012년 이후부터는 전자식 자동차 제어장치(VDC, ESC, ESP 등 차체자세제어장치)가 기계식 장치(LSD·차동제한장치)를 대신할 수 있도록 규정이 개정되며 다양한 차종 출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다만 자동차업계 일부에서는 과장된 용어 사용으로 소비자가 자동차 성능을 과신할 수 있는 점을 우려했다. 국산차업계 관계자는 “험로주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통 SUV가 아님에도 SUV라는 말을 붙이는 점은 소비자로 하여금 험로주행이 가능한 것으로 오해의 여지를 남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