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람코자산신탁 본사 사옥/사진 제공=코람코자산신탁
코람코자산신탁 본사 사옥/사진 제공=코람코자산신탁


◆기사 게재 순서
(1) 법적 지위 없는 재개발·재건축 '예비신탁사' 지정 난립
(2) 목동7단지 준비위 활동 중에 등장한 단체의 개별 행보
(3) "일단 따고 보자" 재개발·재건축 뛰어드는 신탁사들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장에서 신탁방식을 선택하면 빠른 속도와 투명한 운영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로 관련 시장이 급성장세다. 하지만 시장 진입 초기라는 핸디캡이 있어 표준계약서 부재와 불공정 계약 조건, 보수율 기준의 불명확성 때문에 소유주들은 혼란에 빠졌다. 서울시내 재건축 사업장 중 관심지역인 '목동신시가지7단지'는 최근 신탁방식과 조합방식을 놓고 초기 단계부터 주민들의 신경전이 팽팽히 이어지고 있다. 올해로 입주 37년차인 목동7단지는 34개동 총 2550가구 규모로 목동신시가지 가운데 가구 수가 가장 많다. 지하철 5호선 목동역이 바로 앞에 있고 초·중·고교가 인근에 있다.

지난 11월27일 찾은 목동7단지, 한눈에 봐도 노후화가 상당히 진행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실내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가구의 경우 외풍조차 막기 힘들 정도로 섀시가 매우 낡았다. 주차난이 심각해 이중, 삼중 주차는 물론 보행로 일부도 차들로 가로막혀 있다. 2018년 '재건축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를 결성했다. 1000여명의 소유주가 가입된 카카오톡 메시지 그룹과 재건축 사업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단체인 '정비사업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동대표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추진위는 '동대표와 겸임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당초 준비위원장에서 해임된 A씨를 주축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10월24일 코람코자산신탁이 추진위와 업무협약(MOU)을 체결, 신탁방식 정비사업의 예비신탁사로 선정됐다고 알려지며 두 단체는 부딪치기 시작했다. 준비위는 입장문을 내고 정비사업 방식을 정하지 않았고 공식 투표를 진행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소유주 20여명이 예비신탁사 선정

추진위는 지난 9월 20여명의 소유주들을 대상으로 정비사업 방식에 대한 투표를 진행, 80%가 넘는 지지율로 '신탁방식'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10월6~10일 조달청 누리장터에 신탁사 입찰 공고를 냈고 코람코를 예비신탁사로 선정됐다.


이에 대해 준비위는 추진위의 설립 자체에 법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서울시 공동주택 관리규약준칙'에 따르면 동대표(배우자·직계존비속 포함)는 재건축 준비위원회나 추진위원회의 임직원이 될 수 없다. 이해관계가 발생할 수 있는 사항에 개입을 사전 차단해 동대표로서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조치다.

양천구청 역시 6월부터 추진위에 시정조치를 요구해왔다. 공동주택 관리운영 업무에서 입주민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재건축 사업에 관여하는 경우 선량한 입주민들의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


서로 다른 '동대표 겸임 금지' 해석

반면 추진위 측은 관리규약에 따라 정당하게 운영하는 단체라며 맞섰다. 앞서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해 12월 관리규약을 개정, 겸직 금지 대상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이 규정한 조합이나 구청으로부터 승인받은 단체로만 한정했다.

서울시 관리규약준칙에 맞지 않지만 해당 준칙은 강제성이 없어 반드시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추진위 주장이다. 준비위 관계자는 "정비구역 지정 전 단계에서 구청 승인을 받은 단체가 없고 관리규약을 1년에 한 번 개정해 입주민들이 자세히 알지 못한 점을 이용, 겸임 금지 규정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추진위 설립을 주도한 A씨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추진위의 각종 활동을 지원하기로 의결해 위법 사항이 없다"고 해명했다. 양천구청 측은 아파트 관리규약이 적법하게 개정됐다면 더 이상의 행정 조치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7단지 아파트는 현재 재건축추진 준비위원회 2곳이 대립하고 있는 상태다. /사진=정영희 기자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7단지 아파트는 현재 재건축추진 준비위원회 2곳이 대립하고 있는 상태다. /사진=정영희 기자


"사업 시작도 전부터 싸우면 어쩌나"

예비신탁사 선정은 목동7단지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정부조차 해당 관행에 제동을 걸고 있다. 주민 B씨는 "입주민 동의를 거의 못 받은 동대표끼리 모여서 정한 것은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최소 15년 소요되는 재건축 사업에서 벌써부터 갈등이 있어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목동신시가지(1~14단지) 단지별 재건축 준비위가 모인 '목동 아파트 재건축 준비위원회 연합회'도 목동7단지의 준비위 측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들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다수의 소유자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표 결과를 전체 소유자에게 공표하지 않은 MOU 체결은 절차상 혼란을 빚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코람코자산신탁 관계자는 "입찰에 참여할 당시는 두 단체가 갈등을 빚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며 "다만 입주자대표회의가 모인 추진위가 공개 입찰을 통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더 대표성을 갖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준비위는 당초 11월에 정비사업 방식에 대한 소유주들의 의견을 취합하려 했으나 최근 정비구역 지정이 예상되는 내년 하반기로 미루는 데에 합의했다. 예비신탁사는 정비사업에서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지만 우후죽순 난립하는 소유주 단체를 막을 규정도 없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현재로선 정비사업을 추진하려는 주민 단체가 난립해도 이들이 스스로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하는 행위까지 법으로 규정할 순 없다"면서 "다만 불필요한 분쟁으로 사업이 늦어질 경우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별도의 법규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