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에게 밀려 자취를 감췄던 필름 카메라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2000년대 중반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에게 밀려 자취를 감췄던 필름 카메라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현대 사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서 현대인은 '편리함'을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여겨왔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는 오히려 '낭만' 또는 '빈티지'를 추구하며 불편함을 감수하는 역설적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느림과 불편함을 경험하며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와 즐거움을 찾는다.

"노이즈 지우지 말아주세요"… '투박한' 필름 카메라 인기

2000년대 중반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에게 밀려 자취를 감췄던 필름 카메라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한 디지털 인화소에 놓여있는 필름 카메라의 모습. /사진=김영훈 기자
2000년대 중반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에게 밀려 자취를 감췄던 필름 카메라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한 디지털 인화소에 놓여있는 필름 카메라의 모습. /사진=김영훈 기자


1888년 코닥사의 조지 이스트만은 롤 필름을 개발했다. 이후 코닥 카메라에 롤 필름을 내재한 후 판매했다. 이것이 필름 카메라의 시초다. 필름 카메라는 등장 이후 서서히 사용됐고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30년 가까이 대중적으로 사용됐다. 이후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필름 카메라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지 20년이 흐른 현재 오히려 디지털 세상 속에서 자라온 현 2030세대가 필름 사진 특유의 감성에 열광하고 있다. 이들은 집안 창고 깊숙한 곳에 방치돼 있던 필름 카메라를 챙겨 바깥 풍경과 일상을 담아내고 있다. 단종된 필름 카메라를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웃돈을 얹어 구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 디지털 인화소 하모 과장은 "필름 인화를 위해 방문하는 고객 10명 중 7명이 20대"라고 소개했다. 하 과장은 "사소한 골목, 소품 등 일상을 담아내는 경우도 있고 여행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필름 카메라에 열광하는 이유를 필름 카메라의 정형화되지 않은 투박함으로 꼽았다. 그는 "노이즈 현상을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요청하는 고객이 종종 있다"며 "스마트폰 카메라와 다르게 탁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음악으로 치면 예전에 인기를 끈 재즈나 블루스같이 짙은 느낌을 사진에서도 추구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포토샵을 잘하면 빈티지한 느낌을 살릴 수 있겠지만 필름 카메라만이 지닌 낭만이 있다"고 덧붙였다.
2000년대 중반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에게 밀려 자취를 감췄던 필름 카메라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강원도 강릉 바다의 모습. /사진=김영훈 기자
2000년대 중반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에게 밀려 자취를 감췄던 필름 카메라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강원도 강릉 바다의 모습. /사진=김영훈 기자


젊은층 사이에서의 필름 카메라 인기는 국내에만 한정되지 않은 세계적 추세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최근 코닥은 필름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뉴욕 로체스터 공장을 업그레이드하고 현대화하기도 했다.

'치지직' 소리도 감성… 'LP' 찾는 2030세대

디지털 음원에서는 느낄 수 없는 LP만의 미세한 잡음과 생동감이 젊은 층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디지털 음원에서는 느낄 수 없는 LP만의 미세한 잡음과 생동감이 젊은 층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공간음향, 노이즈 캔슬링, 고품질 음원 등 날이 갈수록 음질 기술이 발전하는 가운데 오히려 '치지직'거리는 잡음을 찾는 젊은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저음질'(Lo-fi) 장르가 생겨나기도 했다.


