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의사' 블랙리스트 유포자, 피해자들에 합의 구걸
박정은 기자
2024.12.16 | 1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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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 전공의, 병원에서 일하는 전임의, 학교로 돌아간 의대생 등 3000여명의 실명과 학번, 근무지 등이 담긴 의료계 블랙리스트 '감사한 의사'를 제작·유포한 사직 전공의 류모씨가 피해자들에게 합의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6일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류씨는 최근 변호사를 통해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피해자들에게 민사·형사상 합의를 조건으로 반성문을 제출하고 '사죄의 변'을 전하고 싶다며 접촉하고 있다. 류씨는 지난 9월 붙잡힌 사직 전공의 정모씨에 이어 '의료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된 두 번째 피의자다.
서울 소재 '빅5 병원'의 사직 전공의인 류씨는 지난 8~9월 집단 사직과 휴학에 동참하지 않은 전공의, 의대생 등 2900여명의 명단을 수집해 해외사이트 '페이스트빈' 등에 게시한 혐의(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명예훼손 등)로 지난 3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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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는 초기 실명과 학번, 근무지 등이 공유됐던 것을 넘어 여러 차례 업데이트되며 의사면허, 전화번호, 이메일,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 아이디까지 포함돼 피해자들에게 2차, 3차 피해를 줬다. 그는 "발기부전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탈모가 왔다고 함" "미인계로 뽑혀 교수님과 연애" "외상 환자 방치해 숨넘어갈 뻔" 등 확인되지 않는 정보를 퍼트렸다. 명단에 올라간 전공의, 전임의 등에게 사직 후 이를 인증하면 블랙리스트에서 빼주겠다며 협박하기도 했다. 동료 의사들에게 조리돌림당하는 것을 우려해 실제 사직한 의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추석쯤 업데이트된 블랙리스트에는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를 특정해 '부역자'라 칭하면서 "민족의 대명절 추석, 의료대란을 막기 위해 힘써주시는 분들께 감사와 응원을 드린다"고 비꼬기도 했다. 의료공백으로 '응급실 뺑뺑이'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 환자가 증가하는 명절을 앞두고 나온 '응급실 부역' 명단은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당시 익명을 요청한 의대생 A씨는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의대생, 전공의가 한두 명이 아닌데 다 블랙리스트 때문에 못 돌아가고 있다"며 "응급실 파행을 막기 위해 열심히 근무하는 의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게 인간이 할 짓이냐"며 분개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앞서 구속된 정씨에 이어 류씨를 위한 후원 모금 인증 릴레이가 또다시 진행되고 있다. 폐쇄형 의사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를 중심으로 블랙리스트 작성자들을 독립운동가·영웅 등에 빗대며 "이것밖에 할 게 없는 죄인 선배" "돈벼락 맞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 등 우상화하고 공개된 계좌번호에 후원 사실을 인증하고 있다.
메디스태프 등 의사 커뮤니티에서는 아직도 복귀 의사에 대한 신상정보가 무차별 공유되며 조롱하고 비난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이달 초 자신을 서울 한 병원에서 근무한다고 밝힌 의사 B씨는 자신의 블로그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의사들 커뮤니티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피해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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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씨가 공개한 메디스태프의 게시글과 댓글을 보면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데 맞나? ○○에서 인턴하고 학교는 ○○. 동료 등에 칼 꽂고 신나? 숨어서 벌벌 기면서 하지 말고 떳떳하게 해" "자살 추천한다. 동료 등에 칼 꽂는 놈"이라며 비난하고 모욕하는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심지어 "애미 XX, 애비 XX", "자식 교육 잘못해서 죄송합니다. 더 두들겨 팼어야 하는데" 등 청원인의 부모까지 욕설로 비하했다.
또 다른 피해 의사 C씨는 "의료계 블랙리스트도 메디스태프와 같은 폐쇄형 커뮤니티에서 시작했다. 의사 커뮤니티는 복귀 의사 등에 비방 글이 올라오면 오히려 피해자를 강제 탈퇴시켜 증거 수집을 막는다"며 "극단적인 수준의 폭언과 가족에 대한 모욕, 허위사실 유포 등이 비일비재하게 이뤄지지만 마땅히 손 쓸 방법이 없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이어 "명백한 범법 행위에 대해 커뮤니티 운영진이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도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 내부적으로도 아무런 자정작용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너무 화가 난다"며 "미복귀 의료인을 '처단'한다는 포고령에는 반발하면서 의료 정책과 무관한 복귀 의사를 '처단'하는 글에는 왜 아무도 나서지 않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윤·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비례대표·제주 서귀포시)이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종합하면 경찰은 '의료계 블랙리스트' 등과 유사한 총 36건의 수사의뢰서를 접수해 이달 초까지 55명을 조사했다. 이 중 구속과 불구속을 합쳐 총 43명을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의료계 블랙리스트는 지난 9월 이후 업데이트가 중지됐지만 아직 폐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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