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아이들의 미래는 비참하다. 운이 좋으면 수급자 신세를 면하는 정도고 운이 나쁘면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다.···자그마한 우리 고향 동네에서 작년에만 수십 명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가 얼마 전 광화문 교보문고 가판대를 다시 차지했다. 출간 7년여만의 역주행이다. 지은이 J D 밴스가 만 39세의 나이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에 공식 지명되면서다.

힐빌리는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노동 계층을 말한다. 밴스는 오하이오주의 철강도시 미들타운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힐빌리다.


가난한 힐빌리 소년 밴스는 마약중독에 빠진 엄마 대신에 외조부모의 사랑과 헌신 속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이비리그 출신의 변호사이자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리스트로 보란듯이 성공한다. 그러나 '힐빌리의 노래'는 결코 그렇고 그런 전형적인 성공스토리로만 읽힐 순 없다. 밴스가 털어놓는 탈산업화 이후 몰락한 러스트벨트 지역 백인 노동 계층 가정의 현실이 너무 참담하기 때문이다. 가난, 마약, 범죄가 일상화된 그곳의 삶엔 절망과 분노만이 넘쳐난다. 초강대국 미국 사회의 감추고 싶은 치부다.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는 전국 전체 득표수에서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에 무려 286만여표를 뒤졌다. 그러나 선거의 승자는 트럼프였다.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후보가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전부 가져가는 승자독식제하에서 더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면서다.


그 승리의 일등 공신이 바로 백인 노동 계층 중심의 러스트벨트 지역 유권자들이었다. 당시 '힐빌리의 노래'는 러스트벨트 지역 유권자들이 왜 트럼프에 몰표를 던지며 트럼프의 대선 구호이자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를 일컫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변신했는지를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는 책으로 평가받으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트럼프가 러스트벨트 출신의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하자, 민주당 대선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친서민·친노동자 이미지가 강한 네브래스카주 출신의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낙점했다. '장군멍군'이다. 핵심 승부처인 러스트벨트 지역 유권자들의 마음을 가장 잘 사로잡을 수 있는 부통령 후보 카드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과연 올해 대선에서 러스트벨트 지역 유권자들은 해리스와 트럼프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해리스의 판정승.' 지난달 10일(현지시간) 해리스와 트럼프가 처음이자 사실상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은 TV토론에서 맞붙은 이후 나온 지배적인 평가다. 물론 트럼프는 트럼프다. 예상대로 "내 생애 최고의 토론이었다"라며 자신의 승리를 주장했지만, 미디어와 여론은 해리스의 손을 들어줬다. 심지어 트럼프는 토론 중에 "아이티 이민자들이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잡아먹고 있다"라는 황당한 음모론까지 제기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TV토론 이후 승부의 균형추가 해리스 쪽으로 급속히 기우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실제로 해리스가 트럼프를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발표되면서 마치 해리스가 승기를 잡은 듯이 보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미 대선이 20여일 남은 가운데 가장 최신의 여론조사 결과를 한번 보자. 14일 발표된 NBC방송 여론조사에서 양자 대결 시 해리스와 트럼프는 전국에서 각각 48% 지지율로 동률을 기록했다. 같은 날 발표된 ABC방송의 여론조사에서 해리스는 투표의향층에서 50%, 트럼프는 48% 지지율을 얻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격차가 벌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좁혀지면서 예측불허의 초접전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승부는 경합주에서 갈린다. 펜실베이니아(선거인단수 19명), 노스캐롤라이나(16명), 조지아(16명), 미시간(15명), 애리조나(11명), 위스콘신(10명), 네바다(6명) 등 7개 경합주가 진짜 승부처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 러스트벨트의 표심이 올 대선에서도 최대의 핵심 변수다.

미 대선 여론조사 평균치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에 따르면 14일 기준으로 7개 경합주에서 트럼프는 48.3%, 해리스는 47.9%를 기록하고 있다. 트럼프가 0.4%P 앞서고 있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트럼프는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해 애리조나, 네바다, 미시간,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등 6개주에서 앞선다. 반면 해리스는 겨우 위스콘신에서만 우위를 차지한다.

지금 현재 전국 판세에서는 초박빙의 승부가 펼쳐지고 있지만, 경합주 판세로는 트럼프의 압승이 예고된다. 해리스와 민주당이 8년 전 '힐러리의 악몽'을 떠올리며 잠 못드는 이유다. 과연 남은 기간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송정열 머니S 편집국장
송정열 머니S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