'Lo-fi'는 Low fidelity의 약자로 녹음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안정한 요소를 의도적으로 가미한 아날로그 감성 음악을 뜻한다. 마치 LP나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질감이 특징이다. 고음질과 다기능 이어폰의 시대에서 'Lo-fi'는 자신만의 인기를 공고히 유지하고 있다. 유튜브에 'Lo-fi'를 검색하면 수많은 플레이리스트가 나오고 수십만을 넘어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온라인에서 벗어나 오프라인에서도 'Lo-fi'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요즈음 일명 '핫플레이스' 동네에서는 LP바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곳에는 LP시절을 직접 경험한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젊은 2030세대의 방문율도 상당하다. 서울 마포구 한 LP바 사장 최모씨는 "20대 젊은 손님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다양한 연령대가 방문하게 되면서 신청곡 등 음악 스펙트럼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최씨는 "LP의 매력은 아날로그 특유의 따뜻하고 풍부한 음색"이라며 "디지털 음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미세한 잡음조차도 음악에 생동감을 더해주고 특색있는 음반 커버와 함께하는 시각적인 경험 역시 색다른 즐거움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 젊은 사람들은 LP를 고전 영화 등을 통해 접하면서 턴 테이블에 LP판을 올리고 바늘을 올리는 과정을 일종의 '낭만'있는 행동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핫플레이스 서울 용산구 한남동 '현대카드 바이닐 앤 플라스틱'도 젊은 층들로 가득차 있다. LP 청음이 가능한 이 곳은 특히 2030 커플들에게 실내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시 도봉구에서 온 22세 김모씨는 "남자친구와 함께 왔다"며 "LP가 갖고 있는 몽글몽글한 감성이 좋다. 요즘 가수들도 앨범CD랑 LP를 같이 내는 경우가 많아서 이 곳에도 최신 노래들이 많다"고 말했다.

고된 여정에서 찾는 '낭만'… '몽골 여행' 인기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는 몽골 여행을 선호하는 젊은 층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는 몽골 여행을 선호하는 젊은 층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후 새로운 도전이나 모험을 선호하는 젊은 층들이 많아지며 4050이 주로 선호했던 몽골 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부족한 관광 인프라와 비포장 도로, 열악한 화장실 등 여행 중 마주치는 불편한 요소들을 오히려 낭만적이라고 인식하며 즐긴다. 하루 평균 6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려 이동하고 스마트폰 사용도 어려운 환경은 몽골 여행만이 지닌 매력이다.

지난해 몽골 여행을 다녀온 25세 대학생 지모씨는 "몽골 여행은 단순한 여정이 아니라 일종의 도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5시간 넘게 사막을 달리고 도착한 열악한 게르 안에서 식사를 하고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는 경험은 단순한 관광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또 "뚜렷한 관광지가 없다는 것도 여행의 부담을 덜어주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라며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는 랜드마크를 모두 봐야한다는 압박이 있어 계획을 짜는 게 피곤했다"고 설명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는 몽골 여행을 선호하는 젊은 층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는 몽골 여행을 선호하는 젊은 층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그는 젊은 세대가 몽골 여행에 열광하는 이유로 광활한 자연 속에서 디지털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지 모씨는 "한국에 있는 동안 디지털 세계에 갇혀 진정한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잃어가고 있던 것 같다"며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요소를 찾을 수 없는 몽골이 젊은 세대가 진정한 자신을 찾는 장소로 각광받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무 것도 없는 광활한 몽골에 누워서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는 것 만큼 낭만적인 일이 없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인기를 증명하듯 몽골 민간항공국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인천)에서 몽골 칭키즈칸 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입국한 이용객 수는 28만3778명(43.81%), 서울(인천)로 향한 이용객은 28만8436명(43.41%)으로 전체 몽골 항공 이용객의 절반에 육박했다.

'불편'을 감수해야 '낭만'이 있다… "경험하지 못한 시절에 대한 향수"

트렌드 코리아 공저자 이혜원 박사는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가 오히려 '낭만'을 찾으며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본인들이 갖지 못한 결핍에 대한 동경"이라고 분석했다.

이 박사는 "이들에게 과거는 아네모이아(anemoia: 경험하지 못한 시절에 대해 느끼는 향수)를 느끼게 하는 대상"이라며 "지금 쓰는 걸 본 적 없는 필름카메라이니 그것이 주는 질감의 독특함에 끌리고 LP의 지직거리는 소음과 멍멍한 음질 역시 일상적으로 들을 수 없으니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몽골여행이란 흔치 않은 여행지와 관광지에서 느낄 수 없는 날 것의 자연이니 또 남들과 다른 차별점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젊은 층 입장에서는 '새로움'이며 윗 세대 시선에서는 '재등장'인 셈"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