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업계가 과금 모델(BM) 혁신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았던 적이 있다. 인터넷 하면 '공짜'를 생각하던 당시 유저들이 지갑을 열게 하는데 한국 게임사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지금은 전 세계 게임사들의 수익 공식이 된 '부분 유료화'도 국내 최대 게임사 넥슨이 개발했다.


수익성이 검증된 부분 유료화에 더해 P2W(Pay-to-Win) 시스템 도입은 국내 게임사들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줬다. 게임사들이 큰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반감도 따라 커졌다. 과금이 아이템 강자를 만드는 게임 구조는 '돈이 곧 권력'인 현실 세계의 불평등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어서 유저들에게 차츰 외면을 당하기 시작했다. "현질(부분 유료화 게임의 유료 아이템을 현금으로 사는 것)은 필수, 과금이 실력"이라는 조롱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과금을 많이 유도할 수 있는 '돈 되는 게임'이 최우선 개발 과제로 꼽혔고, 창의성과 도전 정신은 저해됐다. 'K-게임 = 현질'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해외로 퍼져나가면서 대표 수출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던 K-게임은 글로벌 경쟁에서도 뒤처지기 시작했다. 올해 3분기에도 글로벌 히트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넥슨과 크래프톤을 제외한 대부분의 게임사가 실적 악화를 겪었던 배경이다. 유저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국내 게임업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와 쇄신 필요성이 커졌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국내 게임업계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반갑다. 불황 속에서도 '수작'으로 불릴 만한 다양한 장르의 게임 출시가 예고돼 재기의 발판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4일 부산에서 열린 지스타 2024는 이런 변화를 눈으로 확인시켜 줬다.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일색이던 과거와 달리 '아크 레이더스' '퍼스트 버서커: 카잔' '인조이' 등 슈터, 액션 역할수행게임(RPG), 시뮬레이션 등의 장르 게임이 공개됐다. 그뿐만 아니라 '퍼스트 버서커: 카잔' '붉은사막' '프로젝트S' 등 다양한 콘솔 게임 신작이 두드러지며 국내 게임사들의 콘솔 시장 진출 의지도 엿볼 수 있었다. 매출만 따지던 시대를 넘어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으로 읽힌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정부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게임산업진흥 5개년 종합계획'을 통해 콘솔 게임 육성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선도기업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콘솔 게임의 평균 제작 기간과 비용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을 골자로 한다. 세계 게임 시장에서 모바일 게임이 44%, 콘솔 게임이 28%를 차지하는 가운데 국내 콘솔 게임 시장 점유율이 1.5%에 불과한 만큼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의 관심에도 불황으로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국내 게임사들은 실망한 눈치가 가득하다. 뒷받침하는 정부의 이해도와 지원 방식이 여전히 부족해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 정책의 세부 내용은 선도기업 멘토링 프로그램 등 표면적인 지원에 그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소니, 닌텐도 등 주요 글로벌 콘솔 플랫폼사와 협력할 방침이라 설명했으나 이에 대해 각 사와 협의가 이뤄진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콘솔게임 제작 선도기업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 설명했으나 멘토링 프로그램에 누가 참여해 제작을 돕겠다는 것인지도 모호하다.

관련 예산 편성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연평균 5%의 성장률을 통해 2028년까지 국내 게임 매출을 30조원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2025년에 편성된 콘솔 게임 관련 예산은 155억원에 그친다. 콘솔 게임은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많은 인력, 자본 투입이 필요한 만큼 일본과 중국을 단기간에 따라잡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게임사가 아직 콘솔 시장에서 걸음마 단계임을 고려하면 더욱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정책이 여론을 의식한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정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책 목표는 좋으나 실행력과 디테일이 부족해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K-게임이 세계 시장에서 다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정교한 정책 개발과 과단성 있는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규제 중심의 접근 방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게임은 상용화되기까지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을 여러 번 넘어야 하는 고위험·고수익 산업이다. 많은 인력과 개발비가 투입된 게임이라도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다. 국내 게임업계가 초심으로 돌아가 다양한 장르에서 도전과 창의성으로 무장하려고 나선 것은 격려할 만하다.

과거 MMORPG와 모바일 게임의 성공으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았던 K-게임이 콘솔, 인디, 그리고 인공지능(AI) 기반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선 정부의 정책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지원과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

김성아 기자
김성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