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리포트]지방으로 간 공공기관…




▶글 쓰는 순서
①지방으로 간 공공기관… "지역 경제 살아났나요?"
②나주 이전 10년 '한전'… "만년 과장으로 남겠습니다"
③부산 생활 19년차 '거래소'… 처참한 금융중심지
④'부산行' 택한 산업은행, 살림 쪼그라들고 경쟁력 하락 우려
⑤10명 중 8명 "본사 가기 싫어"… LH 직원 처우 나빠졌다
⑥부산-서울 잦은 출장… 피로도 높은 HUG 직원들
⑦고시원에 상사와 동거 중… '신의 직장' 공공기관 직원



정부 주도로 진행된 공공기관 지방이전 작업이 마무리된 지 5년이 흘렀다. 해당 사업은 수도권에 집중된 경제력을 지방으로 분산시켜 비수도권과의 격차를 축소하고 국가의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20여년전부터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지만 실제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중심의 성장 기조는 더욱 굳건해지고 비수도권은 생산성 하락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한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에 따른 일자리 창출과 인구 유인 효과도 의문이다. 오히려 수도권 인구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한데 비해 비수도권은 인구 위축에 따른 지역 소멸을 고민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을 추진하기에 앞서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른다.

지역 간 불균형 해소한다더니… 오히려 심화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시작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수도권 경제력 집중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설립됐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공간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균형발전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2004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한 데 이어 2005년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이 수립됐다. 이 계획의 골자는 수도권에 몰려 있는 주요 공공기관을 미래성장동력 창출이 가능한 비수도권 지역의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내용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05년 기준 전국 405개 공공기관 중 85%에 해당하는 346개 공공기관이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중 176개 기관이 이전 대상으로 선정됐다. 이후 통·폐합을 거쳐 2012년부터 2019년까지 8년에 걸쳐 총 153개 공공기관이 10개 혁신도시로 이전을 마무리했다.


당초 정부가 계획했던 수도권 집중현상 완화 및 비수도권과의 균형 발전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예상과 달리 수도권 집중 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발표한 '지역경제보고서 이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22년 수도권의 전국 경제성장기여율은 70.1%로 2001~2014년 기여율(51.6%)보다 18.5%포인트 급증했다. 국내 경제의 수도권 의존도가 오히려 증가했다.

경제성장률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 차이가 크다. 2000년대 이후 전반적인 성장률 하락세 속 수도권의 2015년 이후 하락폭은 비교적 작다. 서울의 성장률은 3.1%에서 2.5%로, 경기는 6.1%에서 4.5%로 각각 0.6%포인트, 1.6%포인트 낮아졌다. 반면 ▲울산(2.8% → -0.6%) ▲충남(6.6% → 2.7%) ▲경북(4.8% → 0.1%) ▲경남(4.3% → 0.6%) 등 비수도권의 성장률은 3%포인트 이상 큰 폭으로 하락했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주변 상가에 관공서 등 사무실 입주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 / 사진=뉴스1 DB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주변 상가에 관공서 등 사무실 입주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 / 사진=뉴스1 DB


비수도권 이탈 심각… 삶의 질 격차 탓

인구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수도권 인구 비중은 2011년 49.2%에서 지난해 50.6%로 증가했다. 인적자본인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현상이 심화했다. 한국은행의 '지역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 보고서를 보면 2015~2021년 수도권 순유입 인구의 78.5%가 청년층이었다. 같은 기간 동남권, 호남권, 대구·경북권에서는 인구 유출의 각 75.3%, 87.8%, 77.2%가 청년층이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에도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향하는 원인은 일자리를 비롯한 불균형 때문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해 12월 공공기관 지방이전 효과에 대한 주민의 인식을 연구한 결과 혁신도시 정주여건에 대한 만족도에서 일자리 여건 점수는 2.02점(4점 만점)으로 주택·주거환경(2.74점), 상업시설(2.77점), 지역안전(2.76점), 의료시설(2.72점) 등 다른 항목보다 크게 낮았다. 공공기관이 이전해도 일자리 문제 해결에 역부족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일자리는 소득과 문화, 의료 등 삶의 질을 좌우하는 요소다. 한국은행이 2015년과 2021년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황을 비교한 결과 삶의 질 모든 부문에서 불균형이 확대됐다. 월평균 실질임금 격차는 34만원에서 53만원으로 늘고 고용률 차이도 3.8%포인트에서 6.7%포인트로 벌어졌다. 1만명 당 문화예술활동 건수 차이도 0.77에서 0.86건으로, 1000명당 의사수 차이도 0.31명에서 0.45명로 늘었다.

이 같은 불균형은 비수도권 인구 유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거점을 옮긴 공공기관 내에서도 비수도권에 대한 거부감으로 수도권에 본가를 둔 채 '두집 살림'을 하는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이병훈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광주 동구남구을 )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31개 공공기관 중 지방이전 대상 8개 기관이 모두 수도권에 건물과 사무실을 소유·운영하며 260명의 상주 인력을 배치하고 연간 118억원 상당의 임차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병훈 의원은 "지방이전 공공기관들이 서울에 건물과 인력을 배치하며 국민 혈세를 낭비하거나 핵심 기능을 서울에 그대로 남겨둬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5월25일 서울 국회소통관에서 김창규 충북 제천시장 등 전국 6개 시도, 18개 시군 시장·군수들이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비혁신·인구감소 도시 우선 배치'를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제천시
지난해 5월25일 서울 국회소통관에서 김창규 충북 제천시장 등 전국 6개 시도, 18개 시군 시장·군수들이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비혁신·인구감소 도시 우선 배치'를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제천시


발도 못 뗀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성공 열쇠는?

정부는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현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에 포함됐고 속도감 있는 추진도 약속했다. 지난해 상반기 내 기본계획을 마련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지연돼 총선 이후에나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 이전 효과를 높이려면 우선 지역별 균등 배치와 함께 지역 인재 채용범위 확대로 일자리 체감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경영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추가적인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에서 입지 선정 시 지역의 발전 정도와 기관 간 균형배치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또한 지역 인재 기준을 재검토해 채용 범위를 확대하는 등 주민 체감 정도를 증대할 수 있도록 혁신도시 일자리 정책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공재 생산이 주 사업인 공공기관의 지방이전만으로는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제한적인 만큼 민간기업 이전을 함께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백승민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각종 특구, 산업단지 등 기존 공간정책과 혁신도시 간 연계를 통해 뚜렷한 시너지 효과 발생이 예상되는 경우 이에 대한 지원을 확대, 민간기업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며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이 패키지 형태로 혁신도시 및 인접 지역 산업단지 등으로 이전하는 경우 보조금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발전 방향에 맞춰 혁신도시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세부 정책 방안을 모색하는 데 지방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며 "정주환경 및 교통 인프라 개선 등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지역 특성을 토대로 공공기관을 지역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나 교육·일자리 정책을 혁신도시 내 기업·기관의 수요와 연계하는 방안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