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6일, 1인 프로젝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으로 활동하던 이진원이 세상을 떠났다. /사진=뉴시스
2010년 11월6일, 1인 프로젝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으로 활동하던 이진원이 세상을 떠났다. /사진=뉴시스


2010년 11월6일. 1인 프로젝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으로 활동하던 이진원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이진원은 반지하 자취방에서 콩나물국을 끓이던 도중 원인 모를 뇌출혈로 쓰러졌다. 지인들이 바닥에 엎어져 있는 그를 발견해 신고하며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병원에서는 그가 뇌출혈로 쓰러진 지 적어도 30시간은 지난 것으로 추정했다. 연봉 1200만원의 전업 뮤지션이 되고 싶어했던 그의 마지막은 가난만이 함께 했다.

결국 이진원은 쓰러진 지 6일 만에 사망했다. 특히 그는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이 더했다. 그는 직전까지도 홍대 앞 클럽에서 공연하는 등 건강에 특별한 이상징후를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수 이진원은 부조리한 사회를 가감 없이 비판하며 자기 비하와 열등감을 솔직하게 노래한 인디 뮤지션이다. 그는 2003년 홈레코딩 방식으로 첫 앨범 '인필드 플라이'(Infield Fly)를 제작하며 데뷔했다. 입소문만으로 1599장이 팔린 이 음반은 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고 이후 '절룩거리네'가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에 소개되면서 인디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절룩거리네'와 *'스끼다시 내 인생'은 방송 심의에 의해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그럼에도 그는 8년 동안 6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을 지속했다.

이진원의 사망 소식은 인디 음악계에 큰 충격을 줬고 여러 동료 가수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공연을 열었다. 2011년에는 서울의 26개 라이브 클럽에서 인디 밴드 103팀이 참여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추모 공연-나는 행운아'가 열렸다. 내귀에도청장치, 블랙홀,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 다양한 인디 밴드들이 무대에 올랐다. 2015년에는 그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가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상연됐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이 지병과 생활고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음원 수익 부당 배분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사진=뉴시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이 지병과 생활고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음원 수익 부당 배분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사진=뉴시스


"도토리, 이건 먹을 수도 없는 껍데기, 이걸로 뭘 하란 말야… 아무리 쓰레기 같은 노래지만 무겁고 안 예쁘니까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어. 일주일에 단 하루만 고기 반찬 먹게 해줘. 도토리 싫어, 라면도 싫어, 다람쥐 반찬 싫어, 고기 반찬이 좋아."


이진원이 지병과 생활고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음원 수익 부당 배분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2008년 발표한 3집 '굿바이 알루미늄'에 수록된 '도토리'에서는 음원 수익이 기준액에 도달하지 못해 사이버머니인 '도토리'로 지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둘러싸고 이진원 가수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누리꾼들은 도토리로 준 디지털 음원사를 '싸이월드'로 규정하고 이 사이트를 운영 중인 회사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쏟아붓기도 했다. 디지털 음원 수익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에 해당 회사는 "2004년부터 음원권리대행사인 '뮤직시티'를 통해 이진원의 소속사(아름다운 동행)에 도토리가 아닌 정당한 음원권리료를 전달해왔으며 도토리로 지급한 사실이 없다"며 "2008년 12월 현재부터는 이진원씨의 모든 곡의 유통 권한을 가진 '네오위즈 인터넷'을 통해 음원권리료를 소속사에 정상적으로 지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진원의 죽음은 가난한 인디 뮤지션들이 겪는 현실을 돌아보고 음원 수익 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