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IT(정보기술) 기업들이 잇따라 성과주의 평가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이는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조직의 실행력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사진은 지난 2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소재 네이버 본사의 내부 모습. /사진=뉴스1
국내 주요 IT(정보기술) 기업들이 잇따라 성과주의 평가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이는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조직의 실행력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사진은 지난 2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소재 네이버 본사의 내부 모습. /사진=뉴스1


국내 주요 IT(정보기술) 기업들이 잇따라 성과주의 평가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조직의 실행력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이다. 생성형 AI(인공지능)와 클라우드, 초개인화 등 신기술이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기업들도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 IT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최근 역할과 성과 중심의 '레벨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기존 연차나 직급 중심의 인사 체계를 벗어나 각 구성원의 업무 능력과 성과를 약 7단계 수준으로 세분화해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한글과컴퓨터도 이날부터 분기 단위로 성과를 평가하고 우수 인재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제도를 새로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성과주의 평가 제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도입 시도가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문화적 제약으로 정착이 쉽지 않았다. 연공서열 문화가 강하게 남아 직무 기반 보다는 연차나 호봉에 따른 임금 체계가 일반적이었던 탓이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업무 평가를 개량화하기 쉬운 제조업 분야에서도 아직 성과평가가 광범위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네이버 역시 약 5년 전 레벨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내부 반발로 무산됐다.


최근 IT 업계 전반에 성과주의 평가 제도가 확산되는 배경에는 기술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등 신기술을 중심으로 한 시장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기업 내부에서도 빠른 속도로 혁신을 추진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1~2년 사이 AI와 관련된 기술의 상용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며 국내 IT 기업들은 글로벌 선도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를 실감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성과주의 평가 제도 도입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성원의 역량과 기여도를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명확히 하는 시스템을 통해 각 구성원에 성과를 독려하고 조직 전체의 실행력과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특히 기술 중심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현 시점에서는 개인의 성과를 기준으로 보상하는 구조가 효율적인 자원 배분과 빠른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기업들의 설명이다.


이종우 아주대 교수는 "경기가 침체되고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차등화된 보상을 통해 우수 인재를 머무르게 하는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라며 "특히 글로벌 인재 쟁탈전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능력 있는 인재에게 우선적으로 합당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조직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전략이다"라고 말했다.

MZ세대 기업 중추로 자리잡아… 공정성 확보 움직임

조직 내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성과주의 확산의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은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벨리 전경. /사진=머니투데이
조직 내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성과주의 확산의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은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벨리 전경. /사진=머니투데이


조직 내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성과주의 확산의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출생한 MZ세대가 기업의 핵심 인력으로 자리잡으면서 이들이 중시하는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업무 현장의 핵심 가치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다만 성과주의 평가 체제에 '진정한 공정'이 반영됐는지는 신중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평가 기준이 모호하거나 결과가 인사권자의 주관에 좌우될 경우 구성원 사이에 불신이 생기고 이는 조직 전체의 사기 저하와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성과주의 평가 제도가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과 유사한 연공서열 문화를 가진 일본 역시 유사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1990년대 초반 성과주의를 도입한 일본 기업 후지쓰에서 인사 업무를 맡았던 조 시게유키는 "연공서열 문화가 강한 조직에 성과 평가만 도입하면 팀워크가 무너지고 이직이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성과주의 평가 제도 도입에 대한 구성원의 이해도와 기업문화 관리 방안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형남 숙명여대 글로벌 융합대학 학장은 "성과주의 평가 제도는 명확하게 성과를 측정하기 어렵다"며 "상급자의 눈치를 살피며 점수 관리에 몰두하게 되면 '혁신 기업'에서 '성과 줄 세우기 기업'으로 전락할 수도 있어 섣불리 도입을 결정하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