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집사일… 고전하는 부동산신탁업체들
[머니S리포트] 빨간불 켜진 부동산신탁업계(1) - 신탁사, 리스크 경고음에 금감원 일시 점검 착수
김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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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똑똑한 비서이자 안정적인 자금을 내세운 대형 부동산신탁사들도 불확실한 지방자치단체 행정에 발목이 잡혔다. 토지 소유주로부터 사업권을 위임받아 개발 가치를 높여준다는 약속으로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의 영향력을 키웠지만 정작 협상력에 비해 사업성 면에선 발전이 없다는 불만마저 터져나온다. 토지신탁업계 1·2위 한국토지신탁과 한국자산신탁은 2016년 관련법 개정으로 도시정비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조합방식 정비사업은 각종 비리와 불투명한 운영 등으로 문제가 발생해 전문성 있는 신탁사가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최근 수년간 두 회사는 영업이익률이 50% 안팎을 기록해 시행사의 3배 수준인 이익을 냈다. 하지만 주가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미국을 시작으로 고금리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신탁사들의 자금조달비용도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지속성장에는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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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 순서
(1) 쉽지 않은 집사일… 고전하는 부동산신탁업체들
(2) 재개발·재건축 수주 1위 '한국토지신탁' 수익성 추락
(3) 불확실한 지자체 행정에 발목잡힌 신탁방식 정비사업
#. 4대 금융그룹 계열 A신탁은 2011년 토지를 위탁받아 타운하우스를 분양했다가 사업비를 조달한 저축은행의 영업정지로 사업이 중단됐다. 분양받은 계약자 전체의 동의가 있어야 공매가 가능하다는 약정이 있음에도 A신탁은 2018년 41가구 계약자 가운데 20가구만 동의를 받아 토지를 강제 공매했다. 공매에 미동의한 투자자들은 분양대금의 원금도 환불받지 못했다. 당초 토지를 위탁한 시행사 목림개발은 자체 자금 200억원으로 땅을 샀기 때문에 A신탁에 사업지를 매각해 분양대금을 정산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A신탁은 관계사를 통해 공매를 성사시켰다. 10년이 지난 올 초까지 분양대금이 환불되지 않아 금융감독원에 민원이 제기됐다.
자금력 있는 신탁사가 조합 등 토지 소유주를 대신해 사업을 대행하면서 그동안 시공사를 상대로 협상권이 약화됐던 조합에 장점으로 부각됐다. 신탁사와 사업 계약을 체결할 경우 자금 융통을 위한 시공사 보증도 받을 필요가 없게 됐다. 하지만 대형 신탁사가 사업권을 갖게 되며 사업주인 조합뿐 아니라 시공사를 상대로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하고 이윤을 남긴다는 비판과 함께 정비사업 리스크 요인으로 떠올랐다.
신탁보수는 분양매출 대비 보수율에 따라 약정을 통해 결정된다. 수수료 인하 경쟁이 강화되며 평균 신탁 보수율은 2019년 0.36%, 2020년 0.32%, 2021년 0.29% 등으로 감소했지만 사업방식에 따라 0.1~3.0%대로 최대 수백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각종 불공정한 계약 조건들로 법적 분쟁도 날로 늘어가는 추세다.
피소 소송만 천억대
앞선 사례에서 계약자들은 A신탁을 상대로 분양대금반환소송을 제기했으나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했다. 소송에서 A신탁은 '단순한 자금관리인'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계약서상 토지 공매 조항의 합의 내용을 부인하고 계약자와 직접적인 계약 관계에 있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A신탁은 시행사인 목림개발이 토지 매각을 통한 분양대금 반환을 요청했을 때 이 회사 소유 건물을 담보로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통상적인 개발사업의 경우 부지 대부분을 소유한 시행사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일으켜 분양을 개시한다. 신탁사가 개입한 경우엔 분양 계약자는 신탁사 명의 계좌로 계약금·중도금·잔금 등을 모두 납부한다. 이를 통해 분양대금 보호와 안전성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신탁보수를 감당하는 이유다. 하지만 사업이 지체되거나 중단, 실패하면 원인이 무엇이든 계약자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업계는 지적한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후유증과 2010년대 초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로 분양 실패가 잇따랐지만 이에 대한 신탁사의 책임은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분양이 성공했을 때만 자금이 보호돼 사실상 금융 안정성이란 신탁의 목적이 사라진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신탁사가 금융위원회 허가를 받아 설립되면서 자금 투자와 리스크 없이 수수료 장사만 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면서 "사업 리스크에 따라 계약자가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면 분양 홍보에 '신탁 자금관리'를 홍보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분양계약대로 공사가 진행되지 않으면 채권자로서 부동산 압류를 할 수 있다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탁업계 1·2위인 한국토지신탁(한토신)과 한국자산신탁(한자신)이 올 1분기 기준 피소 당한 소송 사건과 가액은 각각 156건(1495억원), 203건(2081억원)이다. 두 회사가 제소한 소송 사건과 가액도 각각 43건(812억원), 44건(658억원)이다.
퇴직 공직자 낙하산 자리 비판
조합방식의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리스크가 커지면서 2016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으로 신탁사가 직접 정비사업을 대행·시행할 수 있게 됐다. 서울에서 신탁방식을 택하는 사업지는 2016년 1곳에서 2021년 10곳으로 증가했다. 가구수 기준으론 125가구에서 7063가구로 50배 이상 늘었다.하지만 자본 건전성은 악화돼 금융당국은 부채비율이 높은 신탁사 3~4곳에 대한 특별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대형 신탁사인 한토신과 한자신은 검사 대상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부채 규모를 보면 한토신은 ▲2019년 5657억원 ▲2020년 6215억원 ▲2021년 6966억원 등으로 증가했고 부채비율도 ▲2019년 64.2% ▲2020년 67.3% ▲2021년 68.0% 등으로 상승했다. 올해 부채비율은 72.5%에 달할 전망이다.
같은 기간 한자신은 부채가 줄어 ▲2019년 5764억원 ▲2020년 4388억원 ▲2021년 4154억원 등을 기록했고 올해는 4105억원이 예상된다. 부채비율은 ▲2019년 87.2% ▲2020년 57.1% ▲2021년 48.9% 등으로 감소한 데 이어 올해는 44.1%로 더 낮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외환위기(IMF) 이후 종합금융회사(종금사)가 퇴출퇴고 신탁사가 공직자 출신 퇴직자의 자리 보전용으로 이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외국에선 일반 금융회사 상품인 부동산신탁이 국내에선 개별 사업허가를 받아 설립할 수 있고 다양한 사업자의 참여를 막아 쉽게 돈 벌게 해주면서 사외이사, 감사 등이 공직 출신들로 채워져 억대 연봉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토신과 한자신의 공직자 출신 감사위원은 강영서(국토교통부) 윤훈열(방송통신위원회) 조국환(금융감독원) 김충식(방송통신위원회) 송경철(금융감독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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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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