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들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하며 적은 마진이라도 무리하게 수주를 밀어붙이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최근엔 높은 공사비에도 손실 회피를 위해 움츠러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그래픽=강지호 디자인 기자
시공사들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하며 적은 마진이라도 무리하게 수주를 밀어붙이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최근엔 높은 공사비에도 손실 회피를 위해 움츠러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그래픽=강지호 디자인 기자


#. 오는 6월 입주 예정인 서울 강남구 '대치푸르지오써밋'이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조합과 시공사 간 분쟁이 발생했으나 극적으로 공사 중단 사태를 모면했다. 시행 측인 대치동구마을1지구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당초 시공사인 대우건설과 총 공사비 1662억원에 도급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최근까지 절반 이상 미입금됐고 대우건설은 설계변경과 금융비용을 반영, 670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했다. 이에 난색을 표하던 조합은 입주 2개월을 남겨놓은 지난 4월18일 대우건설이 요구한 추가 공사비의 3분의 1가량인 228억원을 지급하고 급한 불을 껐다.


#. 서울 강남구 청담삼익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청담르엘'은 오는 5월 분양을 앞두고 공사비가 최초 계약 대비 1.7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해당 조합은 2017년 롯데건설과 3726억원에 도급계약을 맺었으나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공사비 1404억원을 증액했다. 이어 올해도 롯데건설은 1182억원의 증액을 요청한 상태다. 이를 반영할 경우 총 공사비는 6312억원으로 최초 계약금액보다 69.4% 늘어난다. 조합은 5월 총회에서 공사비 증액안을 포함한 관리처분계획을 상정할 계획이다.

한때 저가 수주 경쟁으로 몸살을 앓던 도시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이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 폭등 사태를 맞았다. 대기업 시공사들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하며 적은 마진이라도 무리하게 수주를 밀어붙이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최근엔 높은 공사비에도 손실 회피를 위해 움츠러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의 '월간건설경제동향'에 따르면 올 2월 건설업체의 국내 건설 수주액은 13조4494억원으로 집계, 전년 동월 대비 6517억원(4.6%) 감소했다. 눈에 띄는 건 주거용 건축(주택) 수주가 크게 줄고 정비사업 수주는 감소율이 더욱 컸다. 주거용 건축 수주액은 3조6604억원으로 전년 동월(5조709억원) 대비 1조4105억원(27.8%) 줄었다. 재건축 수주액은 지난해 2월 3932억원에서 올 2월 2685억원으로 1년 만에 31.7% 감소했다. 재개발 수주액은 같은 기간 9916억원에서 1조9008억원으로 91.7% 증가했으나 이는 올해 재개발 최대어인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재개발(1조7660억원)의 단일 건 수주 영향이 컸다.

그래픽=강지호 디자인 기자
그래픽=강지호 디자인 기자


"공사비 미지급 리스크 커"

건설업계는 정비사업 수주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 공사비 부담을 들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2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50.9로 전년 동월(142.4) 대비 6.0% 올랐다. 연간 시멘트 가격은 27.5%, 레미콘은 22.5% 각각 급등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오르면서 정비사업 이윤이 줄어들고 고금리 여파로 분양시장이 침체돼 공사비 미지급 리스크도 커 조합과의 분쟁에 대한 부담이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대형건설업체 대부분 조합과 공사비 분쟁을 겪었다. 삼성물산은 오는 8월 입주 예정인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의 공사비를 2018년 당시 계약 때보다 두 배 가량 인상, 조합원들의 분담금 폭탄이 예고된 상태다. 서울 최대 재건축사업 둔촌주공(단지명 '올림픽파크 포레온') 조합은 시공사업단(현대건설·대우건설·롯데건설·HDC현대산업개발)과 공사비 인상을 놓고 대립하다가 6개월 간의 공사 중단 사태를 맞았다. 그 사이 공사비는 2조6000억원에서 3조2000억원으로, 다시 4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84㎡(전용면적) 기준 조합원 분담금은 2017년 3000만원에서 현재 2억원으로 뛰었다.

대우건설은 ▲경기 성남시 산성구역 ▲경기 의왕시 오전다구역 ▲서울 성북구 장위6구역 등 재개발에서 잇따라 공사비 분쟁을 겪고 있다. GS건설은 신반포4지구(단지명 '메이플자이') 재건축 조합과 공사비 증액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GS건설은 지난해 말 설계변경과 금융비용 등을 이유로 조합에 기존 9300억원에서 4700억원 증액된 1조4000억원의 공사비를 요구했다.


수개월째 협상을 벌이던 양측은 공사비를 1조1300억원으로 늘리고 공사기간 8개월 연장에 합의했으나 공사비 증액 이슈는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해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의뢰한 사례는 32건으로, 전년(22건) 대비 45.5%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