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폭 흉내내는 것은 일진 청소년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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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장례식장에 도열한 조직폭력배들. (광주지방경찰청 제공) 2022.8.29/뉴스1 |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경찰이 전현직 조직폭력배(조폭) 유튜브를 전수조사하고 있다. 검색만 하면 나오는 조폭 콘텐츠가 청소년들의 모방 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경찰은 전수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번 달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조폭을 흉내 내는 것은 일진 청소년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양지의 세계에서도 '조폭 문화'가 어김없이 확인된다.
먼저, 조폭은 '출신'을 중시한다. 학창시절 일진이나 싸움 짱, 운동부 출신 주먹들은 보통 선배들의 영입으로 어둠의 세계에 입문한다. 이들은 나름 '정통' 대우를 받는다.
반면 웨이터나 호스티스바 출신 조폭들은 정통성이 없다고 평가 절하된다. '반달' 출신은 아예 '식구'로 인정받지 못한다. 반달이란 건달인지 일반인인지 모호한 불량배를 일컫는 은어다.
물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은 조폭이나 반달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의미 없는 '정통'과 '출신'을 따지는 것은 음지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일만이 아니다. 출신 고등학교나 대학, 출생지, 공개채용(공채) 유무에 따라 성골인지 가르는 문화가 양지의 세계인 기업·정치권·공직사회에서 이어지고 있다.
둘째, 조폭은 소속 조직의 규모와 명성을 중시한다. 부산의 칠성파와 신20세기파, 인천의 부평식구파, 성남의 국제마피아파 등은 기업으로 치면 '대기업'에 속한다. 이들 조직의 상당수는 와해됐으나 계보를 잇겠다는 조직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어찌됐든 대기업급 조직 외에 군소 조직 또는 신생 조직은 생존을 장담하지 못한다. 이들은 대규모 조직 조폭들에게 반달로 취급받는 서러움을 겪는다.
양지의 세계에서도 '명함을 못 내민다'는 말이 있다. 명절 가족 모임과 맞선 시장 등 우리 일상에서 소속과 직함, 직위로 평가하는 관행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특히 중소기업 또는 벤처기업 종사자들을 향한 우리 사회의 섣부른 평가는 여전하다.
'영향력이 있는 직업'으로 알려진 기자도 비슷한 처지다. 조직 규모가 작거나 인지도가 크게 낮은 언론사의 구성원들은 취재 과정에서 서러움을 경험한다.
셋째, 조폭은 처세와 상명하복을 중시한다. 과거 조폭들은 행동 강령을 만들고 집단 합숙생활을 했다. 조폭들은 이를 '사상과 처세를 배운다'고 표현한다.
요컨대 큰 형님이 식사하기 전 동생들은 일어서 기다리다가 형님이 '앉으라' 얘기하면 그제야 식사할 수 있다. 형님을 보면 90도로 인사하고 '쉬셨습니까 형님'을 외치는 것도 대표적인 처세와 사상이다.
조직원들을 챙길 만한 자금력이나 수완이 없는 형님은 늘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 '늘어진다'는 것은 조폭 생활을 그만둔다는 의미다. 조직에서 쫓겨나거나 늘어진 조폭들은 유튜버로 전업해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수익을 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두둑한 자금의 스폰서를 잡는 것은 조폭 생활의 생존이 걸린 문제인 셈이다. 영화에서 "돈이 의리다"고 말하는 조폭의 모습은 허구라 보기 힘들다.
'줄을 잘 대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생활에서도 오랜 성공 공식으로 꼽힌다. 공직사회에서도, 정치권에서도, 기업에서도 황금 동아줄을 잡기 위한 크고 작은 배신이 이뤄진다. '조폭 문화'는 어둠의 세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이미 스며든 씁쓸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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