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첫 의회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첫 의회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과학법'(칩스법) 폐지를 시사하면서 한국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합의한 보조금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보조금을 위해 대규모 미국 투자에 나선 만큼 보조금이 무효가 될 경우 사업 계획에 차질이 예상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와 52억800만 달러(약 7조5200억원)의 칩스법 보조금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47억5000만 달러(6조8514억원), SK하이닉스는 4억5800만 달러(6606억원)를 지원받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구속력 있는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보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각) 상·하원 의회 합동 연설에서 칩스법을 "끔찍하고 끔찍한 일"이라며 "우리는 한 푼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이 부과한 관세를 피하는 것, 오직 하나였다"며 "칩스법을 없애고 남은 자금은 부채를 줄이는 데 써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칩스법을 제정해 527억달러(73조원) 규모의 반도체기금을 편성했고 이 가운데 390억달러(54조원)를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을 위한 보조금으로 지급키로 했었다. 25% 세액공제도 지원한다.

후보 시절부터 칩스법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낸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보조금 폐지가 현실화할 확률이 커졌다. 그동안 국내 반도체업계에선 보조금 확정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정권 교체 후 보조금을 전면 백지화할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중론이었다.


보조금이 무산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투자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과 연구 센터 및 패키징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총 투자 규모는 440억 달러(63조4568억원)에 달한다. SK하이닉스는 38억7000만 달러(5조5802억원)를 투자해 인디애나주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양산할 계획이다.

관세를 무기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미 투자 압박은 거세질 전망이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최근 TSMC의 투자 발표 행사에서 "그들(TSMC)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온 것"이라며 관세 정책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병훈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투자를 약속하고 망설이는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내고 속도를 가속하기 위한 협상의 전략으로 칩스법 보조금 폐지를 언급한 것"이라며 "현재 한국의 협상력이 약하고 반도체 산업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어려운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파운드리의 경우 TSMC가 선제 투자로 인텔 등과 연합한다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것"이라며 "어느 때보다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